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헨리 밀러의 자전적 고백이 담긴 소설 참된 자아에 관한 세밀하고도 절제된 우화 헨리 밀러의 소설 『The smile at the foot of the ladder』가 『신의 광대 어거스트』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시어처럼 아름다운 글, 철학자 김수영의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번역, 여기에 노작가 이제하의 독특하면서도 따듯한 그림이 더해져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세 사람의 합주를 듣는 듯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이제까지 썼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소설”이라고 불렀던 이 세밀하고도 절제된 우화는 밀러가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194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광대 어거스트의 이야기를 통해 참된 자아의 의미를 묻고 있다. 30년대에 프랑스에서 작가활동을 시작해 곧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헨리 밀러는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으며 작가로서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밀러의 주변에는 언제나 진보적인 작가들이 모여들었으며, 60년대에는 동시대 예술가들로부터 자유의 상징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작가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화려한 생애를 살았지만 그는 인생의 절정기에 이르러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을 버거워했다고 한다. 이렇듯 인생의 절망과 절정을 모두 경험한 작가가 자기 삶을 되돌아보며 철학적 명상에 잠겨 써내려간 글이기에 짧은 길이의 작품임에도 마음을 파고드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이미 우리에게 속해 있던 것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나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행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신의 광대 어거스트』의 주인공 어거스트도 마찬가지다. 이름 난 광대 어거스트는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을 두꺼운 분장으로 감춘 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자기의 본래 얼굴을 감춘 채 사람들을 대하는 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나의 모습이 정말로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면 뒤의 삶에 자기 자신을 빼앗긴 슬픈 존재. 이는 비단 광대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본래의 얼굴을 잃어버린 채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광대처럼 다른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데 열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광대 어거스트의 슬픔은 우리 모두의 슬픔이자 고뇌이기도 하며,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다. 어거스트는 만인의 주목을 받던 광대였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공허하다고 느끼고 참된 자아를 찾아 떠나게 되면서 어거스트라는 이름은 하나의 전설이 되고 만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옛 동료들이 있는 유랑극단을 발견한 어거스트는 그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평범하고 조용한 나날을 보낸다. 화려한 무대와 박수갈채 대신 경건한 노동과 평온한 미소를 얻게 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어거스트. 하지만 아파서 몸져누운 친구 앙투안을 대신해 무대에 서게 되면서 어거스트는 또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평범한 광대 앙투안을 유명한 스타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어거스트의 선의가 오히려 두 사람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새롭게 태어난 앙투안은 진정한 앙투안도 진정한 어거스트도 아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는 던지는 두 번째 질문과 만난다.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혹은 그런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오랜 방랑과 고뇌 끝에 어거스트는 비로소 자신이 세상의 광대가 아니라 신의 광대였음을 알게 된다. “그의 참된 비극은, 또 다른 세상, 무지와 연약함 너머의 세상, 웃음과 눈물 너머의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라는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어리석은 오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거스트의 이러한 깨달음은 눈물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는 그가 마지막 짓는 평온한 미소에서 “이미 우리에게 속해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철학 우화 나에서 ‘나’로 되돌아오는 신비로운 여정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언뜻 보아 명료하다.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린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대 어거스트라는 인물을 통해 나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자신을 비웃는 법을 배운다. 나 자신으로 돌아올 때에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거스트의 눈물 섞인 깨달음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러나 책을 덮은 뒤에도 물음은 계속 이어진다. 예술가로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밀러의 고뇌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 작품은 진정한 자아에 도달하려는 한 영혼에 관한 우화이자 나에서 ‘나’로 되돌아오는 유토피아적 여정이 담긴 이야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거스트는 마침내 어거스트로 되돌아온다. 그는 내가 바로 나 자신일 때 비로소 참된 행복으로 향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옮긴이의 말처럼 “우리는 그의 미소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나일 때, 그래도 나는 여전히 타인의 얼굴로 분장한 광대일 수 있을까? 혹은 내가 광대일 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나일 수 있을까? 그래서 어거스트의 이야기는 그의 죽음으로 끝나야 하는 것일까?” 이 작은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렇듯 숱한 철학적 물음과 함께 해석의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햇볕 많은 수요일 오후, 이 책과 함께하는 당신의 짧은 시간이 참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신이 보낸 인생의 무대에서 웃고 사랑하고 껴안고 몸부림친 어거스트의 삶을 행복하게 지켜볼 수 있다면 먼지 쌓인 식탁 위에 올려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손에 쥐고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뒤적거렸던 이 책에 대한 옮긴이의 애정을 당신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옮긴이의 말을 지도 삼아 책 속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행복의 비밀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에게도, 이제 막 ‘나’를 향한 시끄럽고도 긴 여행을 시작한 청소년들에게도 분명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