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동시대적인’ 작가 톨스토이
19세기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종교적 모순을 드러낸 문제작이자
‘흔들리는 인간’에게서 부활의 가능성을 모색한 만년의 걸작
“인간은 강과 같다. 어디에 있든 물은 똑같고 변함없다. 그러나 어느 강이나 좁고 ᄈᆞᆯ라졌다가 다시 넓어지기도 한다. 잔잔해지고, 깨끗해지고, 차가워지고, 탁해지고, 따뜻해진다. 인간도 그렇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호 톨스토이의 『부활』 개정판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를 통해 젊고 섬세한 감각을 선보이며 러시아 고전의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한 번역가 연진희가 번역을 맡았다. 『닥터 지바고』로 잘 알려진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이자 유명 화가였던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의 삽화를 추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보는 재미를 더했다.
『부활』은 톨스토이가 일흔이 넘어 완성한 만년의 역작으로 고골, 푸쉬킨, 도스토옙스키를 아우르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한 오마주이자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와도 맞닿는 인간과 구원에 대한 최종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종교적인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에서 정신적인 ‘부활’을 향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타락한 인간, 정신적인 부활을 꿈꾸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는 언제나 그 사랑이 정점에 이르는, 그 안에 의식도 이성도 심지어 관능도 전혀 없는 순간이 있다. 부활절의 그 밤이 네흘류도프에게는 그런 순간이었다.” (1권 130쪽)
네흘류도프 공작은 살인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카츄샤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한다. 대학생 시절의 공작은 카츄샤를 향해 순수한 애정을 품은 적이 있다. 그러나 군인이 되어 재회했을 때 다른 남성들에게서 배운 대로 카츄샤의 감정과 육체를 마음대로 다룬 후 그녀에게 돈을 찔러 주었으며, 그 후 캬츄샤는 인간에 대한 불신 속에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재법정에서조차 무책임한 법조인과 배심원들로 인해 죄도 없이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 장면을 목격한 네흘류도프는 오랜 시간 자신을 옥죄던 죄책감과 함께 카츄샤를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선한 영향력, 집필의 동기가 되다
톨스토이는 정부로부터 억압받는 두호보르 교도들을 돕기 위해 『부활』을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두호보르교는 18세기부터 러시아에 존재한 그리스도교 종파로 교회를 부정하고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거부해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정부가 이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학대와 폭력이 자행되었고, 이 소식을 접한 톨스토이는 국제 여론에 호소하는 등 폭력을 멈추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특히 그는 1881년 이후 저술한 작품에 대해 저작료를 받지 않기로 한 원칙을 깨고 집필 중이던 『부활』을 필사적으로 마무리해 주간지 《니바》와 선금 1만 2000루블에 출판 계약을 맺어 그 돈을 전부 이주비에 보탰다. 이처럼 『부활』은 집필 과정부터 인간 사회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지만 그럼에도 선한 영향력을 믿었던 톨스토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한 만년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흔들리는 인간’으로 충분하다
“이날 밤 이후 네흘류도프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그가 새로운 생활 조건 속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때부터 일어난 모든 것이 그에게 이전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띠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이 새로운 시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미래가 보여 줄 것이다.” (2권 446쪽)
『부활』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지 않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네흘류도프는 물론, 힘든 노동 대신 화려한 유곽에서의 삶을 택했던 카츄샤 역시 그렇다.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의 타락은 그보다 훨씬 고질적이며 광범위하다. 그럼에도 톨스토이는 양심에 깃든 부끄러움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에서 정신적인 ‘부활’을 향한 미약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미약한 불빛을 과장하는 대신 파편적이고 불안정한 실체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뜨거운 비판과 애정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