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가깝고 사소한 모든 것을 여행으로 만들다 “넌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안 가?” “하하하 친구, 세계는 내 마음 속에 있는 거라네.” 스무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다는 늘 자신의 내면 세계만 파고들던 히키코모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터키 여행을 다녀오면서 드디어 ‘여행병’에 감염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고 싶다고 노상 해외여행을 떠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신을 ‘비정규직 예술 노동자’라고 표현하는 이다의 주머니는 넉넉지 않다. 떠나고 싶을 때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다는 도리어 가까운 모든 곳을 여행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이다만의 여행 스킬은 ‘작게 걷기.’ 여행지에서든 일상에서든, 천천히 걸으며 사소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스킬이다. 가장 평범한 풍경을 가장 특별하게 기억하는 작게 걷기 흔하지만 흔치 않은 통영과 서울과 경주와 아산 그리고 부천 통영의 봄, 서울의 여름, 경주의 가을, 아산의 겨울, 그리고 생활 공간인 부천. 이 책에서 이다가 여행하는 곳들이다. 흔한 곳이라고 느껴지는 이 장소들이 이다의 눈에는 너무도 특별하다. ‘작게 걷기’라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하기 때문이다. 보통 압구정에 간다고 하면 쇼핑을 떠올리지만, 이다가 압구정을 즐기는 방법은 이 물가 비싼 동네에서 가장 합리적인 메뉴 쌀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도산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낮잠을 즐기는 것이다. 흔히 겨울이면 스키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지만, 이다는 추위에 떨며 공세리 성당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후 성인요금 3000원짜리 신정관 온천탕에서 때를 미는 것으로 뿌듯한 겨울 여행을 마친다. 얼핏 엉뚱해 보이는 이다의 여행 방식은 내 주변의 평범한 장소들도 다시 보게 만든다. 여행이라고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곧 개발되어 없어질 할머니의 고향집을 그리며 오랫동안 아쉬워한다. 모란을 보러 운현궁에 갔는데 늦봄이 너무 더워 모란은 거의 다 져버렸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택시 기사 아저씨의 쓸데없는 참견을 견디기도 한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이 갇혀있는 서울대공원 나들이가 불편하기도 하다. 그렇게 아쉽거나 불편했던 것까지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작은 여행은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 1세대 인터넷 그림 작가, 사진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다 웹툰부터 그림일기까지, 공감의 원조가 기록하는 방법 일러스트레이터 이다가 이 책에서 그림으로 여행을 풀어내는 방식은 다종다양하다. 몇 차례의 회화 전시회를 연 적도 있는 만큼 순수 미술 작업도 활발히 하고 있지만, 본디 이다는 2000년대 초반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자기 그림을 공유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1세대 인터넷 그림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다의 20~30대 팬층은 이다플레이(www.2daplay.net)라는 공간에 올린 생생한 생각과 경험들을 청소년기 때부터 공감해왔다. 그 생생한 공감력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발휘된다. 만화 그리기, 다이어리 쓰기 방식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듯 자신의 여행과 일상,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개성 있으면서 읽기 편안한 웹툰 방식으로 구성하기도 했고, 노트에 기록한 손글씨까지 그대로 살려 편집하기도 했다. 위트 있는 4컷 만화, 맑은 색감의 수채화, 현장감이 살아있는 스케치북 연필 드로잉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열정이 담겨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멋지게’가 아닌 ‘더 오래, 더 깊게, 내 맘에 들게’ 비어 있어서 더 충만한 저예산 고품격 일상 여행기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는 아냐. 특별히 멋진 곳이 나오지도 않을 거야.” 이다가 말하는 ‘작게 걷기’는 비어 있어서 더 충만한 여행이다. 이다가 여행에서 비워낸 것은 더 빨리 더 많이 보려는 마음과 남의 눈을 신경 쓰는 태도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악착같이 사진으로 찍고, 기록하고, 공부하듯 몰아쳐야 직성이 풀렸지만,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대신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겪는 것보다 깊게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 100장보다 충만한 감정 하나를 영원히 남기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이다의 작게 걷기를 따라 해보는 게 어떨까. 작게 걷기와 함께라면 오늘 퇴근길이라도 여행으로 변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