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 권력이 만들어낸 주체는 과연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가? | 요시유키 덕분에 우리는 ‘저항’이 확실히 문제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물음을 제기하기 위해 이토록 멀리서, 그 렇지만 이토록 가까이서 요시유키가 우리에게 다가온 데 감사드린다. (에티엔 발리바르 | 파리10대학교 명예교수). 이른바 ‘포스트 담론’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20여 년이 지났다. ‘포스트 담론’이란 프랑스의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 혹은 이 조류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각종 담론을 총칭하는 말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던 와중에 소개된 이 ‘포스트 담론’은 그동안 국내 진보 학자들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추상적인 이론적 유희에 머물러 실천적 무능함을 조장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포스트 담론’의 공과를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에서 “탈근대, 탈식민, 탈민족: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라는 학술대회가 열린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일본의 촉망받는 신진 이론가 사토 요시유키의 는 바로 이런 ‘포스트 담론’에 대한 성찰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요시유키는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네 사상가, 즉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가 자본주의와 그 권력을 비판만 해왔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기존의 통상적 비판을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요시유키는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의 권력 이론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리고는 권력에 의해 생산된 주체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전략을 이들의 이론에 근거해, 이들의 이론 안에서 분석한다. 이런 ‘내재적’방식으로 요시유키는 (포스트)구조주의, 더 나아가 포스트 담론의 혁명적 성과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즉, 요시유키는 이 네 사상가가 ‘권력의 이론가’가 아니라 ‘저항의 이론가’였음을 입증한다. 1980년대에 사람들은 잘못된 세상을 바꾸자며 ‘혁명’을 얘기했다. 그러나 강고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 1990년대에 사람들은 이대로 순응할 수는 없다며 ‘저항’을 얘기했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는 오늘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저항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기존의 현실을 바꾸려 했던 많은 사람들을 철저히 체념하게 만들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를 통해 기존의 질서구조와 주체 형태가 일종의 ‘운명’처럼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역설하는 권력과 저항 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