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광활한 언어의 우주에 쏘아올린
폭죽 같은 열네 편의 이야기
<뉴욕 타임스>, <타임>, 아마존 선정 2011년 최고의 책!
지금까지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기억해야 할 이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미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린 《끈이론―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가 출간되었을 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월리스의 작품에 서문을 쓰는 중책을 맡아 현란한 언어의 향연을 펼친 설리번의 내공을.
우리에게는 완전히 낯설지만,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주에서 성장하고 미국 남부문학의 중심지인 스와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시작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대학을 마친 뒤 아일랜드에서 잠시 “방황기”를 보낸 설리번은 <옥스포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하면서 미시시피주에서 한 달을 살았다. ‘올 미스’라는 호텔의 갈색 카펫이 깔린 방에서 지냈는데, 바로 근처에서는 창녀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설리번은 <옥스퍼드 아메리칸>의 편집자인 마크 스미르노프에게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스미르노프는 설리번에게 첫 기명 기사로 그 이야기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누가 문을 열어주고는 내가 들어갈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서면서, ‘망치지 말고 잘해봐’라고 말하는,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설리번이 말했다. “그리고 그 기사 덕에 아주 근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하퍼스>, <파리 리뷰>,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에 기명 기사를 싣게 되는 근사한 일들이 이어진 것이다. 그후 십여 년에 걸쳐 설리번은 보도기사 작성법과 경계 외부에 있는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 자신만의 목소리(사적이지만 시니컬하지는 않고, 깊은 생각을 담되 자신이 지적인 걸 과시하려 들지는 않는)를 다듬었다._아마존 인터뷰 중에서
그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 <뉴요커>, <파리 리뷰>, <GQ>, <하퍼스 매거진> 같은 유수의 잡지에 재기 넘치면서도 깊이 있는 글을 발표해 이름을 얻었고,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매체들에 기고한 글들 가운데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펄프헤드》가 2011년 <뉴욕 타임스>, <타임>, <보스턴 글로브>, 아마존이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서로 다른 이야기, 그 다름으로 새롭게 직조해낸 미국 문화
《펄프헤드》에는 설리번의 배경과 그가 사랑하고 전문성을 키워온 ‘문화’―글쓰기, 음악, 팝문화, 그 외의 것―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열네 편의 이야기 가운데 <이 반석 위에서>(1장), <마이클>(6장), <액슬 로즈의 마지막 컴백(7장),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11장), <마지막 웨일러>(12장) 등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가 다수이지만, <정말 리얼한 것의 차원으로>(5장), <페이턴스 플레이스>(14장)처럼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는 에세이와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 라피네스크나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이야기에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짧게는 20여 페이지, 길게는 70여 페이지에 이르는 각각의 이야기는 미국과 미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면서 그의 단단한 글쓰기와 전문성은 빛을 발하고, 우리는 천천히 글을 음미해가며 새로운 시각, 새로운 지평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표피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만큼 설리번은 무엇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깊이 파고든다.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펄프헤드》를 통해 다양한 우리 문화—친숙한, 잘 모르는, 완전히 잊혀진—를 찾아나서는 매혹적인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설리번은 미국적 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들여다보겠다는 애당초 선명하기 어려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그 흔적이 사라진 블루스 뮤지션과 19세기의 식물학자를 찾아 남동부를 가로지르고, 액슬 로즈와 마이클 잭슨이 나고 성장한 인디애나주의 곳곳을 찾아나선다. 설리번이 역사 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순간들의 근원적인 낯섦과 씨름하는 동안,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서사, 이 나라에 대해 여태 우리가 들어본 적이 없는, 최소한 이런 방식으로 들어본 적은 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_아마존 리뷰 중에서
그러나 설리번의 글을 빛나게 만드는 것,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은 그의 글쓰기 능력과 전문성이 아니다. 그의 재기 넘치는 글에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온기이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따뜻함과 긍정성은 그의 글이 따뜻하되 과열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담되 현학적으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온기는 그의 책에 묘한 향수鄕愁와 회고의 기운을 더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의 이런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 바로 564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책의 처음을 여는 <이 반석 위에서>이다. 자,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자. 진부한 표현 그 자체인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처럼 쉴 틈 없이’ 색깔과 방향을 달리하는 설리번의 이야기 세계로 뛰어들 준비를.
그가 썩 탐탁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취재를 맡아 결코 몰고 싶지 않았던 9미터짜리 RV를 몰고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좌충우돌 길을 떠나는 장면만으로는 뻔한 글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게 사도 요한과 예언자 예레미아를 한데 품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떠난 크리스천록 페스티벌이라니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설리번도 예상했듯 이 취재 여행은 아주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평범하게 끝나야 했다.
잘난 체하는 건 좋지 않지만, 애초의 내 계획은 완벽했다. 나는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았다. (…)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어떤 게 더 어렵니—홈스쿨, 아니면 일반 학교?”), 취재 패스를 흔들어 보이며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가수는 사랑으로 충만한 영혼으로 노래를 부를 때 모든 음악은 ‘그분’을 영광되게 한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 것이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그가 하는 이야기에서 열 단어에 하나 정도씩만 받아적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내가 몰고 온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그들의 분위기를 느끼면 될 것이었다. 그러고는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_11~12쪽
하지만 그의 계획은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고생 끝에 도착한 페스티벌 행사장 야영지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의 따뜻한 교감, 행사장에 울려퍼지는 록음악과 그 음악으로 인해 갑작스레 소환된, 복음주의에 빠져 있던 청소년 시절 등이 마치 우박처럼 설리번의 마음을 두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