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스터리 사상 제1위 걸작―허무에의 제물!
나카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제물」(虛無への供物)은 일본 안티미스터리(반추리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장편소설로, 장미와 흑조를 기조로 한 작품이다. 「허무에의 제물」은 1964년 고댠샤에서 도우아키오(塔晶夫)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어, 이듬해 마이니치신문과 하야가와 미스터리 매거진에서 전후 20년간 추리소설 베스트셀러 제1위 최고 작품으로 선정된다.
「허무에의 제물」은 일본 추리소설의 3대기서로 일컬어지는데, 그밖에도 우메노 큐사쿠의「도구라 마구라」, 오구리 무시타로의「흑사관 살인사건」이 손꼽힌다. 또 이 소설은 흔히 일본 전후(戰後) 3대미스터리로도 불리는데, 나머지 작품은 요코미조 세이시의「옥문도」, 다카기 아키미쓰의「문신 살인사건」이 있다.
실감나게 재미있는 반추리소설 걸작!
추리소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어야 한다. 프랑스 앙티로망(반소설)은 재미가 없지만, 나카이 히데오의 안티미스터리는 아주 재미가 있다. 「허무에의 제물」은 무엇보다도 먼저 뛰어나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나카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소설 「환상박물관」이나 「악몽의 트럼프」를 보아도 그의 작가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 반추리소설이라는 의도가 아무리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추리소설에 대한 매서운 비판으로서 안티미스터리가 등장했다해도 작품 자체가 재미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곳곳에 전개된 극중 추리게임, 도지로가 죽던 날 밤 마작대회, 아이누 전설, 5색 부동명왕 유래, 색채학, 샹송,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장미 이야기, 아사쿠사와 우에노 일대를 실감나게 묘사한 지리안내, 거친 오사카 사투리, 전후 일본의 시사적 모자이크…….
과연 작가가 10년을 투자한 만큼 독자를 끌어들이는 장치의 정교함과 치밀함이 나무랄 데 없다. 때때로 통속적으로 흐르는 면도 있지만, 탐미파 작가라는 본령을 충분히 발휘한 쾌조의 말투가, 작위적으로 보이는 것마저도 독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진다. 나카이라는 작가는 발표 전 10년이 걸리고, 발표 후 또 10년이 지난 「허무에의 제물」에, 신판 간행 무렵에도 여전히 작품에 손대는 사람이다.
도시적인 이단작―허무에의 제물!
1954년 도야마루 전복사건이 일어난다. 이듬해 이 소설 구성 전반이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도야마루사건이 소설 구성의 핵이 된다. 나카이 히데오라는 거목이 10년간 도야마루사건을 취재·집필하여, 4개의 밀실살인이 담긴 본격추리소설 ‘히누마 집안 살인사건’을 완성해낸다. 이 소설에 10년 세월을 투자한 작가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추리게임으로서 완벽하고 순수한 작품보다는, 추리게임을 벗어난 것, 곧 안티미스터리를 창작해낸다.
이야기는 1954년 12월 10일 시작된다. 그 해는 작가에게 니쥬바시 압사사건, 다이고후쿠료마루 죽음의 재, 도야마루 전복이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시사일간지 형식으로 채색되어 있고, 이야기 공간은 축제로 번화한 시모타니 류센지의 게이바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나카이는 이 모든 세속 사건들을 서정시로 여과하여 소설화한다. 그것이 나카이 특유의 매력이다. 도야마루사건 촉발로 시사, 풍속에 집착하는 작가의 정신이 사회파 추리소설로 기울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작가가 탐미파인 탓이고, 다음은 그의 도시적인 이단성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회에 반항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 내고 있다. 맨 마지막에서 보듯 몹시 슬프고 마음 아픈 면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반항의 소리를 내더라도 나카이의 너무나 도시적인 성향 때문에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현혹시켜 허를 찌르고, 또 새로운 유혹을 시작해 초조하게 만들고 속이며 고꾸라뜨린다. 트릭 작자로서 그런 깊은 즐거움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침내 나카이는 어떤 장르, 어떤 부문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문제작을 창조해 내고야 만다. 「허무에의 제물」은 바로 이런 도시적 이단의 작품이라 할 것이다.
「허무에의 제물」의 마력
에피소드들이나 막간극의 감칠맛과 농밀함에서 이 소설은 비할 데 없다. 범인을 알아내는 동기가 밝혀지면 두뇌적인 흥분은 완전히 사라져, 책장을 덮어버리고 두 번 다시 펼쳐보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찾는다. 그것이 추리소설의 숙명이라면 그런 숙명에서 멋지게 벗어난 것이 바로 「허무에의 제물」이라는 안티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끝까지 다 읽고 범인과 동기가 완전히 밝혀져도 여전히 책장을 뒤로 넘겨,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부분이나 참뜻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 자꾸 되풀이해 읽는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추리소설의 경우에 이런 행동은 자주 일어나지만, 이 모든 것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함인 이상 자연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허무에의 제물」은 추리소설의 내면에서 극복하려는 시도인 만큼 재독, 삼독을 거듭할수록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