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일본 작가가 한국어로 쓴 시집, 『단 하나의 눈송이』 어쨌든, 피할 수 없는 대목일 듯하다. 시의 보편성, 시집이 담아낸 개성 넘치는 세계, 시어가 얼마나 생동한가보다, 일본 시인이 ‘한국어’로 쓴 시집이라는 지점이 어쩔 수 없이 흥미로운 화제가 될 만하다. “눈으로 본 것, 마음에 떠오른 것을 말하고 싶어도 제대로 못했던 답답함이 시를 쓰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 시니까 외국어로 쓰다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시인의 말」에서 *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일에 대하여 “여기에 실린 시를 처음에 썼을 때는 먼저 일본어로 쓰고 나중에 한국어로 고쳤다. 그러다, 쓰면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나오자 다른 말로 바꾸어 쓰고 또 한국어로 번역하기 쉬운 말을 골라서 쓰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처음부터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쓰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인의 말」에서 수록시들 중 「소식」부터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바로 한국어로 쓴 것들이다. * 서투른 언어, 교배된 언어의 소산 시인은 비모어를 배우는 과정을 열 달이 아닌 십년 동안 공들여 키워야 가능한 태교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무를 일본말로 KI라고 하며 한국말로는 NAMU라고 한다. 십년 전에 처음 한국말을 배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동안 줄곧 아래만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유월이 되고 처음으로 눈을 들어 봤더니 그들이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을 ‘나무’라고 부르면 내 속에서 ‘나무’가 답례했다. 십년 공들여 간신히 푸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펄럭이면서. ―「광합성」에서 * 시인에게 90년대 초, 서울은 ‘보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사이토 마리코의 이 시집은 생각의 산물이 아니라, 보고 느낀 것, 다시 말해 감정의 소산이었다. 이 나라에서 꽃은 속삭이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꽃은 외친다 그 외침 속에서 사람들의 모음(母音)은 한 덩어리 되고 자음(子音)은 산산이 흩어져 갔다 모음 덩어리는 한번 증발해 싸락눈이 되어 다시 내려온다 마치 고생 많아 버림받은 엄마의 비탄처럼 이 나라에서 꽃은 속삭이지 않고 딸들은 언제나 싸락눈을 맞으며 출발했다 언제나 멀리 흘음(吃音)의 벼락 맞아 떨리면서 ―「서울 사람 2」 전문 * 사이토 마리코에게 시인이란 ‘하루’라는 새를 쉬게 하고 싶어 긴 홰가 되고자 하는 인간이다. 바다를 건너가는 떼로부터 뒤처져버린 새 한 마리는 따라붙을 수 있으리라 믿고 날아가면서 어느새 바다 그 자체가 될 것이다 하루가 작은 새 한 마리라면 나는 그 긴 홰이고 싶다 ―「난류」 전문 * 시인 윤동주를 좋아한 시인 사이토 마리코 윤동주를 좋아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역시 윤동주를 좋아한 시인 사이토 마리코.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을 좋아한 사이토 마리코.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나이를 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잊은 채로 당신의 나라에 와버렸고 잊은 채로 당신의 학교에까지 와버렸습니다 팔짱을 끼고 독수리상을 지나서 좀 왼쪽으로 올라가면 당신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 오늘은 비가 지독하고 (…) 여기 올 때마다 조그마한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 저는 당신의 말 앞에 서 있습니다 ― 「비 오는 날의 인사」에서 * 한 편의 시 「눈보라」에 대하여 일본어에는 ‘눈송이’에 해당하는 낱말(고유어)이 없다. 한자로 ‘설편(雪片)’이라는 낱말이 있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이 시를 쓴 것은 다만 눈송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어서였다. 이 시를 썼을 때는 아마 실제로 눈이 내리는 계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나는 쓰고 싶은 낱말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계기로 술술 쓸 수가 있었다. 낱말 하나만 있으면 어디까지나 걸어갈 수 있었으며 또 어디에서 멈추면 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눈송이라는 낱말을 발음할 때, 특히 ‘송이’라는 부분을 발음할 때 ㅇ에서 ㅇ로 공기가 마찰하는 듯한 느낌, 소리의 가벼움과 무게, 거기에 감도는 눈의 향기와도 같은 무언가가 ‘눈송이’를 발음한 순간에 나타나는 집합체로서 눈이 아닌 눈송이 하나하나의 존재감, 그 하나하나 모든 것을 좋아했다. 1 눈보라 속 저쪽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저 사람 역시 지금 ‘눈보라 속 저쪽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무릎보다 높이 쌓인 눈. 사람이 가까스로 빠져나갈 만한 좁다란 길 양쪽에서 나와 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걸어가는 거다. 사람들은 언제 맞스치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시작됐는가? 하여튼 둘은 서로 다가간다. 지상에 단 둘이만 남겨져버린 것처럼 마침내 마주친 그 순간, 한 사람이 빠져나가는 동안 또 한 사람은 한편으로 몸을 비키며 멈추어 서서 길을 양보한다. 그때 둘이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것이 내 고향 설국의 오래된 습관이다. “눈보라 속 저 멀리서 사람이 걸어온다.” 그것을 인정했을 때부터 이미 맞스치기는 시작된 것이다. 누가 먼저 길을 양보하느냐는 그때가 와야 알 수가 있다.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눈보라 속 멀리서 걸어오는 조선의 모습을 만났다. 아직도 같은 눈보라 속을 다니고 있다. 2 수업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 애랑 내기하며 놀았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하는 내기이다. 먼저 창문 밖에서 풀풀 나는 눈송이 속에서 각자가 눈송이를 하나씩 뽑는다. 건너편 교실 저 창문 언저리에서 운명적으로 뽑힌 그 눈송이 하나만을 눈으로 줄곧 따라간다. 먼저 눈송이가 땅에 착지해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정했어.” 내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나도” 하고 그 애도 말한다. 그 애가 뽑은 눈송이가 어느 것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지만 하여튼 제 것을 따라간다. 잠시 후 어느 쪽인가 말한다. “떨어졌어.” “내가 이겼네.” 또 하나가 말한다. 거짓말해도 절대로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 야단 맞을 때까지 열중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눈보라」 전문 * 지금, 사이토 마리코 시인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 시인은 시쓰기를 멈춘다. 어찌된 영문인지 더 이상 시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맇게 시간을 보내던 시인은 최근 몇 해 동안 한국 소설들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현실에 밀착해 있되, 개성 있는 문체를 뽐내는 작가들의 작품―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시작으로, 박민규, 한강, 황정은, 천명관 등 동시대 가장 핫하고 개성적인 작품―들을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옮긴 것이다. * 이 시선집은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둘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뒤이어 이바라기 노리코, 앤 식스턴의 시집이 준비 중이다. ‘봄날의책 세계시인선’은 동시대의 주요한 세계시인들(국내 시인들 포함)의 시집을 계속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