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비자

안나 제거스 · Novel
4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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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36권. 2차대전 반파시즘 망명문학의 상징이자 동독 최고의 작가 안나 제거스의 대표작.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의 공산당원이었던 안나 제거스는 나치 치하에서 작품이 불태워지고 체포되는 등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프랑스 마르세유로 탈출하면서 기나긴 망명 생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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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비자 작품해설 / ‘통과세계’, 위기의 현상학 작가연보 발간사

Description

망명문학의 정점 안나 제거스의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작품 2차대전 반파시즘 망명문학의 상징이자 동독 최고의 작가 안나 제거스의 대표작 『통과비자』가 국내 초역되었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의 공산당원이었던 안나 제거스는 나치 치하에서 작품이 불태워지고 체포되는 등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프랑스 마르세유로 탈출하면서 기나긴 망명 생활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마르세유에서 쓰기 시작해 멕시꼬로 건너간 뒤인 1944년에 에스빠냐어, 영어, 프랑스어로 먼저 출간되었는데,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과 사건들이 제거스의 망명 체험과 거의 그대로 일치해 제거스의 “가장 개인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극심한 공포에 내몰린 망명자들이 몰려들어 마치 세계의 마지막 항구처럼 되어버린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파시즘의 공포와 허망한 희망, 도주의 권태에 사로잡힌 망명자들의 정신세계를 깊숙이 파고든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개인사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기의 경험과 정서가 매우 직접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자전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전기적인 사실과는 다른 요소들 역시 효과적으로 직조되면서 소설로서의 단단한 완결성을 획득한다.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허구를 잘 쌓아올린 망명문학의 걸작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은 이 소설을 “거의 완전무결”하며 “제거스가 쓴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은 바 있다. 2차대전, 세계의 마지막 항구에 다다른 이들 그림자를 쫓는 그림자가 되어버린 삶 “죽음이 어느새 여전히 건재한 펄럭거리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들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바짝 따라붙었다. 아마도 나는 죽음을 마주친 적이 있고 앞지른 적이 있어서 그랬는지 죽음 자신도 도주 중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누가 죽음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97면) ‘나’는 2차대전 파시즘의 물결이 온 유럽에 몰아치는 와중에 독일에서 강제수용소를 탈출해 빠리로 도망쳤다가 우연히 마주친 수용소 동료로부터 바이델이라는 작가에게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바이델을 만나러 간 ‘나’는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엉겁결에 미완성 유고와 멕시꼬 비자가 든 그의 가방을 떠맡는다. ‘나’는 다시 나치의 침공을 피해 마르세유로 떠나고, 누군가를 찾아 온 거리를 헤매는 여인을 운명처럼 발견한다.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홀린 듯 그녀를 뒤쫓던 ‘나’는 복잡하게 얽힌 인연 속에서 피난을 온 한 의사의 연인인 그녀, 마리를 알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도주 중”이고 “모든 것이 지나가버리는 것에 불과”한(55면) 곳에서 ‘나’ 역시 마리를 쫓아 유럽을 떠나려는 난민 무리에 휩쓸려들어가고, 바이델의 신분과 비자를 빌려 영원히 반복되는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서류 전쟁에 뛰어든다. “당시에 모두가 바라는 오직 한가지 소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또 모두가 두려워하는 단 한가지 공포는 뒤에 남게 되는 것이었다.”(197면) 작품의 배경인 1940년 무렵의 프랑스는 독일군이 빠리를 침공하면서 남쪽으로 향하는 난민들이 줄을 잇던 시기였다. 이로 인해 프랑스 남부, 특히 유럽을 탈출할 마지막 항구로 여겨진 마르세유는 오직 떠나는 일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는 자들로 거대한 난민수용소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망명자들은 임박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비자 발급을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는 서류 절차 속에서 차츰 원래의 목적도 잊은 채 떠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오직 통과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 통과 그 자체가 목적이자 이유인 ‘통과비자’이다. 소설에서는 이같은 맹목적이고 강박적인 탈출 열망을 ‘출국병’이라고 일컬으며, 떠나고 또 떠나는 일에, 그저 통과하는 일에 매달리게 되는 그들의 존재 형태를 ‘통과적인 삶’, 그 세계를 ‘통과세계’라고 규정한다. 무너져버린 세계에서 또다시 희망을 기대하는 역설 “당신은 아마 저 죽은 남자의 동화를 알 거요. 그는 영원히 기다렸는데, (…) 그러고 나서 그는 판결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어요. 기다리는 걸 더이상 참을 수 없던 거지요. 그에게 내려진 대답은 이랬어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느냐? 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옥에 있는 게 아니더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멍청하게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지옥이었으니까 말이오. 대체 무엇이 그보다 더 지옥 같을 수 있겠소?”(287면) 소설의 주무대인 마르세유는 각종 서류를 얻으려고 모여든 자들이 영사관들과 관공서, 항구, 거리, 까페를 하릴없이 헤매는 아수라장, 이해할 수 없는 원칙들과 범접할 수 없는 관료체제의 미궁으로 묘사된다. 서류를 다 갖추고도 한순간의 촌극으로 죽음을 맞는 늙은 지휘자, ‘신원 보증용’으로 두마리 개를 끌고 다니는 중년 부인, 출국에 실패한 후 하루 종일 굴만 먹어치우는 여자 등 지옥 같은 세계를 떠도는 이름없는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반복되는 일들, 반복되는 대화들,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되풀이되며 일상세계의 견고함을 상실한 “무너져버린 삶”(197면)의 무의미성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뿌리를 상실한 채 탈출에만 매달리느라 서로를 배반하고 유대를 깨는 일들이 스스럼없이 반복되고, 그저 ‘통과’에 불과할 뿐인 절망적이고 공허한 세계가 거대한 덫처럼 모든 이들을 가두고 끌어들인다. 그러나 다른 세계 또한 있다. 빠져나가기만을 열망하는 “이 무너져버린 땅”에서도(197면) 여전히 “빵과 물처럼 평범한 삶”을(249면)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배신이 특별할 것 없는 시대에도 다른 이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인간적 결합의 순간들이 있다. 화자의 수용소 동료인 ‘외다리’ 하인츠 이야기가 대표적인데, 탈주가 불가능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필사의 도주길에서도 그를 저버리는 않는 많은 이들 덕분에 끝내 살아남아 유럽을 무사히 떠난다. 혼돈과 권태 속에서 이 모두를 정처없이 부유하던 화자는 그림자와도 같은 여인 마리를 붙잡으려다 어느새 출국병자들의 행렬로 점점 빨려들어간다. 마침내 모든 것들이 그 끝을 보이던 순간, 화자는 불투명함으로 가득 찬 통과자들의 세계에 가려졌던 다른 ‘중요한 것’을 보게 된다. “머물기 위해”(210면) 온 사람들의 도시, 평범한 삶이 지속되는 곳, 역사의 굴곡에도 제 삶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자들의 세계에 새롭게 눈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남아 있으려고 해야 한다. 모든 도시는 단지 통과하기 위해서만 그 도시들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370면) 이처럼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부조리한 세계의 절망적 상황과 죽음의 분위기가 전환점을 맞이하며 다시 한번 희망도 위험도 받아들이리라는 낙관적 비전을 제시한다. 여기서 ‘나’를 통해 드러나는 이 세계에 대한 낙관주의적 인식은 무작정한 당위가 아니라, 연대성과 평범한 삶의 세계를 발견하기까지 덧없는 통과의 세계를 거친 뒤에야 체득할 수 있는 필연적인 귀결로서 나타난다. 이 작품이 제시하는 낙관주의는 2차대전 시기의 망명체험과 반파시즘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훨씬 사소하고, 비영웅적이다. 작가는 승리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나 당위로서의 희망을 외치지 않고, 역사의 질곡에도 담담하고 끈질기게, 함께하는 삶을 무너뜨리지 않고, 태곳적부터 늘 그렇게 이어져온 사람들의 세계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며 패배 뒤에 고개를 드는 낙관을 역설한다. 파시즘의 물결이 뒤덮은 유럽의 분위기에 대한 생생한 르뽀르따주로나 가장 절망적인 시기에 대한 개인적인 회고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안나 제거스는 역사적 위기에 대한 사실적인 재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끝내 진짜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 ‘나’를 통해 제기되는 정체성 상실의 문제, 한 여인을 둘러싼 미묘하게 얽힌 관계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자살한 작가 바이델을 둘러싼 역설과 미스터리,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권태와 같은 모티프를 능숙하게 엮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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