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잡기

마크 헤이머 · Humanities/Essay
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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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두더지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있다. 땅을 헤집어 정원과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두더지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두더지 사냥꾼은, 영국에서 수백 년간 존재해온 전통적 직업이다. 시인이자 정원사인 마크 헤이머는 이 책에서 두더지의 생태와 두더지 사냥꾼으로서의 삶, 그리고 더 이상 두더지를 잡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단단하고도 세심한 독창적 문체로 전한다. 헤이머는 열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숲과 강가에서, 나무 밑에서 새와 벌레들과 함께 잠을 잤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홈리스로 살았던 경험은 이후 정원사와 두더지 사냥꾼이 되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정원 소유주들의 의뢰를 받아 잔디를 깎고 생울타리를 손질하며 살아가는 그는, 들판을 걷거나 화단을 가꿀 때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처럼 ‘평범하게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생의 장엄함을 발견하곤 한다. 책은 크게 세 타래의 이야기가 서로 겹치고 잇대이며 진행된다. 첫째는 두더지 사냥꾼으로서 경험한 이야기, 둘째는 10대 시절 고독한 부랑자로 살았던 이야기, 셋째는 바로 현재, 노년에 이르러 마침내 두더지잡이를 그만두고서 고요하고 자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헤이머가 60대에 들어서 쓴 첫 책 《두더지 잡기》는 2019 웨인라이트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특한 소재와 작가의 이력, 울림 있는 문장들로 큰 화제를 모아 세계 14개국에 번역·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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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프롤로그 겨울 새벽 정원사의 일 두더지들 1 길 위의 신사 흙과 집 땅으로 녹아든 밤 걷는 사람 두더지들 2 들판 위에서 무채색 냄새 닳아버린 것 패배 없이 피하기 망가진 것들 사냥꾼의 육감 은신법 살생의 의미 두더지 언덕 마지막 사냥 또 다른 삶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Description

평생을 땅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미지의 포유동물 두더지, 그 작은 존재를 둘러싼 자연과 삶, 고독과 평범함에 관한 이야기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 2019 웨인라이트상 후보 미국서점협회(ABA) 추천 도서, 14개국 번역 출간 특별하고 비범하다. 자연사와 회고록 그리고 시라는 문학 장르가 혼재돼 있는데, 그 모든 모습이 찬란하다. ― 사이 몽고메리, 《문어의 영혼》 저자 우리가 이 대지와 맺고 있는 관계,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저마다 가진 고민스런 인간성과의 관계에 관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 맥스 포터, 《슬픔은 날개 달린 것》《래니》 저자 친근하지만 미지의 영역에 있는 동물, 두더지 두더지는 대개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동시에 유쾌하고 귀여운 동물로 받아들여진다. 저명한 아동 문학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등장하는 두더지는 순수하고 온화한 성격에 책을 즐겨 읽는다. 카카오프렌즈의 인기 캐릭터 ‘제이지’는 힙합을 좋아하는 발랄한 성격의 두더지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다. 뿅망치로 머리를 때려잡는 ‘두더지 잡기 게임’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적 있는 흥미진진한 놀이이다. 하지만 두더지의 진짜 모습은 우리가 흔히 접해온 그런 모습들과는 조금도 같지 않다. 우리는 두더지를 모른다. 두더지는 세계 곳곳의 전원 지역에 서식하며, 한국에도 많은 수의 두더지가 산다. 농경지나 정원에서 두더지는 큰 골칫거리 중 하나다. 땅 위로 잘 올라오지 않는 습성상 직접 마주하기란 쉽지 않지만, 토양을 헤집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두더지로 인해 적잖은 농가가 골머리를 앓는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두더지와의 싸움을 벌여왔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땅에 물항아리를 묻어 두더지를 잡았고, 16세기 중반 식량난에 처한 영국에선 국가가 두더지잡이를 장려함으로써 공인된 전업 두더지 사냥꾼들이 생겨났다. 그 후 영국에서는 두더지잡이가 일종의 전통적 사냥술로 인정받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영국 내 두더지의 개체 수는 현재 약 4천만 마리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두더지 사냥꾼까진 아닐지언정 다양한 두더지 퇴치술과 사냥법, 퇴치 기기가 농부나 정원사 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끈다(유튜브에는 두더지 퇴치 관련 영상만 수백 건이 올라와 있다). 두더지는 아이들과 도시인들에겐 귀엽고 친근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농촌이나 교외 지역에선 땅속의 무법자로 불리며 농업 종사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유해 동물로 분류되곤 한다. 마크 헤이머는 이 책에서 그러한 두더지의 생태와 그들의 습성에 깃든 다양한 진실을 전한다. 동시에 농사와 원예를 망치는 야생동물로서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의 삶을 일구어가는 한 생명체로서의 두더지의 모습 또한 들여다본다. 자연의 방랑자로 살아온 전직 두더지 사냥꾼의 이야기 두더지는 평생을 홀로 지낸다. 어둠 속에서, 친구나 가족 없이, 집단 정체성 없이, 혼자 굴을 파고 혼자 먹이를 잡고 혼자 보금자리를 만들며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마크 헤이머도 10대 시절 중요한 성장기를 그렇게 보냈다. 어릴 적 집안에서 혼자 채식주의자로 지내며 가족들과 충돌하거나 놀림받던 그는, 열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읜 후 아버지의 반강제적 권유로 집을 나와 2년 가까이를 부랑자로 살았다. 위험한 어른들을 피해 숲속에서, 부둣가에서, 생울타리 아래에서 몸을 숨긴 채 잠을 잤다. 쟁여둔 캔이나 훔친 빵을 먹거나, 먹을 게 없으면 굶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쉬지 않고 걸었고, 겨울에는 상점에서 일하며 버려진 아파트에서 히피들과 함께 살았다. 10대의 헤이머에게 홈리스로 지낸 그 시간이 외롭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숲속과 강가에서 함께 잠을 자던 야생 생물들과 자기 자신이 똑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갔다. 낮에는 걷는 동안 온갖 식물이 열매를 맺고 잎사귀를 떨구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밤이면 보초를 서는 검은지빠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실로 그는 자연 ‘속에’ 있지 않았다. 그가 곧 자연이었다. 자기 안의 자연과 가까워짐에 따라 헤이머는 동물로서의 감각을 활짝 열고서 하루하루를 자연 그 자체로 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말한 “나는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인 삶을 갈망하는 본능이 나 자신 안에 공존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선한 것 못지않게 야생적인 것을 사랑한다.”라는 구절을 몸소 체현했다. 그렇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뒤 친척 집을 찾아가 일자리를 얻으면서 부랑자의 삶은 끝이 났지만, 이때의 경험은 그의 여년에 중요한 토양이 되었다. 수많은 직업을 거친 끝에 정원사가 된 헤이머는 일이 없는 겨울철에 두더지잡이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자연 속에서 쉬지 않고 걸었던 10대 때처럼 들판을 걸으며 자연과의 합일이 주는 무구한 기쁨을 느꼈다. 유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함께해온 삶이 그에게 남긴 흔적과, 자연을 향해 그가 느끼는 경외, 그리고 그런 감정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대지와 태양의 압도적인 능력을 실감했다. 자연을 길들이는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 자연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다양한 면면을 돌아보았다.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굴을 파듯 자기 앞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일에 관하여 책의 첫 문단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제 나는 늙었고, 사냥을 하고 덫을 놓고 죽이는 일에 지쳤으며,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은 모두 배웠다.” 두더지 잡기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그에게, 그것은 분명 대단할 건 없지만 소소하고 감사한 삶을, 그가 기꺼이 사랑했던 삶을 가져다주었다. 그 덕에 고지서 요금을 비롯한 생활비도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었다. 동물을 죽이는 일은 줄곧 그를 지치게 했고, 좌절감을 키웠다. 20여 년을 정원사로 일하며 두더지잡이를 병행해왔지만, 더 이상 두더지 사냥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는 이제 겨울이면 덫을 놓는 대신에 글을 쓴다. 그는 이제 더는 숨겨진 것들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진정 중요한 것들은 실은 모두 저곳에, 그냥 가질 수 있게, 땅 위에 놓여 있다. 내가 들고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조각들처럼. 숨겨진 것들은 숨겨진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남아 있어도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진실 또한 숨겨져 있으며, 일상의 어떠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기에는 그 진실이 너무도 모호하고 불가해하기 때문이다.”(266p) 헤이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대개 그의 시선이 가닿는 자연에,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자연의 영역에, 혼돈 속에 자리한다. “인생은 좀처럼 우리의 기대만큼 단정하고 깔끔하지 않다. 나는 그런 편이 더 마음에 든다. 이성은 세상을 경험하는 여러 중요한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50p) 이처럼 마크 헤이머는 시인의 감각과 철학자의 마음으로 자연과 동물을 바라본다. 두더지라는 비밀스런 동물과 두더지 사냥꾼이라는 유별한 직업에 얽힌 그의 이야기는, 결국 자연과 우리의 삶이 새로운 감각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진다. 두더지라는 작은 동물을 둘러싼 우리의 편견, 오해, 신화를 한 꺼풀씩 벗겨내며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어느 노년의 정원사가 자연과의 흔들리지 않는 유대감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명상적인 초상화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의 인간다움에 대해 자연이 귀띔해줄 수 있는 소박한 답변들을, 그리고 오직 자연에서만 찾을 수 있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가치들을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책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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