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하루 평균 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10년 동안 2배로 늘어났고,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대통령을 지냈던 이가 자살을 했고, 국민 배우라 불리던 사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동반 자살을 꾀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기도 한다. 오늘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죽이기 위해 목을 맨다. 이제 우리에게 자살 소식은 불가피하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이렇듯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자살을 바라보고 있는가? 자살이라는 사회 현상이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는 수준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여태 자살을 피상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언론은 자살에 관한 통계가 발표되면 수치만 실어 나르기 바쁘고 유명인의 자살에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반응을 보일 뿐이다. 학계에서도 자살에 관한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한 논의보다는 사변적인 논의가 많으며, 자살을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는 방안을 찾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을 정신 질환의 결과로 치부하고 자살자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들의 공통점은 자살을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저 관리하고 처리해야 하는 그 무엇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가? 자살을 행한 사람들은 외부와 무관하게 홀로 죽음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다가 그 과정에서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으며, 그들에게 죽음은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정일 수 있다고. 또한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을 향한 적극적인 행위일 수 있으며,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성찰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자살자들은 실패 때문에 삶을 포기해버린 무책임한 사람들이 아니며,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한 정신병자들도 아니다.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자살자들의 목소리, 그들이 남긴 405건의 유서를 국내 최초로 심층 분석한다! 자살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자살자들을 영웅시하거나 자살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살에 대한 책임을 우리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는 선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자살자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그들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과 같은 상황 속에서 또다시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죽음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제시해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자살자들의 이야기와 마주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자살자들이 겪은 실패의 경험과 그들이 느낀 좌절의 양상을 되짚어보기 위해 405건에 달하는 유서를 국내 최초로 심층 분석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의 다양한 의도와 메시지 그리고 그들의 '성찰의 과정'과 '소통에 대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 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에게 자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다. 왜 차악의 선택인가?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죽이는 선택이 결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차선의 방법도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최악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고달픈 삶을 극복하기 위한, 또는 그러한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기 위한 차악(次惡)의 선택이다. 이처럼 지은이가 자살을 차악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자살이 자신의 삶의 과정과 죽음의 결과를 고려한 성찰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자살이라는 행위가 자살자들의 의도와 의지를 표현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서를 통해 본 자살자들의 의도 지은이가 자살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한 노인의 유서를 읽으면서부터였다. 그 노인은 죽음 당시 오랜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자신의 자녀들에게 부양의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결심하였다. 지은이가 유서를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자신의 자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아니라, 짧은 몇 줄의 당부 내용이었다. 그 노인은 자신의 죽음을 손자에게 특정 일 이후에 알리라고 당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손자의 기말고사가 그날 끝나기 때문이었다. 지은이는 이 유서를 통해 자살이 단순히 삶의 포기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유서는 자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유효한 창구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사회적 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이루어진 맥락과 의미를 이후에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반면, 자살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자살의 경우 그 행위의 성공은 곧 행위자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진 이후에 그에 대한 행위자 스스로의 해석을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유서는 자살이라는 행위가 실행되기 이전에 작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자살자가 자신의 행위에 부여한 주관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유서는 자살자가 미리 작성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유서 분석 과정에서 연구자가 유서 자체에 개입하고 변경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유서 분석은 자살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적합한 연구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3개 경찰서(각각 서울, 수도권, 비수도권 소재)의 관할에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발생한 1,321건의 자살 사건에 대한 수사 기록과 각 수사 기록에 첨부되어 있는 405건의 유서를 분석 대상으로 했다. 또한 양적인 분석으로는 개별적인 자살 현상의 심층적인 부분에 대해서 살펴볼 수 없기 때문에 양적인 자료를 통해서는 자살 현상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만 살폈으며, 주로 유서와 수사 기록에 대한 질적 분석을 통해 자살자들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동안 자살에 대해 도덕적으로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자살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확보하기 힘든 점 때문에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유족들은 자신의 가족이 자살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며, 자살을 사건으로 처리하는 공식 기관에서도 자살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특히 국내에서는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주요 분석 대상인 유서를 포함해 한국 사회의 자살 현상에 대한 세부 통계 자료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살 현상에 대한 개념화와 유형화를 시도하는 이 책의 연구는 앞으로의 자살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적 자살이라는 새로운 인식 '소통적 자살'이라는 개념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잘 보여준다. 소통적 자살은 자살자가 자신의 삶과 죽음을 객관화시켜 자신의 문제 상황과 삶에 대한 평가를 하는 과정인 '성찰성', 이러한 성찰의 과정을 거쳐 도출된 '메시지',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인 '타자 지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자살을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살자들이 남긴 유서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자살행위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많은 자살자가 죽음과 자살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거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문제 상황을 해석하고 자신의 삶을 평가함으로써 객관적 문제 상황을 주관적으로 내면화한다. 또한 자신의 죽음에 앞서 오랜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