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 History/Humanities
3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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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십자군 전쟁에서 역사가들은 광기와 사망자 숫자, 증오와 원한에 찬 비극의 기원을 발견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만들어낸 장대한 드라마를 발견하고, 그 빛과 어둠 속에서 매혹적인 인간 군상의 스토리를 압도적으로 그려낸다. 그리스도교의 성도 예루살렘을 되찾아오기 위해 분투했던 십자군. 그들에 맞서 목숨과 땅을 지키고자 싸운 이슬람 세력. 그리고 같은 그리스도교 제국인 비잔틴제국의 전술. 시오노 나나미는 그들의 전투와 삶을 중세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장엄하지만 어두운 빛이 아니라 드넓은 평원에 내리쬐는 태양광을 광원으로 삼아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1권에서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위력적인 한 마디로 촉발된 유럽의 봉건제후와 주교, 수도사와 기사, 그리고 빈민들로 구성된 제1차 십자군의 결성과 그들에 의해 십자군 국가가 성립하는 20여 년의 과정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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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제1장 |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카노사의 굴욕 성전을 호소하다 십자군의 탄생 은자 피에르 민중 십자군 제후들 툴루즈 백작 레몽 드 생질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 드 부용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디 알타빌라 제2장 | 우선 콘스탄티노플로 ‘민중 십자군’의 운명 제후들, 속속 도착하다 황제 알렉시우스의 음모 제3장 | 안티오키아로 가는 긴 여정 프랑크인 니케아 공략 도릴라이움 전투 타우루스 산맥 에데사 탈취 교황 우르바누스의 설욕 제4장 | 안티오키아 공방전 이슬람 · 시리아의 영주들 십자군의 도착과 포진 식량 부족 이집트에서 온 사절 셀주크투르크, 일어나다 보에몬드의 계략 안티오키아 함락 투르크군의 도착과 포위 성스러운 창 십자군 대 투르크의 전투 안티오키아는 누구 손에? 아데마르 주교의 죽음 인육 사건 제5장 |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시리아에서 팔레스티나로 불의 시련 십자군 합류 당시의 팔레스티나 제6장 | 성도 예루살렘 성도를 둘러싼 공방 물 부족 공성용 탑 그리스의 불 예루살렘 해방 성묘의 수호자 이집트군의 접근 교황의 새로운 대리인이 오다 보에몬드와 보두앵, 성지순례에 오르다 탄크레디의 활약 고드프루아의 정복 이탈리아의 경제인들 고드프루아의 죽음 보에몬드, 붙잡히다 제7장 | 십자군 국가의 성립 보두앵, 예루살렘 왕이 되다 십자군의 젊은 세대 보에몬드의 복귀 레몽의 건투 보에몬드, 유럽으로 가다 함정 기묘한 전투 젊은 죽음 보두앵의 죽음 십자군 제1세대의 퇴장 도판 출처

Description

욕망과 의지, 빛과 어둠의 실로 짜인 인간 드라마 십자군 전쟁의 막이 오르다 이제 새로운 차원의 지적 쾌락과 전율의 책읽기가 시작된다! 세계와 역사, 그 장대한 물결의 흐름을 바꿨던 그 최초의 번뜩임을 목격할 수 있는 시간. 그 순간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박진감 넘치는 묘사, 인간과 권력에 대한 통찰, 서슴없이 핵심을 파고드는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문장… 그 어떤 누구도 중세를, 십자군을, 십자군 전쟁을 이처럼 생동감 있게, 박력 있게,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은 인류 역사상 200년이라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치러진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한 인류 역사의 대사건으로, 세계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가장 문제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과연 십자군 전쟁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위력적인 한 마디로 촉발된 십자군 전쟁은,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인간이 일으킨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인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왕과 봉건 제후, 교황과 주교, 수도사, 기사와 빈민 등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그 각자의 독특하고도 다른 개성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거나 어떤 국면을 만들고 또 서로의 관계 속에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하면서 만들어낸 역사인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바로 우리가 너무도 몰랐던 그 시대 속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이상과 욕망, 성공과 좌절의 명암을 통해 십자군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이야기를 소위 ‘카노사의 굴욕’이라 알려진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카노사의 굴욕’. 1077년 주교서임권을 두고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사이에 벌어졌던 싸움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내린 파문에,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사흘 밤낮을 눈밭에 맨발로 서서 파문을 풀어달라고 빈다. 이 사건은 왕이라는 세속 권력의 위에 있는 중세시대 종교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카노사의 굴욕’ 이후의 일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카노사의 굴욕’ 자체는 교황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이것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엄청난 태풍을 몰고 온 최초의 바람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역사라는 무대의 막과 막 사이에서 인간들이 어떤 욕망과 의지를 가지고 어떤 정치적 판단을 하며 움직이는지를 인간 내면을 꿰뚫는 특유의 직관력으로 포착하여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르바누스는 그레고리우스에 비해 꽤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상대가 가진 힘(군사력)에 대항하는 데 다른 군주의 군사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힘, 즉 교황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약화시키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제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해도 황제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으니까. (21쪽) ‘카노사의 굴욕’ 이후 황제 하인리히의 반격은 강력하고 집요했다. 카노사의 승리자인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로마에서 쫒겨나 죽을 때까지 로마 땅을 밟지 못한다. 후임 교황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궁지에 몰려 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공의회(1095년)에서 십자군 원정을 제창함으로써 하인리히에 대한 반격을 시작하고 1차 십자군이 구성된다. 우르바누스 2세는 대담한 승부를 건 것이다. 선임자인 그레고리우스 7세는 황제를 사흘 밤낮 눈 속에 세워둠으로써 로마 교황의 권위를 과시했지만, 그 강경책의 결과를 직접 경험한 우르바누스 2세는 로마 교황의 권위, 즉 세상의 모든 군주를 지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은 다름 아닌 로마 교황이라는 것을 수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동방에 보내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탈환함으로써 보여주려 한 것이다. (28쪽) 『십자군 이야기 1』에서는 이들이 1096년 유럽을 출발해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를 거쳐 예루살렘을 정복하기까지, 그리고 예루살렘 정복 이후 18년 동안 확립해 나간 십자군 국가의 성립과, 보두앵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십자군 제1세대가 역사에서 모두 퇴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인간의 한 생애에서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각각의 명암이 다른 매력을 발견할 줄 안다. 각각의 시기 속에 마치 맹아처럼 숨겨져 있는 각기 다른 매력을 발견하여 생생하게 그려낸다. 물론 이 매력이 비열함이나 야망일수도 있고, 용맹이나 이상의 힘을 믿는 무모함일 수도 있고, 상황과 인물에 대한 통찰력일 수도 있다. 저자가 그려내는 1차 십자군의 중심인물들은 마치 중세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 석관의 부조에서 먼지를 털며 떨쳐 일어난 듯 활기차게 살아 숨쉬며 저마다의 개성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이 인물들은 중세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어두운 빛이 아니라 드넓은 평원에 내리쬐는 태양광을 광원으로 삼아 찬란하게 빛나며 독자들을 매혹한다. 역사가들은 십자군 전쟁에서 광기와 사망자 수, 증오와 원한에 찬 비극의 기원을 발견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만들어낸 장대한 드라마를 발견하고, 그 빛과 어둠 속에서 매혹적인 인간 군상의 생생한 이야기를 압도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중세시대와 십자군 전쟁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이는 서구 중심의 시각이나 이슬람 중심의 시각, 혹은 보수적 시각이나 진보적 시각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성큼 벗어나 있어 편향된 시각을 찾아보기 어렵다. 승리한 직후 그리스도교측이 전사한 투르크 병사 2천 명의 머리를 잘라, 천 급(級)은 니케아의 성벽 안으로 던져넣고 나머지 천 급은 자루에 담아 황제 알렉시우스에게 보냈다는 에피소드가 그후 서유럽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이 비참하고 잔혹한 에피소드에 대해 근현대의 서유럽 연구자들은, 몇 급을 성벽 안에 던져넣은 것은 인정하지만, 그 수가 천 급이라거나 절반을 황제에게 보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이슬람측 사료에는 이 참사 자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나는 이것도 이런 유의 사건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는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비참하고 잔혹한 에피소드는 승자 쪽이 너무 기쁜 나머지 숫자를 과장해서 남기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패자가 남기는 경우에는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예는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자가 반드시 직면하는 문제인데, 이 사료들 사이를 통과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양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가 남긴 기술이 존재할 것. 그러나 십자군의 역사에는 이런 제삼자가 없었다. 둘째, 정확성을 기하는 것이 습관이자 전통인 민족이 남긴 기록을 참고할 수 있을 것.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바, 그 경우에 해당하는 나라는 둘밖에 없다. 중세 르네상스의 베네치아 공화국과 고대 로마제국이다. (90~91쪽) 이 에피소드를 기술한 이슬람측 기록은 분기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집안싸움만 벌인 것이 원인이다, 즉 프랑크인의 성공은 이슬람측이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집안싸움은 그리스도교도측에도 많았다. 다만 제1차 십자군의 주역이었던 제후들은 궁극적인 목표 앞에서는 다른 걸 잊었던 것뿐이다. 물론 그것도 일시적이었고 위급한 상황이 지나자마자 다시 싸우긴 했지만. 이슬람측이 이 시기에 열세였던 것은 단지 궁극적인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은 홈에서 싸우면서도, 어웨이에서 싸우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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