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865년 태어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가 시인으로 성장한 19세기 말의 영국 시단은 세기말 문학의 전형적 특징인 환상세계에 대한 추구와 과도한 감정 표출 등이 영국 시단을 풍미하던 시기였다. 19세기 초반까지 문단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았던 낭만적 서정성은 이즈음 현실을 초월한 이상주의와 자아 존중의 개인주의와 결합해서, 세기말의 퇴폐적 댄디즘을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예이츠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인 서정성을 자신의 시 작품들과 극시들을 통해 구현해, 낭만주의의 정통성을 잇는 시인으로 영국 시단에 등장했다. 여기에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의 풍경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보다 더 그의 서정성을 강화하는 것은 시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정서의 특징이다. 19세기 후반기까지 예이츠가 쓴 대개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시적 화자의 아스라한 그리움의 표출든 간에, 그 대상 너머 어떤 것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나 애틋한 그리움 또는 떨쳐 낼 수 없는 정서의 잔영을, 시의 화자는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한 행 한 행에 풀어내 보인다. 그래서 한 작품을 읽고 나면 독자의 뇌리에서 그 작품의 주제는 뒤로 밀리고, 다만 화자의 대상에 대한 느낌과 태도가 크게 자리 잡는다.
이러한 시적 특징들은, 그가 30대에 들어서는 20세기 초반기에 이르러, 간결한 스타일 속에 보다 더 현실에 가까이 내려섬으로써 극적 변화를 겪는다. 시대는 바야흐로 19세기의 여러 증후들을 벗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유럽의 문학과 예술 전반에 걸쳐 퍼지고 있던 모더니즘 열풍이었다. 예이츠도 이미 극작품을 쓰고 공연할 뿐만 아니라 무대 공연의 여러 작업들을 통해 극적 기법을 시 작품에 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빌려 온 상징의 압축성과 다면성, 그리고 간결한 문체가 가져오는 시적 긴장성의 고양 등을 그 자신의 작품에서 구현해 낸다. 특히 시적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관점들의 대립과 갈등을 상징을 통해 압축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예이츠의 작품은 세월과 더불어 성숙해져 가는 시인의 지혜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상징을 통해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그것들로부터 삶의 질서를 모색하는 그의 작품들에서 예이츠는 젊은 시절부터 줄곧 관심을 기울여 온 현실과 이상,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실제와 예술, 삶과 죽음 등등 서로 상반되는 것들의 이상적 화합 상태를 시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원적 요소들의 분리불가의 성격을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예이츠의 시 작품들은 그의 초기 낭만적 서정성이나 환상성과 더불어 20세기 전반기 영국 시의 한 축을 예시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이츠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영향을 준 시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소월의 스승이었던 김억을 통해 예이츠의 낭만적 시 작품들이 번역, 소개되어 일찍이 우리 서정시에 주요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예이츠의 환상적이고도 낭만적 정서가 주를 이루는 작품들만 우리 독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우리나라에서 예이츠는 낭만적 서정시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초기 낭만적 작품들뿐만 아니라 그의 노년에 창작된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