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다양한 종류의 출판물을 수집,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 보존한 문화재의 수호자 이야기!
신문과 잡지는 근대의 역사, 문학, 사회사, 정치사, 사상사, 언론사를 포함하여 모든 분야 연구에 활용된다. 흩어진 자료를 정리하여 색인화하고 연표로 만든 사람은 언론에 담긴 정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도 제작에 해당하는 지난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저자 정진석 교수는 40년 넘는 기간 한국 언론사를 연구하면서 장서가(藏書家)들을 많이 만났다. 개화기 이래 이 땅에서 발행된 다양한 종류의 신문, 잡지, 출판물을 수집하여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 보존한 사람들은 문화재의 수호자들이었다. 이들을 한 권에 모아 소개하는 「책 잡지 신문 자료의 수호자-지식의 보물창고를 지키고 탐험로를 개척한 사람들」(소명출판, 2015)이 발간되었다. 본서 속의 인물들 중에는 방대한 출판물들을 한 장씩 뒤지고 꼼꼼하게 정리하여 일목요연한 연표로 작성한 이도 있다. 끈기와 집념, 우직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수집·정리하는 일에 매달리고 자신의 처지로는 감당하기 벅찬 돈을 기꺼이 쾌척하여 보통사람으로는 도저히 엄두내지 못할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문화재의 수호자들-오한근, 백순재, 계훈모
신문 수집가 오한근, 잡지 수집가이면서 서지학자였던 백순재, 서울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가 언론연표를 작성한 계훈모.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신문과 잡지를 모으고 정리하여 학술과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산으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오한근과 백순재는 신문과 잡지를 수집하는 역할을 분담했고, 계훈모는 언론연표를 작성하여 연구자들에게 지식의 탐험로를 찾을 수 있는 안내도를 만들어 주었다.
오한근(吳漢根, 1908.9.8~1974.10.22)이 40여 년 동안 부지런히 수집한 신문은 600종 가까운 숫자였다. 한말부터 발행된 신문의 창간호, 폐간호, 일제 총독부가 검열했던 신문 등 멸실 위기에 처했던 귀중한 지면이 많았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분업화 되어 각 분야에 온갖 전문가가 다 생기고 있지만, ‘신문 수집가’라는 명칭을 붙여서 어울릴 사람은 오한근 이전에도 없었고 장차도 없을 것이다.
백순재(白淳在, 1927.5.1~1979.7.9)는 국내 최고의 잡지 수집가이자 서지학자였다. 그는 유실될 운명의 잡지를 전문적인 안목으로 수집하였을 뿐 아니라 진지한 자세로 잡지의 역사와 근대문학사 연구에도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그가 수집한 잡지 1,544종 1만 1,095책은 ‘아단문고’에 수장되어 있다. 대학이나 공공도서관 어디에도 이만큼 많은 잡지를 고루 수장한 기관은 없다. 백순재는 잡지를 모으고 잡지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희귀한 옛날 잡지 목차를 작성하여 연구자들이 잡지를 직접 찾아보지 않고도 내용과 필자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신소설을 비롯한 문학 관련 자료도 많이 발굴하여 한국 문학의 양적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서였던 계훈모(桂勳模, 1918.8.23~2003.3.25)는 이 책의 저자가 언론사 연구에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고, 반면에 15년에 걸쳐서 「한국언론연표(1882~1955)」 3책을 편찬·발행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계훈모의 언론연표는 항일 언론 항쟁사를 비롯하여 문학사, 사회사, 정치사, 독립운동사와 같은 근현대사 전반의 연구에 기본적인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저자는 자기가 계훈모의 연표 편찬을 지원하지 않았으면 이 귀중한 업적이 햇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안춘근, 김근수, 하동호, 최덕교
서지학자 겸 출판평론가였던 안춘근, 잡지 수집가이자 잡지사 연구가 김근수, 시집을 전문으로 모았던 하동호는 쓰레기로 폐기될 처지였던 책과 잡지를 전문적인 안목으로 찾아내어 보존하고 분류하면서 가치를 부여하여 문화재로 격상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잡지 출판인으로 평생을 보낸 최덕교는 은퇴 후에 3권의 방대한 사료집 「한국잡지 100년」을 펴냈다. 칠순 나이에 잡지 실물을 조사하는 7년 각고 끝에 이룩한 업적이다.
마키노 도미타로, 가지야마 도시유키, 모리스 쿠랑, 언더우드, 마에마 교사쿠
잊을 수 없는 외국인들도 있다. 신문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郎)와 소설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는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언론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를 남겨주었다. 마키노는 식물을 채집하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발행된 신문을 흡습지(吸濕紙)로 사용했다. 폐지로 활용된 그 신문이 세월이 흐른 뒤에 희귀한 자료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난 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유품 속에는 조선총독부의 언론탄압 기록이 끼어 있었다. 그의 유족이 하와이대학에 기증하여 지금은 먼 태평양 한 가운데 보존되어 있다.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미국인 선교사이자 교육자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일본인 서지학자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의 문헌목록은 한국학 연구의 지도와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신문, 잡지, 출판물은 시대의 산물이다. 초창기의 신문과 잡지는 개화, 자주, 계몽이라는 국가적인 거대 목표를 추구하는 사명을 띠고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과 근대화라는 당면 과제를 안고 탄압과 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힘겨운 투쟁을 전개하였다. 신문, 잡지, 도서를 수집하고 목록과 연표를 작성한 사람들은 출판물이 생산되던 시대상과 사상을 지킨 수호자들이었다. 저자는 이제 고인이 된 국내의 수집가, 연표 작성자와는 모두 인연이 있었던 마지막 세대이기에 이 책의 의미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