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아야츠지 유키토,
그가 선사하는 절묘한 트릭과 가공할 반전!
몇 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올해만 해도 벌써 84권(2008년 11월 25일 현재)의 일본 추리소설이 시장에 나왔고, 이중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작품만 해도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일본 추리소설이 현해탄을 넘어 한국의 독자들까지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100년의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과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는 1923년에 「2전짜리 동전」으로 데뷔한 후, 비정상적인 심리를 가진 인물들이 펼치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라는 ‘변격’ 추리소설로 명성을 쌓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일본의 국민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해 난해한 사건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본격’ 추리소설이 각광을 받았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성장과 개발 여파로 야기되는 온갖 사회 문제를 르포르타주처럼 고발하는 마쓰모토 세이초 류의 ‘사회파’ 추리소설이 일세를 풍미해 1980년대까지 그 인기가 식을 줄 몰랐다. 바로 이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의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다. 교토대 미스터리 연구회에 머물며 학업은 등한시한 채 추리소설 투고에만 열을 올리던 그는 1987년<십각관의 살인>으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추리소설가가 되는 데 성공한다. 아야츠지는 사회파 추리소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사회 문제에만 매몰된 나머지, 매력적인 명탐정이 대활약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트릭과 반전이 펼쳐지는 본격 추리소설의 진정한 재미와 매력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며, 본격의 맛을 간직하면서도 이에 더해 참신한 재해석을 가미하는 ‘신본격’ 추리소설론을 제창한다. 아야츠지의 등장 이후 신본격 추리소설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오늘날까지 일본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남아 있다. 아야츠지 유키토와 그의 신본격 추리소설은 일본 독서시장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파도였던 것이다.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은 신본격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의 현재까지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스로의 의지라도 가진 듯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는 키리고에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그리는 이 작품은 집이 살아 움직인다는 점에서 셜리 잭슨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화 된 <헌팅>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은 논리와 설득을 중시하는 추리소설 장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현실에서 비현실의 차원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작가의 패기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작품의 불가사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범인의 정체는 냉철한 논리적 추리와 심리적 통찰로 밝혀지니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높이 평가받았던 뛰어난 트릭과 절묘한 구성, 기발한 반전은 과연 명불허전이고, 약점으로 지적되곤 했던 문장력까지 개선해 완성도를 한층 높인 이 작품은 아야츠지 그리고 신본격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