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의 한파에 내몰린 직장인들의 위기 탈출기
베테랑 노동운동가가 말하는 화이트칼라 노조에서 배워야 할 것들
노조는 이렇게 하는 거라구! 조합원들의 일상 속에 파고든 유쾌 발랄 노조 활동기
1. 평범한 직장인들의 좌충우돌 노조 결성기
회사가 위기에 빠질 때 평범한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퇴직금을 받고 명예퇴직을 선택하는 일? 구조조정 당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맘 졸이는 일? 엘지카드 그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들은 좀처럼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일등 카드 회사였던 엘지카드가 사실상의 부도 상태로 치닫던 2003년 겨울, 경영진이 부실 경영의 짐을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거액을 챙겨 도망가 버린 상황에서 ‘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이 책은 처음 ‘노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의자를 뒤로 빼던’ 평범한 직장인들이 회사가 매각되는 위기 속에서도 노조를 만들어 일자리를 지켜 내고, 꿋꿋하게 위기를 극복해 낸 5년간의 기록이다.
2. 위기 속 직장인의 전화위복 생존 프로젝트
① 부도 위기에 빠진 회사에서 고용 안정을 달성하라!
채권단이 들이닥치고 비상 경영 체제 운운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값에 회사를 되팔기 위해 조기 경영 정상화를 꾀한다. 하지만 새 경영진 앞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은 인력 감축에 대한 불안으로 노심초사다. 이런 상황에서 엘지카드 노조는 경영 정상화를 통해 엘지카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생존권 사수를 위한 싸움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는 길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조기 출근과 토요일 근무도 앞장섰고, 노조원들의 원망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경영 정상화 이행 각서(MOU)에 포함된 각종 독소 조항들을 걷어 내기 위해 채권단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는 등 강경 대응도 주저하지 않았고, 경영 상황 악화를 들어 단협 개정을 미루는 사측에 맞서 1차 단협에서 조합원 범위를 모든 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로 확대하는 성과를 이뤄 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차 단협에서는 1년간 무분규 선언을 대가로 노조와의 합의 없이는 조합원의 고용 조건이나 근로조건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고용 안정 조항을 명문화한다.
② 부실 경영으로 휴지조각이 돼 버린 우리사주의 책임은 경영진에게!
2004년 1년간 급여 동결, 조기 출근, 복리 후생 중단 등 노동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회사 경영은 흑자로 전환한다. 하지만 회사를 공중 분해시켰던 엘지 재벌과 경영진은 일찌감치 도망가 버린 상태였고, 책임과 고통은 오롯이 남겨진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여기서 무엇보다 큰 문제가 됐던 것은 우리사주 문제였다. 2004년 5월 행해진 대규모 감자로(43.4 대 1)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주식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고, 2005년 3월에 또다시 5.5 대 1 감자가 이뤄지면서 1인당 평균 5천만 원의 빚만 남은 셈이 되었다. 특히 우리사주를 많이 사서 1억 넘는 빚을 지게 된 ‘만주(1만 주)클럽’ 회원들은 ‘감자’탕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 되었고, 사무실은 청첩장도 사라지고 새로 가진 아이 소식도 사라진 그런 곳이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우리사주 문제 해결을 직접 요구하기보다는 엘지그룹의 부도덕성을 최대한 부각시켜 대주주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노조는 우리사주를 개인 투자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채권단 앞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엘지 대주주뿐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며, 우리사주 문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노조원들의 분노를 표출시킴으로써 조합원들의 결속을 꾀했다. 이는 또 금감원과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한 현안 대응 투쟁의 일환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사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을 당사자는 현 경영진이었기 때문에 노조는 대주주 투쟁과 동시에 노사 협상을 통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병행해 나간다. 결국 우리사주 문제는 경상 이익 목표치를 초과했을 경우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여 이를 빚을 갚는 데 쓰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③ 회사를 매각하겠다고? 우리가 대주주를 바꾸는 거야!
회사 경영이 회복세를 타자 채권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매각 시나리오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흔히 회사가 매각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구조 조정이 진행되고 ‘나도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명예퇴직을 선택해 퇴직금을 받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지만 엘지카드 노조의 생각은 달랐다. 매각은 곧 구조 조정을 의미하며 고용 불안과 열악한 근무 조건을 감내해야 한다는 수세적인 마인드에서 탈피해 치밀한 전략을 통해 적극적으로 매각 위기에 대처하겠다며 발상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그들에게 매각은 새로운 경영진과의 협상을 통해 오히려 보다 나은 근로 조건과 급여 조건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이런 취지에서 ‘매각’을 ‘대주주 변경’이라는 용어로 바꾸고 대주주 변경 투쟁을 시작한다.
투쟁 과정에서 노조는 매각 단계별로 투쟁의 목표와 전략을 설정하고, 채권단과 정부 사이에서 노조 활동을 통해 회사 가치를 높이는 데도 일조한다. 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국민 여론을 조성하는 일과 집행부와 조합원 사이의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를 구축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매각 당하는 회사의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 직원이 아니라 직접 매각 조건과 인수자를 결정하는 주체로서 대주주 변경 단계에서 일어나는 고용, 노조, 단협 승계를 실현시킨다.
3. 노조 활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다
① 계약직과 함께한 노조 5년
엘지카드 노조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비정규직인 계약직 노동자를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기껏해야 2년을 버틸까 말까 한 계약직의 상황으로 인해 이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한 데는 노동자의 힘은 다수를 포함하는 쪽수에서 나오며, 가장 어려운 약자들의 고생을 덜어 주는 것이 노조가 할 일이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상식’을 따른 것이었다.
② 조합원들의 일상 속에 파고든 유쾌 발랄 노조 활동
각종 위기의 국면마다 거리 집회를 하고, 연좌 농성을 하고, 회사와 협상을 하는 일이 이들이 벌인 노조 활동의 전부는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2천여 조합원들이 월차까지 써가며 한날한시에 여의도에 집결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가 꾸준히 갈고 닦아 온 일상 속의 노조 활동 덕분이었다.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한 달에 두 번씩 모여 모든 직원이 노조 집행부의 고급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수다도 떨면서 연대감을 키우는 ‘조합원의 날’ 행사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조원 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파고든 각종 활동들(효도 관광, 여직원을 위한 금연 캠페인, 알뜰 장터, 문화 공연 할인 행사, 책과 DVD 대여, 고충 상담방 운영, 사회봉사활동, 생리휴가 사용 운동, 문예패 활동 등)은 엘지카드 노조 5년의 활동을 가능케 했던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일상사 엿보기
엘지카드 노조 활동기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한 구석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접하고 있지만 한 번도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37만 콜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다. 낯선 사람과 하루 2백 통이 넘는 통화를 하면서 끼니도 편히 챙겨 먹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 언제나 맑고 유쾌한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무례한 전화에도 제대로 대응 한 번 못하는 감정 노동자, 카드 회사의 ‘꽃’이라 불리지만 계약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노조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엘지카드 노조다.
4. 또다시 찾아온 겨울, 하지만 봄을 꿈꿀 수 있는 그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간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