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나 월남 간다”
한국의 베트남전쟁의 경험과 기억, ‘잊힌 전쟁’의 사회사를 불러오다
작년이 베트남전쟁 한국군 파병 50주년이었고, 올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40주년이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 시기의 거의 절반인 8년 6개월여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이 시기 한국 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역동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작년에도 올해도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전쟁의 경험과 기억은 ‘반공전쟁’, ‘발전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수사로 굳어졌고, ‘잊힌 전쟁’이라는 말이 한국의 베트남전쟁을 대변하는 말이 됐다. 그렇지만 ‘잊힘’도 층위가 있다. 한국의 베트남전쟁 경험과 기억 가운데 가장 많이 잊힌 것은 참전했던 개인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친구야 나 월남 간다”, 파월 소식마저 가족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베트남으로 향했던 황 일병은 이제 일흔이 넘었다. 파월 장병의 뒤를 따라 빈넬(Vinnell), 알엠케이-비알제이(RMK-BRJ) 등 미국 회사, 혹은 한진상사와 같은 한국 기업 소속으로 베트남의 전장으로 향했던 파월기술자들은 그 존재마저 잊혔다. 그들의 잊히고 있는 ‘우리의 베트남전쟁을 이야기’하는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가 출간되었다.
전쟁을 경험한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보는 베트남전쟁
최근까지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관한 많은 연구는 참전의 배경과 과정, 참전의 영향 등을 정치·외교·경제 등의 거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여기에는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 전쟁과 더불어 변해갔던 사회, 전쟁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개인적 회한과 사회적 갈등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윤충로(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는 최근까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쳐왔던, 혹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경험한 베트남전쟁, 지금도 기억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베트남전쟁 이야기에 귀를 기우린다.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에는 파월장병, 파월기술자, 대학생 위문단, 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 등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다양한 주체·집단의 목소리가 담겨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베트남전쟁을 만난다.
파월장병, 후방의 전쟁 경험에 주목하다─6년여에 걸쳐 55명의 참전자와 함께 나눈 이야기
이 책은 다양한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엮어가는 기본 동력은 55명에 이르는 참전자들과의 구술 면담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요소요소에서 구술자들의 전쟁 경험과 기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구술자 3인의 이야기는 상이한 전쟁 경험과 다면적인 삶의 경로를 보여준다.
전쟁 기간 동안 연인원 32만 가량의 장병이 파월됐다. 그렇지만 이들의 전장 경험은 주로 작전과정의 전사(戰史)로 남았고, 전장의 일상, 개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되는 전쟁의 의미 등은 잊혔다. 저자는 장병들의 전쟁 경험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했다. 이는 추상화되고, 박제화된 전쟁 경험에 인간의 표정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전방(베트남)의 장병뿐만 아니라 후방(한국 사회)의 모습에도 주목했다. 파월장병을 환송했던 대대적인 국민들의 물결과 위문편지, 위문문의 이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국가의 전쟁동원에 대응했던 사회와 개인, 전쟁이 만들었던 사회상을 재구성하여 이러한 질문에 답한다.
파월기술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한 ‘전장 노동의 역사’
베트남전쟁 당시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됐던 직업 중 하나가 파월기술자였다. 그러나 현재는 파월기술자라는 용어를 기억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파월기술자는 군수, 운송 등 다양한 업종에 분포했고, 주로 전장의 노동을 담당했다. 이 책에서는 미국 회사인 빈넬(Vinnell)과 한국의 한진상사에 근무했던 파월기술자의 전장 경험과 노동을 다루었다. 이들은 왜 베트남의 전장으로 갔고, 무슨 일을 했으며, 노동 조건과 생활, 전장의 일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토대로 써나간 파월기술자 이야기는 한국이 경험한 베트남전쟁의 미시사적 재구성이며, ‘작은 역사’의 복원이다. 특히 한진상사 파월기술자들의 이야기는 1970년대 초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칼빌딩방화사건(1971년 9월 15일)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기억의 전쟁으로 재현되는 베트남전쟁을 말하다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의 관심은 과거의 베트남전쟁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쟁의 기억은 우리 삶과 기억,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잊히는 듯하지만, 불현 듯 다시 나타나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화한다. 한국의 베트남전쟁 기억의 결정적 전환점은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을 공론화한 《한겨레 21》의 캠페인이었다. 이 책에서는 과거의 기억에 대응하는 참전군인들의 모습을 보수의 정체성 형성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또한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의 작동방식을 베트남과 한국에 만들어진 베트남전쟁 기념비를 통해 살펴본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 냉전적 사고와 탈냉전적 사고를 가르는 일종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따라서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이념지형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전체 10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총론에서는 베트남전쟁에 관련한 기존 연구, 이 책의 방향과 특성을 다루었다. 1부 2·3장은 참전의 정치·경제와 전쟁에서의 정체성을 다루었다. 특히 3장에서는 한·미·월 삼각관계에서 한국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던 방식을 다루고 있어 주목하여 읽을 만하다.
2부 전쟁 동원과 전장의 일상화에서는 4장에서 ‘파월병사’의 전쟁, 5장에서 후방의 전쟁동원과 일상을 다루었다. 전방과 후방의 경험을 대비시키면서 파월장병의 전쟁 경험, 베트남전쟁 시기의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3부 ‘군번 없는 군인’ 전장의 파월기술자에서는 6~7장에 걸쳐 빈넬 파월기술자, 한진 파월기술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같은 파월기술자였지만 이들의 노동 경험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에 비해 보수는 월등히 높았다고 하더라도 한진상사의 베트남은 한국 노동 현실의 재현공간이었고, 칼빌딩방화사건은 그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었다.
마지막 4부 전쟁의 기억과 기억의 정치에서는 최근 한국의 베트남전쟁 기억을 둘러싼 갈등을 다루었다. 8장에서는 참전군인의 집합적 정체성 형성과 동원, 9장에서는 전쟁 기념과 기억의 정치를 다루었다. 9장에서 논의하는 세 개의 전쟁기념비는 하나의 전쟁에 대한 상이한 기억 방식과 갈등을 보여준다. 마지막 10장에서는 ‘우리에게 베트남전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토대로 앞으로의 연구 방향과 여전히 지속되는 전쟁의 상처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