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윤의섭 · Poem
1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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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가 출간되었다. 윤의섭은 첫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에서부터 삶과 죽음이 서로 혼융하며 순환하는 관계에 놓여 있음을 꾸준히 묘파해온 시인. 이번 시집에서도 '생 속의 죽음 혹은 죽음 속의 생'이라는 주제를 도특한 환각의 언어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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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 시인의 말 꿈속의 생시 설국 물고기 이야기 세상에 없는 책 물의 유목 사라지는 햇살처럼 초가을 장날 부처산 나의 처음 사월의 광시 환기구 기둥 눈길 진공관 앰프를 틀었네 눈바다 지구에서 사라진 생물 감춰진 시간 억새 신허 아, 티벳 풀등 오래된 숲 습성 벤치에 졸던 바람 기억의 그물 밖 바람벽 금도지 옆으로 누운 나무 수암도 사막의 모텔 바다 속의 나무 빗속의 새 북쪽의 끝 부석사 붉은 자두 변신 광장 은하계 NGC4261 들리지 않는 연주 이장 생은 슬쩍 피고 지고 세발자전거 솔개에 대하여 선운사 찻잔 유리 유리 먼 훗날 은행 따는 오후 상춘 휴게소 마른 들꽃 향기 돌 속에 내리는 비 새벽 네 시의 필사 유민 서른다섯번째 경야 슬픈 득도 소요유 배경 북벽 연대기 신사 중원을 떠도는 유랑혼 바람의 사계 - 해설 : 적멸과 불멸 / 박주택

Description

등단 이후 줄곧 삶과 죽음의 관계를 천착해온 윤의섭 시인의 세번째 시집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윤의섭은 그의 첫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에서부터 삶과 죽음이 서로 혼융하며 순환하는 관계에 놓여 있음을 꾸준히 묘파해온 시인으로 평단의 관심을 모아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은 ‘생 속의 죽음 혹은 죽음 속의 생’이라는 주제를 독특한 환각의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그밤 눈이 내렸고 어둠 속에서도 눈은 길을 만들어 행인을 홀렸다 바람조차 공중으로부터 뿌리내리는 설벽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무엇이 눈을 내리게 하는가 그밤 길을 잘못 들어 문득 들판에 서성이는 미아들이 며칠 동안 붉게 떠 있던 미친 달덩이 서너 개가 기억에서 사라진 어린 날 눈길에 홀려 헤매던 내가 눈이 내리는 동안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사이 설목은 서둘러 꽃을 피웠고 열 번도 넘게 꽃을 피워 스스로를 고사시키고 숲 속에서 어떤 짐승은 재빠르게 짝짓기를 해대어 설국의 종족을 번식한다 그밤 눈에 갇혔거나 눈으로 활짝 피어난 시대에 잠시 살았던 몽유의 기록이 말끔히 녹아버리면 그것으로 돌아올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흐린 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과 소곤거림과 흐느낌과 낄낄거리는 소리 그러므로 나는 어디서 걸어 나왔는가 무엇이 또 눈을 내리게 하는가 이 설국에서 나는 추억이다 하염없이 이어진 눈길 위로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돌고 있다 ― 「눈길」 전문 달은 차고 기우는 것을 영원히 반복하는 주기성으로 인해 흔히 생의 리듬을 가지고 있는 천체로 인식되지만 시인에게 있어 달은 소멸을 상징하는 존재일 뿐이다. 미친 듯이 돌아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져가는 달의 이미지는 인간 생의 유한성에 대한 허무와 동일성을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불안을 드러낸다. 시인은 이러한 허무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죽음의 세계, 즉 우리는 볼 수 없는 이면의 세계를 지각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다. 떨어지지 않는 빗방울도 저 중에 섞여 있다 생긴 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물의 날개를 지상으로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산등성이에 기둥처럼 펼쳐진 비안개를 떠올리자 옆구리로 늙은 바람이 지나간다 내 새로 생긴 추억이 안개 기둥 속에 잠들었던 바람을 불러낸 것이다 하염없는 설원을 생각할 때는 마당에서 때늦은 동백꽃이 피었다 허리를 베이고 죽은 대추나무를 그리워하면 한밤중에 지붕으로 후드득 후드득 대추알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무인도에서 뱅어돔 낚는 새벽은 붉은 태양보다 살아온 날들로 뭉뚱그려진 新星이 앞서 떠오른다 밤엔 아주 느리게 떨어지는 소나기가 왔고 동시에 나는 이 혹성에 불려온 듯 잠에서 깨어난다 처음 보는 아침이었다 ― 「逍遙遊」 전문 이면의 세계를 지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떠한 감각은 실제로는 자극이나 대상이 없는데도 그것이 실재하는 듯이 인식하게 한다. 이 감각, 즉 환각은 생명의 순환과 영원성을 믿었던 인류의 신화적·원형적 관념에서 멀리 있지 않다. 윤의섭의 시에서 드러나는 환각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죽음의 고통스런 자리를 떠나 삶의 자리로 향하게 하는 역동적인 지향이라 할 수 있다. 지구의 나이는 대략 47억 년 정도인데, 최초의 생명체가 야트막한 웅덩이 속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27억 년 전이다.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약 25억 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헝클어진 머리는 가장 진화한 형태의 前頭葉이다 오랜 사색의 결과로 나무는 지층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로 결정했다 태어난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나무의 몸을 입는다 나무는 죽음 이후에도 산다 25억 년을 그렇게 온통 빛을 빨아들이며 자신의 존속에 대해 계절마다 해탈하며 바람이 스치는 게 아니라 바람 속을 헤엄치는 거라네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몸속에선 억겁이 흐르고 있다네 ― 「북벽 연대기」 부분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이미 이면의 세계를 감지할 루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의섭의 시는 우리가 굳게 믿어왔던 시공에 대한 자명한 법칙들을 거부하고, ‘환상’을 다성적이고 입체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의 인식과 사유의 지평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번 윤의섭의 시집은 불멸과 영원, 생명과 구원 등의 삶의 문제들을 바로 보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신화를 구축하고 있는 시는 필연적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는 자아와 세계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계속한다. [……] 자신의 시에 온전히 몸을 바쳐 그 사투의 흔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윤의섭이 이번 시집이 한국 시의 한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_박주택(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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