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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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2002년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수상작 ■ 다시 떠오른 ‘별자리 소설’ 두 개의 집, 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의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에 이어 또다시 만나게 되는 ‘별자리 소설’ 『낮의 집 밤의 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연대기적 흐름을 거부하고, 단문이나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특유의 내러티브 방식. 단편의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닌 모티브를 결합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며 마치 성좌와 같이 눈앞에 펼쳐진다. 토카르추크는 『방랑자들』에서 ‘별자리 소설(Constellation novel)’이라는 새로운 모형을 통해 문학과 철학 사이를 유랑하듯 넘나들며 관계 지향적인 사유를 강조한 바 있다. 『낮의 집 밤의 집』은 토카르추크가 『방랑자들』을 쓰기 십 년 전에 쓴 작품인 만큼 작가의 서사적 기법 실험과 풍요로운 상상력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책은 1998년 출간 즉시 폴란드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으며, 2002년에 권위 있는 문학상인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을 수상했다.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스크에 있는 작은 도시 노바루다. 그 도시에 접해 있는 피에트노 마을로 이주한 나는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나게 된다. 시간도 공간도 꿈처럼 이어져 있는 듯 살고 있는 마르타를 통해 나는 노바루다의 역사와 인물들, 그리고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과 그 성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수도사 파스칼리스, 한 다리는 체코 땅에 한 다리는 폴란드 땅에 걸친 채 죽어간 독일인 병사의 이야기 등을 수집하게 되는데……. 『낮의 집 밤의 집』의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 공간적 배경은 폴란드 작은 마을 피에트노와 그 주변 지역인 ‘검은 숲’, 등산로, 노바루다, 밤비에지체, 쳉스토호바 및 브로츠와프다.(폴란드와 체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노바루다는 작가가 매년 여름마다 머무는 집필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물들의 기억은 2차 세계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성녀 쿰메르니스가 살던 옛적으로 가기도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동행인 R과 몇 달간 노바루다에 머물며 마을과 주변인을 관찰하고, 가발을 만드는 신비로운 이웃 마르타와 교류하며 끝없는 이야기 타래로 빠져든다. 시간적 정합성 없이 파편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사실과 전설이 얽혀 있는 이 단편들은 과연 무엇을 향해 흘러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성좌처럼 흩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가지 단서를 가늠케 되고, 그 단서들을 통해 연결점들을 이어 나가게 된다. 성좌의 별들을 이어 줄 모티브는 무엇일까? ■ 집, 자연, 꿈, 우주, 경험 『낮의 집 밤의 집』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집’이다. 주인공은 피에트노에 이주해 새로운 집에 거주하며 이웃을 만나고, 손님을 초대한다. 낮에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의 공간인 집, 하지만 밤이 되면 주인공은 서서히 되살아나는 이 집의 숨소리를 듣는다. 주인공의 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집은 마치 그의 내면과 같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지하실과 넓은 방, 1층과 다락방이 있는 건물로 상상한다. 집은 아무개 씨처럼 텅 비어 있기도 하고, 마렉 마렉과 에르고 숨처럼 괴물이 살면서 그 안에 함께 사는 이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집은 마르타의 이야기처럼 낮과 밤이 혼재된 비현실적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 속 노바루다는 현실과 꿈 사이에 멈춰 있는 세상이며, 영원히 비현실적인 장소이며,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다. 주인공은 마르타에게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321쪽) 언덕과 숲으로 둘러싸인 피에트노는 마치 살아 느끼는 존재와 같이 미스터리하게 묘사된다. 『낮의 집 밤의 집』에서는 ‘자연’ 또한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정원을 가꾸고 잔디를 깎거나 버섯을 따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일상적이고 목가적인 자연이다. 다른 하나는 접근하기 어렵고 꿈처럼 신비로운 자연이다. 주인공의 꿈에서 균사체가 되는 여성, 물속 괴물에 대한 아무개 씨의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자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동시에 존재의 영원함 또한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두 개의 집이 존재하듯 두 개의 자연 또한 공존해야 한다. 낮의 집은 밤의 집이 있기에 존재하고, 낮의 자연은 밤의 자연이 있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낮이 있어야 밤을 경험하듯이 이 모든 것에는 존재함의 이유가 있다. 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어둡지 않다. 그 안에 하늘에서 산과 계곡으로 흐르는 부드러운 조명을 품고 있다. 지구 역시 빛을 발한다. 맨 뼈와 항아리의 광채처럼 차가운 회색빛의, 살짝 인광성이 도는 광채다. 이 희미한 빛은 낮에도, 달 밝은 밤에도, 조명이 밝게 켜진 도시와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진정한 어둠 속에서만 지구의 빛이 보인다. (261쪽) 두 개의 집과 두 개의 자연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모티브는 ‘꿈’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기록하고 분석해 인터넷에 기록된 꿈과 비교한다. 주인공은 집과 마르타, 자신의 피부에 대한 꿈을 꾼다. 꿈은 주인공이 자신과 바깥세상을 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이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된다. 꿈의 모티브는 성녀 쿰메르니스의 이야기에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환상 중 하나에서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가 단지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로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218쪽)라고 고백한다. 삶을 꿈꾸는 사람,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바로 낮의 집, 밤의 집이다. 그리고 우주다. 우주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주인공은 천제력을 관찰하고, R은 구름의 모양을 예측하고, 마르타는 하늘의 색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들이 관찰하는 대상은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혜성과 월식이다. 보름달은 늑대 인간 에르고 숨을 미치게 하고, 프로스트를 괴롭힌다. 누군가에게 우주는 지식의 원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신과 혼돈이 깃든 미지의 장소다. 마렉 마렉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 나서고, 파스칼리스는 성녀 쿰메르니스의 행적을 좇으며 여성성의 비밀을 탐구하고, 레프는 예언의 힘을 발견하려 하고, 주인공은 마르타의 진정한 얼굴을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은 길을 잃고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잠시 머무는 방랑자들일 따름이니까. (『낮의 집 밤의 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문학적 혼동을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패턴이 드러난다. 또한 독립적으로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운명은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일상의 사소한 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들과도 서로 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우리의 논리적 현실이 형이상학적 실체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꿈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시도가 될 수 있을까? 마술과 같은 실제 현상은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작가가 남겨 놓은 빈자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마도 가장 무의미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과 장소에도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