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란 모름지기 예뻐야 한다?!
미인 권하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이야기 하나. “이렇게 말씀하면 좀 미안스러운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마는 실상 함경도나 평안도 혹은 경상도 방면의 여성을 대하다가 서울 여성을 대하면 거의 남성에게로부터 여성에게로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야 도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치 사람에 부대끼고 사교에 시달려 『말솜씨』『몸맵시』 같은 것도 훨씬 세련되고 정화되었을 것이지마는 그래도 자기네들의 천품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야기 둘. “누가 장안 일등미인일까요.”(백악선인白樂仙人) “나 꼭 한 분을 보았네. 이덕요李德耀야 …… 문병을 갔는데, 바로 나와 정면 한 곳에 웬 여자가 하나 섰는데, 어떻게 잘생겼는지 그만 가슴이 꽉 막히데. 호박색琥珀色 윤이 흐르는 그 흰 살결, 불그레 타오르는 입술, 어디까지든지 정열적인 그 눈 먹장 같은 머리, 어디로 보아도 참 절색이데. 양귀비와 쿠레오파토라와 데-도릿히를 한데 묶어서, 한데 삶아서 미운 점 다 골라 빼버리고 새로 만든 듯하더구만. 희랍의 비-너스 여신女神이야.”(이서구李瑞求)
이야기 셋. “20세 처녀이온데, 코가 얕아서 남모르는 비관을 하던 중 반가웁게도 코를 높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곧 실행하려 하오나 동무의 말을 들으니 시일을 경과하면 코가 삐뚤어진다는 둥 코 살색이 푸르다는 둥 늙으면 흉해서 볼 수가 없다는 둥 여러 가지 말을 하니 얼른 실행키도 무섭습니다. 그리고 음성도 이상해진다 하니 그게 정말일까요?”
‘조선 팔도 여성 중 서울 여성이 진정 여성인 듯 아름답지요’, ‘장안 미인 중에는 이덕요가 으뜸이지. 윤이 흐르는 살결과 붉게 타오르는 입술 등 어디로 보아도 참 절색이더라’. 언론 지면에 버젓이 실린 미인 품평. 어딘가 낯설다. 어느 시대 이야기일까. 일제 강점기다. 당시에는 여성들의 외모를 개인별, 지역별로 비교하여 평하는 모습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여성들 역시 예쁜 여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코가 낮아서 비관하던 중 코를 높이는 수술이 있다고 들어 시술받으려 한다, 괜찮을까?’라는 한 여성의 고민 상담을 보라. 어딘가 익숙하다. 오늘을 사는 여성들 대부분이 한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인 권하는 사회의 낯설고도 낯익은 풍경, 그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살았을까.
미인 강박의 역사를 가다
과거든 현재든 여성들의 마음속에는 ‘뚱녀’가 살고 있다. 성숙한 인격, 탁월한 재능과 실력을 가졌어도 관계없다. 예쁜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도 상관없다. 여성들은 늘 자신이 못생기고 뚱뚱하고 늙어서 예쁘지 않다고 여긴다. 언제나 예뻐지고 싶어 하거나, 예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쁜 여자가 되는 일은, 거의 모든 한국 여성들의 숙명이자 굴레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들은 언제부터, 왜 예쁜 여자가 되는 일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그로 인한 불행감은 어떤 논리로 극복할 수 있을까?
《예쁜 여자 만들기》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미인 강박의 문화사 고찰기’다. 《육체의 탄생》(2008)을 통해 근대의 시작이 몸에 대한 관심의 폭발적 증가와 맞물려 있음을 밝힌 이영아는 이 책에서 특히 여성의 몸에 주목한다. 여성의 몸 가꾸기 문화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것이 근대 이후에 급속도로 팽창한 사회 현상이라는 점을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밝히면서 미인 권하는 사회의 여러 단면을 들여다본다.
이 같은 탐색의 궁극적 목적은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래서 많은 시간 자신의 몸에 불만을 품고, 그래서 종종 불행한, 그래서 이 책의 제목 ‘예쁜 여자 만들기’를 보자마자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지는 이 땅의 ‘평범한’ 여성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미인 되기 강박의 역사에 대한 앎을 통해 여성들 스스로 ‘미인 되기’를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 거기가 이 책이 도달하려고 하는 지점이다.
한국 여성들, 근대 이후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에 갇히다
근대, 예쁜 여자를 권하다
‘예쁜 여자’라 호명되는 여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미인과 현재의 미인은 ‘존재’ 자체에서부터 명확한 차이를 드러낸다. 과거의 ‘예쁜 여자’는 ‘타고난’ 존재였지,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반면 현대에는 타고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쁜 여자’가 될 수 있다. 현대 여성들은 옷이나 화장을 통한 치장부터 운동이나 다이어트, 성형수술까지, 자신을 얼마나 갈고 닦느냐에 따라 ‘예쁜 여자’로 변신 가능하다. 저자는 이러한 미인 되기 가능성의 확대가 근대 이후 출현한 현상이라 말한다.
노력만 하면 예뻐질 수 있다! 미인 되기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행운이었다. ‘기회의 평등’ 차원에서 보면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불행이기도 했다. 예쁜 여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뻐지는 일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여성들에게 따라오는 수군거림을 보라. 격식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한 여성, 화장기 없는 얼굴로 외출한 여성, 뚱뚱한 여성 등에게는 ‘자기 관리 못하는 여자’를 넘어서 ‘무능한 여자’라는 꼬리표까지 붙인다. 그 결과 여성들은 항상 예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불안감을 넘어서기 위해
운동을 왜 시작했는가? 피부 마사지를 왜 받는가? 왜 배고픔을 감내하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하는가? 다 잘 살자고 시작한 운동이고, 외모 관리이고, 다이어트 아닌가? 그럼에도 여성들은 그것 ‘덕분에’ 잘 살기는커녕 그것 ‘때문에’ 오히려 팍팍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
문제는 불안감이다. 오늘을 사는 여성들은 날씬해도 불안하고, 미끈한 피부를 소유하고 있어도 불안하다. 저자는 《예쁜 여자 만들기》가 이처럼 만성 불안에 시달리는 불행을 안고 있는 ‘우리(저자를 포함한)’들을 떠올리며 쓴 책이라고 말한다. 그냥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식의 일반적 답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몸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고 외양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는 식의 ‘도덕적’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왜 우리가 몸에 대해 그렇게 ‘지나치게’ 집착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러한 앎을 통해 한층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찾기 위해서다. 그 여정을 따라가 보자.
‘예쁜 여자’는 만들어졌다
S라인의 탄생―예쁜 여자의 기준, 얼굴에서 몸매로
서양 문명이 수입된 지 오래인 조선에는 여러 가지 생활양식이나 문명사조가 구미화하여가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미에 대한 감상도 또한 달라갑니다 …… 그리하여 여성의 미는 얼굴로부터 육체로 이동하게 되는 경향이 농후하여 육체미라든가 나체미라든가 각선미라든가 하는 말이 많이 유행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에 미의 특징이던 웃통이 길고 허리가 간들간들하던 것은 완전히 ‘넉아웃’되고 이제는 다리가 날씬하고 길고 웃통이 짧은 사람이 미인이 되었습니다.
미인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미인이 오늘날에도 미인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아름다움’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미인을 얼굴의 생김새로 판별했다. 몸매는 뒷전이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미인 몸매 묘사도 오늘날과 달리 소문자 b라인에 가까운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실루엣(상체는 평평하고 좁으며 하체는 풍만하게 보이는 실루엣)이 주였다.
몸매가 ‘예쁜 여자’의 필수 요건으로 등장한 것은 대략 1930년대 전후다. 그때부터 오늘날 미인들의 필수 요건 중 하나로 꼽히는 ‘S라인’이 각광받기 시작한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불러왔는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