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핫한 바로 그 음식,
‘평양냉면’을 위한 최초의 본격 가이드북
지난 4월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만찬 자리에 평양 옥류관의 냉면이 오르면서 평양냉면은 폭발적인 관심의 한가운데 섰다. 평양냉면의 인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평뽕(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빗댄 표현)’, ‘평부심(평양냉면 자부심)’ 등의 각종 신조어를 낳을 만큼 평양냉면은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20~30대 젊은 층을 포함한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미식의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이뿐 아니라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식초, 겨자, 다대기는 넣지 말아야 한다’, ‘면을 가위로 잘라서는 안 된다’ 등 마치 의식을 치르듯 ‘평냉’을 떠받드는 태도를 낳기까지 했다. 다른 한편 ‘밍밍한 음식’이라는 혹평이 존재할 정도로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음식이다. 또한 일반 가정에서 요리해 먹을 수 없는 난이도 높은 음식이자 평균 한 그릇 가격이 1만 원이 넘는 고급 한식으로 자리 잡았고, 비교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도 많은 편이다. 한마디로 말 많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음식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이 책은 이처럼 높은 관심과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평양냉면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음식 비평서이다. 사실 간단한 온라인 검색으로도 접할 수 있는 평양냉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게다가 거의 모든 음식점이 ‘맛집’이라 광고되는 맛집 과잉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평양냉면만큼 고유한 완성도나 나름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는 음식이라면 정보의 단순 나열과 조합이 아닌, 체계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분석과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더불어 (옥류관의 냉면이 재점화한 바 있는) ‘진짜’ 평양냉면을 둘러싼 실체 없는 갑론을박에서 벗어나, 현재 우리가 즐겨 소비하고 있는 동시대 평양냉면의 양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격 평양냉면 가이드북이라 할 만한 책을 읽고, 냉면을 먹고, 이야기 나누기에 더없이 시기적절한 때가 또한 바로 지금이다.
제대로 알고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미각의 원리로 그려내는 동시대 평양냉면 맛 지도
2017년 한 매체에서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기도 한 음식 비평가 이용재는 한식에서 평양냉면이 갖는 특이성과 비평적 가치를 인지하고 오랫동안 평양냉면을 다뤄왔다. 홈페이지나 잡지 기고를 통해 꾸준히 평양냉면 전문점 리뷰를 써왔고, 전작 『한식의 품격』에서는 평양냉면을 ‘한식의 거울’로 규정해 분석함으로써 한식을 위한 맛의 과학을 논하기도 했다. 이번 책은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서울?경기 지역의 본격적인 평양냉면 서른한 곳을 리뷰하며, 동시대 평양냉면의 맛 지도를 그려낸다. 요컨대 예외적인 한식 담론을 펼쳐온 저자가 예외적인 입지를 점하고 있는 평양냉면을 단독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개별 평양냉면이 내는 ‘맛’에 집중한다. 면, 국물, 고명, 반찬 등 냉면 한 그릇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메밀이 함유된 면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고소한 맛, 뜨거운 고기 국물처럼 진하게 끓일 수 없어 더 어려운 냉면 국물이 이루는 짠맛과 감칠맛의 균형, 고명으로 올라간 각종 채소와 고기의 질감, 그리고 식당의 접객 수준과 환경까지 꼼꼼히 음미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슴슴한 국물’,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같이 평양냉면에 대해 흔히 유통되는 표현으로 맛을 묘사하지 않는다. 나아가 흔히 슴슴하고 밍밍하다고 일컬어지는 맛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평양냉면의 정체성 또는 미덕이라고 통용되는 공식이나 관념이 맛의 기준에서 과연 최선인지 재고한다. 이를 테면 특정 계열의 냉면에 들어가는 고춧가루가 하나의 전통이자 감정적인 요소 이상으로 맛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지, 습관처럼 올라가는 삶은 달걀이 평양냉면의 세심하고 미묘한 면과 국물에 어울리는 고명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는 냉면의 현대화와 체계화를 위한 비판적 문제의식으로서 더없이 값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능수능란하게 피어나는 메밀 면의 까슬함”, “아슬아슬한 감칠맛”, “공업의 맛”, “최선을 다한 모사”처럼 귀와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의 언어를 읽다 보면 (평가 결과가 비록 부정적일 때에도) 시원한 냉면 한 사발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다시 말해 평양냉면의 세계를 실제로 깊이 있게 탐방해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은 실용적인 가이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낸다. 기본적인 식당 정보뿐 아니라 면, 국물, 고명?반찬, 접객?환경, 총평이라는 다섯 개 항목으로 구성된 평가 표를 담아내 각 평양냉면의 장단점과 특징을 한눈에 파악하고, 서로 다른 냉면을 보다 용이하게 비교해볼 수 있다. 사발 개수로 표현한 별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흥미 요소다. 이와 함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당들의 위치를 정리한 ‘평양냉면 맛 지도’와 ‘리뷰 노트’를 수록해 직접 평양냉면 순례를 하고, 정교한 맛보기를 시도해보도록 북돋고 있다.
■ 면:
우래옥의 장점은 무엇보다 완성도의 일관성이다. 한여름 점심시간, 로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손님이 잔뜩 밀린 상황에서도 냉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냉면, 즉 차가운 국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늘함에서 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똬리를 튼 면에 속속들이 서려 있다. 이 면을 젓가락으로 국물에 풀어내는 순간, 청량감이 국물로 퍼지며 한 그릇의 냉면이 비로소 완성된다. 서늘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온도 위로 능수능란하게 피어나는 메밀 면의 까슬함이 돋보인다. (23쪽)
국물에 비해 면은 미묘하도록 나긋나긋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압출, 즉 틀에 반죽을 넣고 뜨거운 물 위에 짜내는 방식으로 순간을 잘 포착했다. 가늘지만 힘이 아주 없지는 않아 적어도 한 대접을 다 비울 때까지는 버텨주는 데다가 미세하게 돋아 있는 꺼끌꺼끌함이 지루함도 막아준다. (60쪽)
■ 국물:
이론과 논리로 쌓은 맛이 있고 세월과 경험으로 쌓은 맛이 있는데, 이 국물은 후자의 완성형 같은 느낌을 준다. 조금 과장을 보태 흑마술이나 연금술이 개입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균형을 거의 완벽하게 이룬 가운데 맑음과 감칠맛의 대비가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대체로 국물이 맑다면 감칠맛이 강할수록 조미료의 거칠음roughness도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런 자취가 전혀 없다. 서늘함과 차가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다른 평양냉면 전문점보다 약간 차다 싶은 온도도 깔끔함에 한몫 보탠다. 이 모두를 감안하면 뒷맛도 깔끔하다. 가쓰오부시가 대표하는 일본식의 ‘맑지만 감칠맛의 켜가 뚜렷한 국물’에 대응하는 한국 대표로 손색이 없다. (27쪽)
국물은 짠맛 위주에 감칠맛이 아슬아슬하게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먹고 난 뒤의 꺼끌꺼끌한 여운이 좀 오래가는 편이지만 간신히 불쾌하지 않은 선에서 멈춘다. 한편 면도 살짝 질척거린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지만 의정부 계열처럼 질기지 않고, 굵기도 적당히 유쾌하다. (50쪽)
묵직하다면 묵직할 고기 국물의 균형을 동치미 국물로 절묘하게 잡았다. 두 켜가 각각 따로 흐르는 것 같다가도 머금고 또 삼키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표정이 뚜렷하고 중심이 잘 잡혀 있으니, 양념 갈비 등의 직화 구이나 딸려 나오는 여러 반찬, 특히 매운맛에도 크게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다. 면은 가닥가닥의 존재감이 까슬하니 뚜렷하면서도 한데 모여 든든함을 구축한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밥 같은 냉면’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53쪽)
단순히 고기 국물의 대체라고 폄하하기에 동치미 국물은 나름의 확실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고기 국물에 딱히 뒤지지 않는 자신만의 확실한 켜와 두께를 발효의 감칠맛으로 확보했을 뿐 아니라 시원함마저 갖추고 있다. 게다가 그 자체로 완결된 간을 갖추고 있으니 흔히 전해 내려오는 ‘진짜’ 평양냉면의 추억(‘긴 겨울밤에 야식으로 차가운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