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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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한국문단의 희망, 김애란 첫 장편 2002년, 약관의 나이로 등단한 이래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 권의 소설집만으로 한국일보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차세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른 김애란의 첫번째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 출간되었다. 2010년 여름부터 2011년 봄까지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될 당시부터 문단과 독자들 사이에서 숱한 화제가 된 이 작품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청춘과 사랑에 대한 눈부신 이야기를 다룬다. 담백하고 신선한 문장들로 담아낸 벅찬 생의 한순간과 사랑에 대한 반짝이는 통찰이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하고 폭소를 터뜨리게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울컥, 눈물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신형철 『몰락의 에티카』)라는 반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젊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관광단지 공사가 한창인 마을, 아직 자신이 자라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열일곱 철없는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가진 부모가 있다. 어린 부모는 불안과 두근거림 속에서 살림을 차리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태어난 아이 ‘아름’은 누구보다 씩씩하고 밝게 자란다. 하지만 아름에게는 미처 다 자라기도 전에 누구보다 빨리 늙어버리는 병, 조로증이 있다. 열일곱 소년의 마음과 부모보다 훨씬 늙은 여든의 몸을 지닌 아름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웃의 예순살 할아버지를 유일한 친구로 삼은 아이이다. 고통과 죽음을 늘 곁에 둔 채 상대적으로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겪어야 하는만큼 아름은 자연스레 인생에 대해 배우고 느낀다. 조로증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소설은 역정(歷程)의 비화를 처절하게 그리는 데 큰 관심이 없다.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포착해내고 인생에 대해, 시간에 대해 진중한 사색을 가져다줌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해나가는 것이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기적이라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 중 열일곱을 넘긴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어왔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 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였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47면) 아름은 어린 부모의 만남과 연애, 자신이 태어난 이야기를 글로 써서 열여덟번째 생일에 부모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실제의 이야기에 상상과 과장을 보태고 섞어, 자신만의 소설 한 편을 만들어나간다.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날을 위해 쓰는 이 소설은 학교에도 다니지 못한 아름이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일구어낸 언어와 감수성의 총체이자 자신으로 인해 잃어버리게 된 부모의 환한 청춘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이다. 또한 이 소설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신의 삶을 이야기 속에서 생동하게 만들고 싶은 소망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겹치고 어긋나고 어그러져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폭발 직전의 우주가스처럼 아스라이 출렁였다. 나는 그걸로 뭔가 만들어볼 요량이었다. 물론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 모르게. 아름다움이 아름다워질 수 있게. 사람 손을 타, 태어나자마자 죽는 새끼 강아지의 운명이 되지 않게. 아름다움이 잘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부모님의 추억담을 들으며 어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랐고, 그러면서도 그게 정말 끝날까봐 조바심쳤다. 그래서요? 진짜요? 그게 뭔데요? 왜요? 우와! 지저귀며 흥을 돋우었다. 늙으면 듣는 것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던데, 이렇듯 부모님을 채근하는 걸 보니, 나는 분명 소년인 게 틀림없다. (94면) 기적 같은 청춘, 가슴 벅찬 사랑이 시작된다 더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는 집안 형편을 안 아름은 자진해서 성금모금을 위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덕분에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아름은 텔레비전 출연을 계기로 ‘서하’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골수암에 걸려 병원생활을 하는 비슷한 처지의 서하에게 조심스레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그 아이와 함께하며 아름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한없이 짧은 청춘의 한순간을 맞이한다. 늘 삶을 관조하는 가운데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서만 청춘을 상상해왔던 아름에게 다가온 이 설렘은 우리 모두가 겪었던 청춘의 한때가 그랬듯 풋풋하지만 찬란하게 빛난다. 그림자 탓에 선명히 보이진 않았지만, 딱 봐도 ‘앳된’ 손이 분명했다. 사진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화소가 떨어지는 구식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듯했다. 하지만 그 투박하고 오래된 질감이 오히려 정다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 아이의 한쪽 손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곤 어느 순간 모니터 위에 내 손을 가만히 갖다댔다. 그러자 그 아이의 손과 내 손이 어렴풋이 포개졌다. 컴퓨터 열기 때문인지 액정 위로 온기가 전해졌다. (254~55면) 서하와의 편지를 통해 다시 찾은 생기와 의욕으로 아름은 중단했던 자신의 소설을 다시 써나간다. 하지만 아름에게 주어진 많지 않은 시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가혹한 일들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이제 아름은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과 부모님의 아름다운 한 시절을 영원히 남기고자 한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143면)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벌이는 유쾌한 감동의 드라마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탐색을 멈추지 않는 한편 자신의 비극에 거리를 두고 유머러스하게 삶에 대처해나가는 아름은 근래의 어떤 소설에 견주어봐도 좋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인상적인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아름의 말과 행동, 아름의 문장 들은 때로는 포복절도할 웃음과 기분좋은 미소를, 때로는 가슴을 저미게 하는 슬픔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뭐가 되고 싶어요, 아름인?” “저는……” 한참 뜸을 들이다 나는 수줍게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어요.” “……좀더 설명해줄래?” “누가 그러는데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대요.” “응, 그렇지.” “건강한 것. 형제간에 의좋은 것. 공부를 잘하는 것. 운동을 잘하는 것.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 많잖아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중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냈어요. 그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식이 되자고.” (173면)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라고 서두에 씌어 있다시피 이 소설은 슬픈 운명에 맞서는 아름의 이야기인 동시에 철없던 열일곱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세월이 흘러 여전히 철은 없지만 “미숙한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수록 성숙해지는 부모” 대수와 미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부모에게도 꿈과 욕망, 호기심과 쓸쓸함, 그리고 이 모든 것들로 미숙했던 젊은날이 있었다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대수와 미라의 청춘시절은 읽는 재미와 함께 『두근두근 내 인생』을 더욱 매력적이고 풍성하게 하는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