Description
“사람은 다른 언어를 배우면서 다른 사람들이
세계를, 우주를 보는 방식을 배운다는 걸 알죠.
그런데 이 언어를 들여다보니……
너무나 많은 게 보이는 거예요.”
로저 젤라즈니 최대의 라이벌,
1966년 24세의 나이로 네뷸러 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천재 작가 딜레이니
한국에 최초로 상륙하다!
문학사적인 의의를 갖추고 읽는 재미를 겸비한 해외 과학소설의 고전과 최신작을 충실한 해설을 곁들여 소개하는 폴라북스의 SF 총서 ‘미래의 문학’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세 번째 주자는 새뮤얼 딜레이니의 네뷸러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바벨-17』이다.
『바벨-17』(1966)은 매 작품마다 문학적, 철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천재 작가 새뮤얼 딜레이니의 네뷸러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작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본 작품은 “언어학과 기호학의 사피어-워프 가설을 기존 스페이스오페라의 패러다임에 융합시킨 역사적인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외계에서 온 ‘침략자’와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미래. 동맹군의 군사적 요지가 알 수 없는 공작원에 의해 거듭 파괴되는 가운데, 그러한 파괴공작이 있을 때마다 정체불명의 암호 ‘바벨-17’이 수신된다. 동맹군은 천재 시인이자 뛰어난 암호 해독가인 리드라 웡에게 바벨 -17의 해독을 의뢰한다. 리드라 웡은 이에 바벨-17 분석에 착수하고, 이것이 암호가 아니라 하나의 언어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바벨-17과 파괴공작 사이의 관계는 알 수가 없다. 리드라 웡은 바벨-17의 진정한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선원을 모아 초광속 우주선 랭보호를 몰고 다음 공격 목표인 동맹군의 병기창으로 향한다. 전체 줄거리는 우주선 간의 전투나 암살 등 스페이스오페라와 활극의 모양새를 띠고 있으나 저변에 깔린 언어학적·철학적인 통찰력과 문학성, 먼 미래의 인간사회와 인간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창조해낸 상상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감탄을 자아낸다.
『바벨-17』은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현란한 문체와 정교한 신화적 상징을 종횡무진으로 구사, 종래의 틀에 박힌 스페이스오페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걸작 언어학 SF이다.
“밤하늘에 터진 마그네슘 조명탄처럼 독자의 뇌리를 직격한다”는 《트리뷴》 지의 유명한 서평이 말해주듯 지적인 고찰과 화려한 메타포와 자극적인 문화론이 혼연일체가 된 지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특히 1980년대 SF계를 강타한 사이버펑크 운동을 일찌감치 선점한 듯한 인체-기계 인터페이스 담론을 보면, 왜 당대의 동료 작가들이 하나같이 딜레이니를 가장 유망한 차세대 작가로 꼽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김상훈 (SF 평론가)
■ 출간 의의
인생 자체가 천재성과 다양성의 화신인 작가 딜레이니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작품
새뮤얼 딜레이니는 예술성과 삶의 방식 모두 혁신적이고 천재적인 삶을 살아온 전설적인 작가이다. SF평론가이자 미래의 문학 기획자인 김상훈 씨는 해설에서 새뮤얼 딜레이니의 엄청나게 다면적이고 활동적인 삶과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백인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문단, 그것도 SF 문단에서 일찌감치 교조적인 위치를 선점한 거물 흑인 작가로, 아메리칸 포스트뉴웨이브의 거장 로저 젤라즈니의 친구이자 최대 라이벌이었다. 주류 평단의 비평가들은 그를 토머스 핀천과 이탈로 칼비노에 비견하기도 했다. 미국 서해안을 중심으로 한 히피 운동과는 미묘하게 다른 노선을 걸었던 동부의 히피 라이프스타일의 산 증인이자, 미국 뉴웨이브 운동의 살아 있는 신화로 추앙받으며 앨프리드 베스터처럼 1940년대의 올드웨이브 SF와 1980년대의 사이버펑크 운동 사이를 잇는 일종의 선각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기호론과 문학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유능한 수학자이기도 하며, 글램 록의 대부인 데이비드 보위와 비견되곤 하는 뛰어난 뮤지션인데, 때로 다재다능하기로 유명한 천재 록스타 프린스와 비교되기도 한다.”
딜레이니의 지적이고 다면적인 통찰력, 새로운 스타일의 문법은 이런 다양한 정체성과 천재성에서 기인한 듯하다. 그는 난독증으로 인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19세의 나이로 데뷔한 후 24세의 나이에 『바벨-17』을 출간할 당시 이미 장르문학 작가로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이후 놀라운 통찰력과 깊은 문학적 조예를 토대로 한 작품들로 그는 SF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연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위스콘신-밀워키, 알바니, 코넬 등 여러 대학의 연구원과 교수로 초빙되어 SF 평론과 기호학 연구에 몰입하여 비평가로서도 확고한 기반을 다졌으며, 현재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템플 대학의 영미문학 및 창작 강좌의 전임교수로서, 창작 활동과 후진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바벨-17』은 오랫동안 SF계의 거장으로 군림해온 새뮤얼 딜레이니를 이제야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라 하겠다.
언어라는 개념으로 만든 정교한 매트릭스
언어에 바치는 가장 독창적인 서사시,『바벨-17』
외계의 적들이 보내는 암호인 줄 알았던 ‘바벨-17’이 사실은 언어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시작되는 『바벨-17』은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가설에 뿌리를 두고 진행된다. 예를 들어 ‘따뜻하다’라는 단어가 없는 프랑스어만 배우고 산 사람은 뜨겁다와 시원하다는 알지 몰라도, 따뜻하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바벨-17』은 언어와 문화와 개념 사이에 뗄 수 없는 관계를 전제하고, 그것을 지구만이 아닌 우주의 다른 종족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인류처럼 탄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지 않은 다른 우주와 외계의 인간이라면, 사용하는 언어가 지칭하는 범위, 그 언어가 표현해주어야만 하는 개념의 체계마저도 인류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또한 다르기 때문에 외계의 언어로 우리가 익히 아는 무언가를 다시 정의한다면, 우리로서는 알아낼 수 없었던 다른 면모를 그것에서 발견하게 되거나, 우리가 여러 단어와 어휘를 동원해서야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던 어떤 것을 단 한마디로 정의내리는 단어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그 언어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벨-17’이라는 침략자의 언어를 공부하면서 주인공 리드라 웡은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며, 리드라 웡에게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는 독자 또한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나와 너, 이 세상과 다른 세상, 우주에 대해 의식을 확장시켜주는 경이감이 SF의 본령이자 고유의 쾌감이라면, 『바벨-17』은 이 경이감의 최고점에 있는 작품이다.
작은 책, 그러나
인간의 모든 변화와 미래를 통찰하는 거대한 서사시
우주전쟁을 무대로 한 파괴공작과 테러, 그 원인을 추적하는 첩보공작 등의 사건이 표면에 있고, 언어에 대한 대담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먼저 눈에 띄지만, 『바벨-17』은 그 외에 인류의 외모, 사랑, 인간관계, 성역할 등 모든 변화가 미래의 기술 발전과 우주시대의 개막, 전쟁 등의 변화를 겪고 나서 어떻게 송두리째 달라질 수 있는지를 통째로 담아낸 하나의 세계와도 같다. 소위 ‘미용성형’이라는 것이 기술의 발전과 결합하여 인간을 용이나 그리핀 같은 상상 속의 동물 수준으로 외형을 바꿔놓을 수 있는 세계, 인간의 사고패턴을 저장하여 인간이 죽은 후에도 되살려낼 수 있는 세계, 우주와 소통하고 교역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 사회적으로 새로이 계급이 갈린 세계. 지루하게 이어지는 설명을 넣지 않고도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 한 권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세계를 목격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딜레이니의 작가적 역량을, 이러한 세계와 인간의 변화 양상이 총체적이고 섬세하며 대담하다는 점에서 딜레이니의 상상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