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어쩌다보니 삶에 술을 반려하게 된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혼술 메이트 에세이 “우리는 자신에게 좀 더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16도와 40도의 취기가 만드는 아우성 저 밑바닥에 숨겨둔 ‘날것’의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 여기 술을 반려하는 두 작가, 아니 두 명의 주정뱅이가 있다. 주종을 가리지 않으며 몸에 주유가 최우선인 음주를 즐기는 설재인과 확실한 취향으로 마시는 주종이 꽤 명확하며 즐거움을 위한 음주를 즐기는 이하진. 주종도, 술자리 취향도, 술을 처음 접한 음주 문화도, 주사도, 무엇 하나 맞지 않는 두 주정뱅이가 함께 술을 마시며 편지를 썼다. 정확히는 매번 술을 마실 때마다 서로에게 긴 글을 보냈다. 단 하나의 궁금증 때문에. ‘혼자 술을 마시는 내가 누군가와 함께 마시면 어떨까?’ 그렇게 시작된 음주가 한 잔, 두 잔, 세 잔이 되니 설재인, 이하진 작가는 한 질문을 마주했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실까?’ 대부분 거하게 취기가 올라 쓰인 편지들은 이 물음에 대한 거짓 없는 대답이다. 때론 거칠고, 찌질하고, 화끈하기도 한 두 작가의 글은 우리에게 꾸밈없는 나를 마주하도록 이끌고, 마침내 두 주정뱅이와 같은 질문에 다다르게 한다. 마시지 않고 취할 수 있다면,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을까? 《취중 마음 농도》는 술을 마시며 마주하는 ‘쿰쿰한 나’에 관한 설재인, 이하진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 삶에는 많은 결핍이 존재한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상처, 꿈꾸는 일에 재능이 없다는 자각, 인정받고자 애쓰지만 닿지 못하는 기준선,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할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소외감,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인 초라한 일상.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는 이 결핍은 때때로 우리를 좌절케 한다. 두 작가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버텼던 지난날과 지금을 편지에서 거침없이 풀어낸다. 술기운을 빌린 이 고백은 이따금 우리에게 ‘콤콤하게’ 다가온다. 허나 기억해야 한다. 삶이 언제나 꽃향기만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나온 시간 속에 진한 냄새로 남은 그 순간들은 어쩌면 버텨내고자 했던 우리의 땀방울로 이뤄진 체취라는 사실을. 결코 역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생이 늘 아름답고 우아할 수 없기에, 이 책은 수많은 결핍 속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내게 하는 것들에 관한 ‘날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몸에 알코올이 흘러넘치는 두 주정뱅이의 ‘문학적 씨부럴’ 설재인, 이하진 작가는 삶에 술을 반려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모든 게 다르다. 오직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만으로 두 사람의 편지가 시작된 것이다. 1부 ‘취중 마음 농도 0.05’에는 두 주정뱅이의 취향적 반목이 담겨 있다. 둘의 다름은 첫 만남에서부터 드러난다. 무려 한 잔에 5만 원씩 하는 위스키를 마시고 설재인 작가가 “향이 그냥 위스키네요”라고 답한 순간부터 말이다. 그는 대략 소주파로, 정확히는 주종을 가리지 않는 반면 이하진 작가는 위스키를 즐긴다. 음주 습관도 정반대다. 한 명은 피곤할 때 과음과 우울할 때 혼술을 금하지만 다른 한 명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두 주정뱅이의 차이는 1부 에피소드 곳곳에서 드러난다. ‘폭음의 변: ‘문학적-설재인’과 ‘씨부럴적-설재인’’ ‘행복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에는 술을 먹기 시작한 각자 이유가, ‘생전 숫자를 가져본 적 없는 청년들을 향한 사랑’ ‘아메리칸 스타일’에는 음주에 얽힌 자신만의 추억이, ‘오 씨는 언제나 그곳에 있어요.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얼음 넣은 맥주와 첫 잔이 정해진 무림 고수의 바’에는 상반된 단골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로의 다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두 사람의 편지는 끝내 하나의 질문을 향한다. ‘우리에게 술은 어떤 의미일까?’ 제게 술은 문학적-설재인이 되지 못하는 씨부럴적-설재인이 문학적 씨부럴의 단계라도 성취하기 위해 주입해야만 하는 기름과 비슷합니다. 일단은 모든 원고를 술 마시면서 쓰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술을 마시며 저를 수백 수천 개의 조각으로 쪼갠 후 하나하나의 인물로 키워내 제 머릿속을 채워야만 외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외롭다는 이유로 사람을 찾게 된다면 저는 다시금 지난한 시행착오와 자기혐오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할 테니까요. (39쪽, 설재인, 폭음의 변: ‘문학적-설재인’과 ‘씨부럴적-설재인’) 아무튼 제게 술은 그런 의미예요. 관계에 대한 욕망. 그게 클 것 같네요. 취해 풀어진다는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친밀감이 있잖아요? 그게 마치 타인과의 우정 따위를 증명받고 확인받는 것 같아서 안심되고, 거기다 오고 가는 이야기도 재밌고요. 나와 기꺼이 시간을 보내주고 내어주겠다는 친밀감의 보증 같아서요. 저는 아직 잠잠하기만 한 메신저와 나 없이 진행되는 즐거운 자리들을 가만히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선 그것을 버티려 하는 것이 폭음의 변이라 하셨지만, 저는 외려 그 정적으로부터 오는 소외감을 어떻게든 깨보려고 술이라는 물건의 효용을 자꾸만 끌어오려 해요. 사람들은 저란 사람을 싫어할지 몰라도, 술은 좋아하잖아요? 그런 셈입니다. (51~53쪽, 이하진, 행복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설재인 작가에게 술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회피하기 위한 도구다. 그는 ‘사람이 무서울 때, 사람이 만들어낸 상황이 자신의 이상으로 가는 길을 막으려 들 때 싸우지 않고 사람을 피해 숨는’다(34쪽). 외로워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옆에 있으면 포악해지는 자신을 견딜 수 없으니까. 이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며 글을 쓴다. 반대로 이하진 작가에게 술은 관계에 대한 욕망이다. 타인과 이어지기 위해 음주한다. 술로 인해 풀어지는 친밀한 분위기 속 취기를 빌려서라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타인에게서 고립시키기 위해 술을 선택한 사람과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술을 반려하는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진 그들을 보며 우린 묻게 된다. 우리에게 술은 무엇일까? 사람이 미치도록 좋고, 사람이 미치도록 싫습니다 2부 ‘취중 마음 농도 0.15’에서 두 작가의 편지는 술과 함께했던 것들로 확장된다. ‘술은 그 자체로 무언가를 남기기 힘들’고 ‘술과 함께하는 것들이 휘발하는 풍미에 불과한 에탄올 용액을, 음주라는 추억으로 남게 해준다’는(140쪽) 이하진 작가의 말처럼 우린 어쩌면 술 자체를 좋아하기보다 좋은 음주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술과 함께하는 것들’ ‘마지막엔 꼭 구명정을 던져줄게’에는 술을 마시는 장소와 함께하는 사람에 관한, ‘안주의 감각’ ‘술과 안주가 맛있는 경험’에는 술 한잔에 딱인 안주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에겐 꽤 자주 지겹도록 지지고 볶는 사람 대신 소설 속 등장인물이 완벽한 술친구가, 책과 시는 훌륭한 안주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는 두 주정뱅이의 편지는 모두의 해피엔딩을 꿈꾸며 나아간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세상의 레이어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를 어디선가 취기 어린 누군가로 빚어내고 있겠지요. 그는 그 세상에서도 매일 낮술을 마시는 여자처럼 조금은 이질적인 구성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로 인해서 그 술을 외로운 게 아니라 기꺼운 것으로, 아니, 가장 충만한 순간으로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치 제가 그러하듯이요. (152쪽, 설재인, 마지막엔 꼭 구명정을 던져줄게) 모두가 자신의 삶을 주인공이라는 배역으로서 살아가다 감독의 슬레이트 치는 소리에 웃으며 끝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모든 슬픔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161쪽, 이하진, 그 모든 슬픔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 속 술이란 이름의 반려가 주는 의미 많은 사람들은 하루의 고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