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선언

앙드레 브르통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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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초현실주의 선언> 비평판. <초현실주의 선언>은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소설 <녹는 물고기>의 서문으로 사용되었고, 1929년 '서문'을 추가한 개정판이 출간된다. <초현실주의 제2선언>은 1930년 발표되었고, 1946년 '머리글'을 추가한 개정판이 출간된다. 1962년에 이들 두 개의 선언과, 관련 텍스트들을 묶어 <초현실주의 선언(들)>이라는 제목으로 결정판이 출간된다(장 자크 포베르 판). 새롭게 선보이는 열린책들의 <초현실주의 선언>은 장 자크 포베르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은 공식 한국어판이다. 황현산 교수의 본격적인 해설, 정교한 번역, 방대한 주석으로 20세기 세계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도구를 갖춘 정식 비평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설 '상상력의 원칙과 말의 힘'은 <초현실주의 선언>의 구체적인 전개와 정황을 미시적으로 파악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이 구현하고자 했던 인간과 문학의 보편적 열망과 가치에 대한 전망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역동적으로 재점검하고 있다. 그동안 이미지 편향적으로, 또한 상투적으로 폄하되었던 초현실주의에 대한 거친 오해와 딱지를 제거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 브르통이 추구했던 윤리적이며 엄격한 문학적 소명을 재조명하였다. 초현실성, 그 개념의 확장, 운동의 영광과 부침을 통사적으로 관통하면서 오늘 우리의 문학을 되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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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해설 ― 상상력의 원칙과 말의 힘 선언의 재판에 붙이는 서문(1929) 초현실주의 선언(1924) 제2선언의 재판에 붙이는 머리글(1946) 초현실주의 제2선언(1930) 초현실주의 제3선언 여부에 붙이는 전언(1942) 오브제의 초현실주의적 상황 ― 초현실주의적 오브제의 상황(1935) 제 흘수부의 초현실주의에 대해(1953) 앙드레 브르통 연보 한글-로마자 대조표

Description

“초현실주의는 어느 날 우리가 우리의 적들을 누르고 승리할 수 있게 해줄 <보이지 않는 광선>이다.”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변함없는 원칙은 인간의 자유이다. 언어의 개혁은 시의 개혁으로, 인간의 개혁으로, 세계의 개혁으로 연결된다. 이 점에서 초현실주의는 20세기의 전위예술 운동 중에서 존재의 총체성을 문제 삼은 거의 유일한 운동이다. 초현실주의는 시의 선동력과 언어의 잠재력에 판돈 전체를 걸었다.” (역자의 말 중에서) ■ 국내 최초 『초현실주의 선언』 비평판 『초현실주의 선언』은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소설 『녹는 물고기』의 서문으로 사용되었고, 1929년 「서문」을 추가한 개정판이 출간된다. 『초현실주의 제2선언』은 1930년 발표되었고, 1946년 「머리글」을 추가한 개정판이 출간된다. 1962년에 이들 두 개의 선언과, 관련 텍스트들을 묶어 『초현실주의 선언(들)』이라는 제목으로 결정판이 출간된다(장 자크 포베르 판). 새롭게 선보이는 열린책들의 『초현실주의 선언』은 장 자크 포베르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은 공식 한국어판이다. 황현산 교수의 본격적인 해설, 정교한 번역, 방대한 주석으로 20세기 세계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도구를 갖춘 정식 비평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아폴리네르와 말라르메에 대한 연구서와 번역서로 한국에서의 프랑스문학 연구의 이정표를 보여준 황현산 교수의 새 역작이며, 열린책들은 이를 출간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해설 <상상력의 원칙과 말의 힘>은 『초현실주의 선언』의 구체적인 전개와 정황을 미시적으로 파악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이 구현하고자 했던 인간과 문학의 보편적 열망과 가치에 대한 전망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역동적으로 재점검하고 있다. 그동안 이미지 편향적으로, 또한 상투적으로 폄하되었던 초현실주의에 대한 거친 오해와 딱지를 제거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 브르통이 추구했던 윤리적이며 엄격한 문학적 소명을 재조명하였다. 초현실성, 그 개념의 확장, 운동의 영광과 부침을 통사적으로 관통하면서 오늘 우리의 문학을 되돌아보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현실의 모습이라고 부르는 것은 왜곡된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사실성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욕망은 이때 세계와 분리되기를 그치고, 초현실주의자로서의 인간은 현실과 의식의 종합인 초현실에 도달한다.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 한다.” “초현실주의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변함없는 원칙은 인간의 자유이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의 능력 전체를 지금 이 자리에 불러내기 위해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언어를 대상으로 삼는, 언어의 힘을 빌린, 언어의 작업이다. 인간이 자신에 대한 지식을 늘이는 일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학식을 늘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언어의 개혁은 시의 개혁으로, 인간의 개혁으로, 세계의 개혁으로 연결된다. 이 점에서 초현실주의는 20세기의 전위 예술 운동 중에서 존재의 총체성을 문제 삼은 거의 유일한 운동이다. 초현실주의는 시의 선동력과 언어의 잠재력에 판돈 전체를 걸었다.” (역자 해설 중에서) 이어지는 『선언』에서는 세 편의 본격적인 선언서와 관련 서문들, 그리고 <초현실주의의 미학적 입장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두 편의 글을 수록하였다. 총 231개에 달하는 방대한 역자의 주를 통해 이들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부록으로 <앙드레 브르통 연보>와 를 수록하였다. ■앙드레 브르통의 생애 1896년 2월 18일(혹은 19일) 오른 도(道)의 탱쉬브레에서 태어난 앙드레 브르통은 1913년(17세)부터 폴 발레리와 서신을 교환했다. 젊은 시절 말라르메의 시에 열광하여 초기 시작(詩作)에 그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915년 의과 대학생 당시 징집되어, 1916년 낭트에서 군복무 중 프로이트의 저작을 처음으로 접했고, <유머 정신 그 자체>인 자크 바셰를 알게 된다(바셰는 전쟁이 끝난 뒤 자살한다). 1919~1920년에 다다 운동에 참여, 『몽 드 피에테(공영 전당포)』를 출간했고, 아라공, 수포와 함께 『리테라튀르』를 창간, 초현실주의의 맹아를 담은 『자기장(磁氣場)』을 발표한다. 1921~1922년은 <최면 상태의 꿈>의 시기로서, 브르통과 동료들(특히 데스노스)은 <심리적 자동기술>에 몰두했다. 이어 다다와 결별하고, 비엔나에서 프로이트를 만난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출간하고, <초현실주의 중앙연구소>를 개설한다. 1925년 혁명 투쟁에의 참여 의사를 전격 발표하고, 1926년 『정당방위』를 출간한다. <내면세계의 체험>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모든 외부의 통제>를 거부한다. 라 파이예트 가에서 나자를 만난다(『나자』, 1928). 1930년 『초현실주의 제2선언』을 출간하고, 『혁명에 봉사하는 초현실주의』지를 창간한다. 1931~1932년에 『자유 결합』, 『시의 빈곤』, 『연통관』을 출간한다. 1935년 공산당과 결별한다. 1937년 『미친 사랑』을 출간한다. 1938년 멕시코에서 트로츠키와 수차례 인터뷰를 갖는다. 1940년 비시 정부에 의해 『흑색 유머 선집』과 『파타 모르가나』의 출간이 금지된다. 1941년 마르티니크를 경유하여 미국에 도착하지만 스파이로 오인되어 잠시 감금된다. 에메 세제르와 만난다. 1945년 뉴욕에서 『비법 17』을 출간한다. 1946년 파리로 돌아온다. 1947년 「자유는 베트남 말이다」라는 전단지를 발표한다. 1948년 개리 데이비스가 주창한 <세계 시민> 운동에 동참, 각종 시위에 참여한다. 화가 앙드레 마송과 함께 『마르티니크, 뱀 부리는 여인』을 출간한다. 1952년 <저항>에 관해 카뮈와 논쟁을 벌인다. 1953년 『들판의 열쇠』를 출간한다. 1956년 잡지 『초현실주의, 그것』을 창간한다. 소련의 헝가리 개입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전쟁에 반하는 지식인들 모임에 동참한다. 1960년 <불복종 권리>를 다룬 <121인의 선언>에 앞장서서 서명한다. 1966년 사망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티뇰 묘지에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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