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돈키호테의 고향, 스페인으로 향한 소설가 최민석 낯선 말과 사람들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에서 고요를 찾다 뜨거운 태양 아래 관공서며, 식당이며 일제히 셔터를 내린 오후, 모두가 단잠에 빠진 씨에스타의 시간에 고독한 한 남자가 마드리드 거리를 배회한다. 『베를린 일기』를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의 배를 간질이고, 『40일간의 남미 일주』로 문학계 예능인의 존재감을 뽐내던 소설가 최민석이 이번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떴다! 토지문화재단과 스페인 문화체육부가 협정한 ‘교환 작가 프로그램’에 선발된 작가는 2022년 9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마드리드를 비롯한 구라파(歐羅巴) 곳곳을 누볐다. 서반아의 풍경과 사람, 언어와 문화, 역사와 예술을 소설가 특유의 유머와 말맛으로 버무린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찍은 생동감 넘치는 235장의 사진과 어우러져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살바도르 달리, 로르카,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 등 저명한 인물들이 머물렀다는 스페인의 유서 깊은 기숙사, ‘레지덴시아 데 에스뚜디안떼스(Residensia de estudiantes)’. 이곳에 두 달 남짓 묵게 된 소설가는 어느 날, 기숙사 선배 아인슈타인과 자신 사이에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건 바로, 두 사람 모두 매일 같은 옷만 입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남겨두고 간 정체불명의 검은 양말과 함께 빨래를 돌리는 바람에 흰옷이 죄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탓이었다. 이방에서의 시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딱딱한 안장으로 엉덩이를 괴롭히는 자전거 ‘로시난테(이후 ‘거북선’으로 개명)’와 매일같이 암투를 벌이는가 하면, 어학원에서는 서툰 회화 실력을 감추려 억지 미소 짓다가 연기력만 늘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증명사진과 실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분 확인을 거부당할 때면 망원동 사진관 사장님의 과한 포토샵을 원망했다. 한인 교회에서 만난 원로 교포 3인방에 발목을 붙잡히는 날에는 그들의 대하소설 같은 인생사를 들어주며 소설가로서의 의무를 다해야만 했다. 그러나, 인생은 쓴맛과 단맛이 공존하는 칵테일 같은 것. 술잔을 들기 위해 잠에 드는 나라, 술에 취해 잠을 취하는 나라. 뜨거운 축제 ‘피에스타’와 달콤한 낮잠 ‘씨에스타’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섭씨 35도의 날씨만큼이나 열정적이었다.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건네던 레스토랑 직원 호세 씨, 어디에든 잘 녹아들었던 브라질인 로드리고와 포근한 브라질 누님 마르셀라, 서른 살의 나이 차를 괘념치 않았던 독일인 친구 수시, 아시아인의 설움을 알아주던 일본인 유키, 동향의 노스탤지어를 함께 나누던 원로 교포 3인방 등등, 서반아 땅에서 이어지는 특별하고 귀한 만남에 작가는 점차 마드리레뇨(마드리드 사람)가 다 되어간다. 어느덧 스페인어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월반한 작가는 자신의 삶도 중급자 단계에 이르렀음을 실감한다. 9년 전, 베를린을 누비던 젊은 ‘호구’는 이제 세월을 머금은 ‘노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힘에 부치는 여행과 세상에 대한 줄어드는 호기심,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을 맞닥뜨린 작가에게는 더이상 스페인 밤문화를 즐길 체력도, 바다에 뛰어들 여력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작가는 단순한 물리적 여행을 넘어서, 세상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진짜 여행의 의미를 발견한다. 오래된 건물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스며든 햇빛이 거리를 물들이는 오후, 작가는 요란스레 돌아가는 내면의 풍차에 귀 기울인다.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저마다의 돈키호테가 되어 자기만의 여정을 떠난다. 미지의 풍차에 달려드는 일은 언제나 큰 두려움을 수반하지만, 끝내 우리 안의 믿음과 희망을 굳건하게 한다. 이 책은 낯섦 속에서도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임을 독자에게 생생히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