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서양의 군사직업 태동과 민군관계의 이론 및 실제를 다룬 제1부와 미국에서의 민군관계 발전 양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다룬 제2?3부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본래 직업(profession)이라는 개념 안에는 그것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자아를 실현하며, 나아가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소명의식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직업이 직업으로서의 항속성과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거기에 일정하고도 독특한 전문성이 개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쟁은 인류의 기원과 때를 같이 하면서도, 그것과 직접 연관된 군사전문 직업이 정식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이다. 물론 마리우스(Gaius Marius)의 군사개혁이 정착되기 시작한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군 병사들에게는 직업군인적 색채가 두드러졌고, 중세 이후 유럽에 직업적 용병제도가 성행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군사전문가인 장교의 전문직업화는 이상하리만큼 뒤늦은 시기에 비롯되었다. 고대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업무는 대체로 군주와 귀족들의 소관이었고, 그것은 직업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보다 더 큰 권리를 누렸던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에게 부여된 도덕적 의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과 연이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말미암아 장교는 신분의 상징이 아니라 이제 하나의 전문 직업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력 관리자로서의 장교집단을 국민(국가)이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가가 중대한 과제로 등장되었다. 왜냐하면 외부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무력집단이 내부적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떠한 민군관계가 대내외적 안보를 가장 잘 유지시켜 줄 것인가가 핵심적 목표인 것이다. 이 점을 헌팅턴은 서론에서 밝히고 있다.
이제 초점을 제2·3부의 주제인 미국 쪽으로 돌려보자. 미국 군사전문직업주의의 비조라고 일컬어지는 데니스 하트 마한(해양전략이론가인 알프레드 T. 마한의 아버지)은 우리는 호전적인 면에서는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겠지만, 그러나 아마도 가장 비군사적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인들은 신대륙에 정착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각자가 무장을 갖추고 자위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재산이란 곧 한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최소한의 밑바탕)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권리라는 인식을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일견 호전적이라고까지 비쳐지는 미국인들의 상무정신의 바탕이며, 오늘날 개인의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청교도 이주로 상징되는 개척민 이래의 뿌리 깊은 자유주의 사상은 군대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반군사적 사고로 이어졌다. 원래 역사적으로 볼 때 건국 초기 미국인들의 군에 대한 깊은 불신과 피해의식은 17세기 중반 크롬웰(Oliver Cromwell)의 군사독재에 호된 경험을 한 영국의 유산에서 비롯되었다. 찰스 1세에 항거하여 영국의회가 구성한 크롬웰의 의회군이 왕정타파 후 혹독한 무단정치의 도구로 돌변하자, 영국민들은 고삐 풀린 무력(군)의 위험성을 절감하였던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 대륙의 초기 이민자들은 그러한 선대(先代)의 경험에 덧붙여 미 대륙에 주둔했던 영국 정규군들의 폐해, 즉 주둔비용 등 경제적 손실과 자유에 대한 위협을 경험하였으며, 독립전쟁 시에는 아마추어 장군들이 이끈 시민군(민병대)이 직업적인 장군들이 지휘한 영국 정규군을 이겼다는 과신에 빠졌다. 이것이 미국인들의 비군사적 성향의 배경이었다.
헌팅턴은 자유주의는 군대조직과 군대의 기능을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군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평가했다. 더구나 미국은 1812년 전쟁이 끝난 이후 1941년 진주만 피습이 있기 전까지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무풍지대였다. 국가의 안보는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안보는 미 대륙이 구대륙으로부터 큰 바다에 의해 이격되어 있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확보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자유와 번영에 도취되어 뿌리 깊은 반군 풍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세기 초 소위 신해밀턴주의적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스페인과의 전쟁 등 대외적 개입에 나선 적이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다시 자유주의적 고립주의로 회귀하였으며, 군대도 병영으로 숨어들어 또다시 적대와 소외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헌팅턴에 의하면, 바로 이 소외와 고립의 시기에 미국 군부는 진정한 군사전문직업주의를 확립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헌팅턴은 물론 미국의 위대함이 자유주의적 가치에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가치와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가 확보되어야만 하며, 국가안보는 바로 강력한 군사전문직업 집단의 몫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군사과학 및 기술의 발달이 촉진된 결과 지리적 조건이 더 이상 안보를 위한 방벽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만큼 군사전문성과 상비성의 요구가 증대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헌팅턴은 이 새롭게 거대화된 상비적이고 전문직업적인 무력집단(군)이 미국의 자유주의적 사회와 공존해야 되며, 비록 양자 간에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공존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의 서론으로 돌아가자면, 어떤 민군관계가 안보를 가장 잘 보장해 줄 것인가하는 주제로 귀결된다.
외국 서평
"미국 정치에서 민군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헌팅턴은 그의 기본적인 전제를 수립하고, 이론적인 가설을 성립한 후,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민군관계의 역사와 현재를 분석하는데 기예와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이 책이 보여주는 명쾌함과 정밀성은 이 책을 읽는 기쁨을 더해 준다."
- 『미국 정치학 및 사회과학 아카데미 연보(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
"이 책은 미국과 미국 군인들에 관한 많은 통찰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책이 내리고 있는 결론의 배후에 있는 생각은 강력하고 분명하다. … 이 책은 아직도 정책 결정 과정에 장애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민군관계에 관한 잘못된 편견들을 밝혀내고 있다. …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 『미국 정치학회보(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