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예술, 종교 그리고 철학에 비친 인간의 모습을 15개의 개념으로 나눠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규명해나가는 책이다. 물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의 ‘역사적 인간학을 위한 학제적 연구소’가 진행한 인간학 프로젝트는 인간에 관한 포괄적인 탐구를 진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즉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서 찾아낸 개별적인 사료들을 토대로 인간을 역사와 문화의 산물로 파악하고, 나아가 다양한 문화권별로 인간에 관한 관점들을 비교하여 분석함으로써 인간학이 발전하는 토대를 닦은 것이다.
인간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탐구해나가는 15가지 개념
이러한 프로젝트를 근간으로 저자는 인간의 몸, 이성과 열정, 죽음, 불안, 기억 등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심적인 개념 15가지를 선택해 인간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탐구해나간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인간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의 변동이 매우 역동적이었던 1800년대 전후가 인간에 관한 관점이 괄목하게 바뀌었던 시기이자 책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기라는 점에 주목한다. 혁명의 시기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정치 영역에서는 프랑스혁명이, 경제 영역에서는 산업혁명이, 철학에서는 칸트의 인식론적 전환이, 문학에서는 낭만주의의 반역이 움텄기 때문이다.
문화적 인간학의 핵심 개념은 ‘몸과 정신’의 비극성
문화적 인간학의 15가지 개념들 가운데 ‘몸과 정신’은 근본적인 중심 개념으로서 인간과 사회에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 내는 요소이다. 인간의 육체는 성과 관련하여 욕망의 문제를 낳거나 육체가 사멸하면서 죽음과 유한성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몸과 정신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욱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만드는데,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플라톤의 선언, 신성을 오로지 정신에서 찾으려는 중세적 가치관, 그리고 몸과 정신의 균형과 조화를 모색한 괴테의 문제적 인물 파우스트의 고뇌, 나아가 하이데거의 ‘현존재’나 사르트의 ‘실존’이라는 개념 등은 모두 육체와 정신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에 관한 15가지의 개념들은 깊은 곳에서는 결국 육체와 정신을 소유한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성으로 수렴된다.
진정한 인간은 ‘몸과 정신’의 근본적인 분리를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탄생
저자는 육체와 정신,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대립이 가져오는 다양한 현상들이 지금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정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육체 혹은 이성을 무력화시키는 열정은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으로 흩어지는 우리 시대를 설명해줄 관점이기 때문이고, 열정을 잃어버린 이성이 가져오는 위험성도 우리 시대에 쉽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