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1부 슬픔에 대한 공부
당신의 ‘지겨운’ 슬픔 ―〈킬링 디어〉가 비극인 이유
슬픔에 대한 공부 ―발터 벤야민과 함께
2년 동안의 꿈 ―세월호 2주기
인식이 곧 위로라는 것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
터널 앞에서 ―김성훈 〈터널〉
슬픔의 불균형에 대하여 ―민용근 〈혜화, 동〉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허무, 허무 그리고 허무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덧없음에 대한 토론 ―프로이트와 릴케
그녀, 슬픔의 식민지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사랑의 두 번째 죽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슬픔임을 잊어버린 슬픔 ―김경후 〈열두 겹의 자정〉
천진하게, 그리고, 물끄러미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으로서의 이소라 ―이소라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5.18과 4.3 사이
폭력에 대한 감수성
액자 속의 진정성 ―이준익 〈동주〉
2부 삶이 진실에 베일 때
사물성, 사건성, 내면성 ―사진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삶이 진실에 베일 때 ―제임스 설터 《어젯밤》
단절의 선을 긋다 ―권여선 〈사랑을 믿다〉
시의 옷을 입은 비극 ―헤르타 뮐러《숨그네》
고통받은 마음의 역사 ―임철우 《이별하는 골짜기》
박완서 선생님 영전에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예외적인 정신의 유전자 ―배수아와 김사과
캐릭터 박물관 특실편 ―알베르 카뮈 《이방인》
삶과의 게임에서 지다 ―이상 《이상 소설 전집》
오독의 빛에 의지하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음악 서술자 시점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언어의 이주민을 위하여 ―다와다 요코 《영혼 없는 작가》
제발트만큼 고집불통인
아포리즘에 대하여
소설의 인식적 가치 ―은희경 《태연한 인생》
왜 소설을 읽는가 ―김숨, 윤이형, 백영옥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3부 그래도 우리의 나날
굿바이, 박정희 ―탄핵과 그 이후
비무장의 예언자들 ―2018년의 ‘남북’과 ‘남녀’
깊이 있는 사람
시기상조의 나라
사회적 인정의 복지 ―태극기 부대를 바라보며
메릴 스트립의 용기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보수의 반대말은 민주
혐오와 농단
절망을 즐기지 않기 ―김성수 〈아수라〉
희망은 종신형 ―김승희 《희망이 외롭다》
국가의 살인 ―김일란·홍지유 〈두 개의 문〉
정치소설이 필요한 시간 ―안토니오 타부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희망은 버스를 타고 ―이영주 〈공중에서 사는 사람〉
저급한 이야기꾼들의 신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칠레의 지진〉
천안함, J 선생님께
평화가 곧 승리
4부 시는 없으면 안 되는가
시는 없으면 안 되는가 ―문학동네시인선 50호 발간에 부쳐
시를 사랑한다는 말 ―문학동네시인선 100호 발간에 부쳐
시, 정답 없는 질문 ―릴케, 하나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릴케, 둘
시의 천사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새 질병으로 태어날 거야 ―김혜순 《슬픔치약 거울크림》
축제로서의 노벨문학상
작가는 주크박스가 아니지만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소곡〉
노르웨이의, 숲이냐 가구냐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고독과 행복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와 심보선
어떤 순간의 진심 ―신철규 〈유빙〉
모른다고 말하는 시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이토록 뜨거운 태도들 ―이상과 김수영
풀, 저항도 절망도 아닌 ―김수영 〈풀〉
동춘동 디오게네스의 초상 ―김영승 〈흐린 날 미사일〉
우리는 시를 포기하지 말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호 발간을 축하하며
정확한 칭찬 ―장승리 〈말〉
5부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 ―사랑의 논리학을 위한 보충
마르크스의 사랑
나의 소중한 적
당신의 (역)진화 ―얼굴, 음성, 그리고 문자
황현산의 부정문
봄날의 새끼 곰과 정말이지 굉장한 것
문어체의 진심
네가 왜 미안해? ―민용근 외 〈어떤 시선〉
인간의 디폴트에 대하여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이것은 물이다》
공자의 인간유형론
멘토르의 멘토링
146배의 능력 차이
우울하게 애매하게 ―당신의 ‘소울 시티’는 어디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여
문학에 적대적인 세계
한 번 보고는 알 수 없다
누가 대중을 존중하는가
시간의 네 가지 흐름
부록
노벨라 베스트 6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
인생의 책 베스트 5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 Essay
428p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영화에세이 <정 확한 사랑의 실험> 등으로 독자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았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에 새로운 산문집을 출간한다. 이번 산문집은 「한겨레21」에 연재됐던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을 비롯, 각종 일간지와 문예지 등에 연재했던 글과 미발표 원고를 모아 엮은 것이다. 시와 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 노래,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정확히 읽고 듣고 보면서 온기를 잃지 않으려 했던 저자의 노력이 빼곡히 담겨 있다. 그간의 글을 매만지며, 자신의 글 다수를 관통하는 주제가 슬픔이었음을 깨달은 저자는,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평론가로서 작품과 세상 사이에 가교를 놓고자 했던 저자의 성실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산문집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평론가 신형철의 삶과 철학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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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작품과 세상의 사이를 잇는,
어느 평론가의 이토록 성실하고 아름다운 가교(架橋)!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영화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으로 독자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았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에 새로운 산문집을 출간한다. 이번 산문집은 《한겨레21》에 연재됐던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을 비롯, 각종 일간지와 문예지 등에 연재했던 글과 미발표 원고를 모아 엮은 것이다. 시와 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 노래,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정확히 읽고 듣고 보면서 온기를 잃지 않으려 했던 저자의 노력이 빼곡히 담겨 있다.
그간의 글을 매만지며, 자신의 글 다수를 관통하는 주제가 슬픔이었음을 깨달은 저자는,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평론가로서 작품과 세상 사이에 가교를 놓고자 했던 저자의 성실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산문집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평론가 신형철의 삶과 철학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1부는 ‘슬픔’을 공부한 글을 묶었다. 헤로도토스 《역사》에서부터 헤밍웨이를 지나 박형준과 김경후의 시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의 슬픔, 허무함, 덧없음, 상실 등을 꼼꼼히 읽어간다. 2부는 ‘소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카뮈, 보르헤스, 제발트부터 권여선, 임철우, 박완서, 배수아, 김사과, 은희경, 김숨까지 국내외 작품을 읽고 우리는 문학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3부는 참여적 주제의 글을 싣고 있다. 이번 대통령 탄핵부터, 태극기 부대, 성소수자 문제와 미소지니, 트럼프, 국정 농단, 멀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4대강사업, 용산참사, 희망버스, 천안함 사건까지 사회적 이슈를 마주한 평론가의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시선을 담았다. 4부는 ‘시’라는 주제 아래, 우리는 왜 시를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행간으로 권하는 글을 묶었다. 릴케, 김수영부터 황인찬 그리고 비틀스 노래 〈노위전 우드(Norwegian Wood)〉까지, 다양한 시와 노래를 읽는다. 여러 출판사의 시인선 기념호에 부치는 글들도 함께 묶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읽을 만한 짧은 소설을 권하는〈노벨라 베스트 6〉, 그간 써온 추천사 모음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 경향신문에 닷새간 연재했던 〈인생의 책 베스트 5〉등을 수정, 보완해 수록했다.
너는 슬프지만 나는 지겹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에 관하여
책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슬픔’이다. 저자는 영화 〈킬링 디어〉를 통해 타인의 슬픔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한계를 본다. 그러나 타인의 슬픔을 결코 알 수 없으리란 결말을 알면서도, 다른 이의 슬픔을 공부하는 것이 인간이기도 함을 그는 지적한다. 제목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데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려 애쓰는 것에서 오는 역설적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_28쪽
이 외에 책에서 말하는 ‘슬픔’의 면모는 다양하다. 발터 벤야민을 통해 패전국의 왕 프삼메니토스는 왜 가족의 죽음이 아닌 시종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는지 살피며 슬픔을 해석하는 방법을 고찰하기도 하고, 프로이트의 “꿈은 소원 성취”라는 명제를 소개하며, 그렇다면 물속에 잠긴 아이들의 꿈을 꾸는 유가족의 꿈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되묻기도 한다. 문학이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생각해보는가 하면, 트라우마는 내가 잊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나를 놓아주는 ‘주체’가 아닐까 이야기하며 현재진행형의 역사적 사건을 꺼내기도 한다.
그러한 슬픔은 궁극적으로는 3부의 참여적 글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문학작품과 사회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슬픔을 분노로 표출한다. 3부의 〈굿바이, 박정희〉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을 알린 저자가 때로는 이렇게도 매섭고 신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12년 뒤 우리는 그때와는 다른 탄핵을 경험했다. 전적으로 국민의 뜻대로 된, 국민의 힘으로 이룬 대통령 탄핵이므로, 당연하게도 이것은 혁명이라고 불려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12년 전의 박근혜 의원처럼 웃을 수는 없었다. 쌓인 울화가 많았으므로, 이번에도 눈물이 났다. _183쪽
가까스로 생각해보면 박근혜 씨가 행한 가장 위대한 일은 그가 탄핵을 당해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업적인가. 실비아 플라스의 시 〈아빠〉(1962)에는 “만일 제가 한 남자를 죽였다면, 그것은 둘을 죽인 셈이에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 비슷하게 말해보자면, 박근혜 씨는 우리가 한 사람을 탄핵하면서 두 사람을 탄핵할 수 있도록 했다. _184쪽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가 되기 위하여
또 한편으로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진진한 작품 해설 외에도, 그의 ‘문학관’을 매우 충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기 즐겁다. 그는 “좋은 소설의 요건은 무엇인가”, “평론가는 왜 대중의 적이 되었는가”, “어떤 비평가가 되고 싶은가” 등등 그간 받아온 질문들에 성실히 응답한다. 또한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고 실망감을 털어놓기도 하고, 노벨문학상을 어떻게 봐라봐야 할 것인지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등, 평론가의 생각과 일상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어떤 비평가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을 몇 번 받은 이후 나는 간결하고 명료한 대답을 준비해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최근 어느 대담에서 같은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했다.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 이 대답은 곧바로 두 개의 추가 질문을 유발할 것이다.
첫째, 왜 칭찬인가. 어떤 텍스트건 칭찬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칭찬할 수밖에 없는 텍스트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는 뜻이다. (…)
둘째, 왜 정확한 칭찬인가. 칭찬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서 하는 일이 아니다. 칭찬은, 칭찬의 대상에게도 그렇지만 칭찬의 주체에게도,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다. 부정확한 비판이 분노를 낳는다면 부정확한 칭찬은 조롱을 산다. 어설픈 예술가만이 정확하지 않은 칭찬에도 웃는다. 진지한 예술가들은 정확하지 않은 칭찬을 받는 순간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칭찬은 자신이 칭찬한 작품과 한 몸이 되어 함께 세월을 견디고 나아간다. 그런 칭찬은 작품의 육체에 가장 깊숙이 새겨지는 문신이 된다. 지워지지도 않고 지울 필요도 없다. _324쪽
나에게 ‘이 책을 그만 읽는 게 어떨까’ 하는 유혹이 찾아오는 1차 고비는 처음 10쪽 부근, 2차 고비는 3분의 1 지점이다. 고비가 두 군데라는 것은 내가 소설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어떤 것이 적어도 두 가지라는 뜻이다. _159쪽
이 외에 “인간은 넙치와 같아” 서로의 반쪽을 찾아다닌다는 플라톤의 《향연》을 통해, 결여를 통해 온전함을 향해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랑 고유의 구조를 도출하는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는 삶과 일상에 대한 그의 고찰이 빛을 발하는, 이 책의 또 다른 백미다.
여



최씨네
4.5
좋아하는 평론가의 글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 즉 창작물을 일차적으로 감상하는 것과는 내게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이다. 단순하고 아둔해서 내게는 바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평론을 통해서 보는 경우가 많고, 그후엔 나는 왜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안 되는 인간인지를 자책한다. 같은 것을 보았는데도 이만큼의 깊이 차이가 난다는 것에,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그렇게 보았듯, 서글퍼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살리에르가 궁정음악의 대가인 것처럼 어떤 분야의 전문가나 직업인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애초에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끔은 원망스러운 것이다. 이제는 체념하고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수용하는 일이란 걸 받아들이고 있다. 기억이 맞다면 처음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접했던 것은 친구의 추천 덕분이었다. 벌써 몇 년 전이라 희미하지만 <느낌의 공동체>를 읽으면서 역시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나는 아무리 많은 작품들을 보고 리뷰를 쓰고 토론을 한다 해도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못할 거라고. 그 때는 그것이 좀 분하기도 하고, 또 약간의 자신감에 차서 못할 건 또 뭐야 한편으론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한 사람의 독자(lectrice)로서, 평범한 감상자(appréciatrice)로서 좋은 글들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한다. 나는 감상자로서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가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괴로워한다. 그 이유는 어디선가 들었던 말 때문일 것이다. 문학을 하는 이유는 개새끼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나름대로 해석한다면 나라는 인간이 현실세계에 살면서 수없이 타협하고 수없이 속물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학을 읽는 순간만큼은 다른 가치들을 잊지 않고 있으며, 다른 이들의 입장에 서보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란 점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란 것도 이런 것이 아니겠나 짐작해본다. 타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그의 슬픔이나 고독감, 고통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잊어버리기 쉽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행위라는 점을 이 책을 보며 상기한다. 인상깊은 구절에 줄을 긋다가 그만두었다. 한동안은 손이 자주 가는 책장에 꽂아두면서 여러 번 펼쳐보게 될 것 같다.
김태영
4.0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더 섬세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기를 택하는 순간, 타인에 대한 잠재적/현실적 폭력이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최승필
4.5
이즈음의 내겐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 제목 참 잘 지었다.. 이즈음 나의 우울도 공부하면 되는걸까.. 우울을 공부하는 것도 분명 우울한 일이긴 하다.. 그닥 기대하지 않고 펼쳐든 책인데, 뜻밖에 좋은 책을 만났다.. 아니,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나에 대해, 문학에 대해, 참 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이 쓴 책.. 남들의 문학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남들 이야기하듯 하지 않아서 좋다.. 늘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능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래서 삶과 나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자세.. '비평가'라면 창작자와 공감하기보다는 마치 해체하듯 후벼파는 직업이려니 했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좋다.. 더 많은 외연으로의 확장을 위해 조심스레 추천해주는 문학작품들은 허투루 지나치기엔 소중한 덤이기도 하다.. 덕분에 나의 우울 또한 그 무게가 다소는 덜어진 것 같아 감사하다.. 20201019 (20.24)
Day
4.0
"저는 멘토가 될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꽤 많은 것들이 여러분 뜻대로 안 될 겁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겠죠. 아무리 조심을 해도 분명히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될 거에요. 그 난관을, 여러분은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돌파할 거에요.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니까. 그리고 훗날 회한과 함께 돌아볼 때가 올텐데, 바로 그때, 뭔가를 배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달라질 거에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피 흘릴 필요가 없는 배움은, 이 배움 덕분에 내가 달라졌다고 믿게 할 뿐, 나를 실제로 바꾸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읽고 써도 피는 흐르지 않는다.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믿음조차 없으면 가망 없을 것이다. 문학은 그 믿음의 지원군이다. 피 흘리지 않으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피 흘리지 않고 인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을 나대로 시도해보았으나 결과는 이렇게 변변찮다. 수없이 다시 물어야 하리라. -176~177p 오늘날의 매체 환경 속에서 실명이 노출된 유명인과 익명의 보호를 받는 네티즌 중에서 누가 더 강자인가. 유명인이라서 감수해야 할 고통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가학을 합리화하는 궤변이다.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216, 217p '나는 사랑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너를 살게 함으로써 나 역시 살 가치가 있게 되기 위해서.' 신이 있다면 그가 우리를 사랑하겠지만, 신이 없다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자 위대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사랑에 관한 한, 언제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요. 곁에 있어줄게. 우리가 온전해지기 위해서. -342p
감정수업중🤔
4.5
그때 내가 그 슬픔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때 내가 그 아픔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때 내가 그 상처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때의 내 사람들은 덜 아팠을텐데. -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조금 더 공감하려고 모든 감정을 함께 느낀게 아니니 간접경험으로라도 우린 배우고 공부해야한다. 다양한 장르로 조금 더 섬세하게 정확하게 글로 표현하는 그의 신중함을 느낄 수 있다. - 몸에 새기고 싶고 가슴에 파고드는 말들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다.
김동원
4.5
읽고 싶은게 많아, 빨리 '읽어치워' 버리고 싶은 책들도 있지만,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들은 언제나 나의 읽는 속도를 자연스레 늦춘다. . 아름다운 문장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한다. 나의 결여를 인정하고 너의 결여를 사랑하는 것과 쉽게 폭력적이지 않기 위해 진실에 섬세지려는 노력과,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당위에 대해 생각한다. . . - 나는 부족한 알몸이 부끄럽다. 그런데 네가 나를 안으려들까봐, 혹은 내가 너에게 안기고 말까 봐,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면서 딴청을 부려야했다. 내 알몸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도록, 네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 그때 나는 정확하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 p326 . - 앞으로 그와 나에게 오래 슬퍼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 서문 중에서
은순
4.5
이 정도의 깊이를 이렇게 짧은 길이로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글만 쓰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더 나아지려면 타인의 고통에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이런 글이 더 많이 읽혀야 한다. 좋은 글’장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인세입니다. 사서 읽으세요. 11.04(2018)
oasisdy
4.5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잠시 멈춰 서게 된다. 언제나 글은 참 쉽다. 아는 만큼 살아내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공허한 글에 지쳐있을 때쯤 나를 두드려준 책, 그리고 마침 적절했던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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