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흑사병(페스트)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직한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14세기 초반과 중반까지 유럽 인구의 1/3을 말살시켰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더 정확히는 동쪽의 중국에서 서쪽의 그린란드까지, 북쪽의 시베리아에서 남쪽의 인도까지 무려 2억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런 통계숫자만으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흑사병 시대의 다양한 풍경을 생생하게 들춰낸다. 페스트에 전염된 인간이 어떤 증상으로 죽어가는지는 물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마을 인구의 1/3을 매장해야 할 처지에 놓이고, 신의 심판이 가까웠다고 생각한 이들이 자신의 몸을 채찍찔해가며 희생양으로 유태인을 학살하는 지옥경이 소설 같은 문체로 펼쳐진다.
의학과 인문학의 지식을 결합하여 현재의 우리가 수백년 전의 전지구적 전염병 사태에 품을 수 있는 의문들에도 충실히 답을 내놓는다. 현세에 와서 밝혀진 페스트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당시의 자연환경이 페스트 전염에 얼마나 유리하게 작용했는지, 당시 산업·무역과 흑사병 간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어떤 경로를 따라 페스트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었는지 등에 대한 추적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