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발터 벤야민 ·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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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은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40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부(Port Bou)에서 음독자살한 불우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ㆍ사상적 세계,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은 지금도 각광을 받는다. 발터 멘야민 선집 5권으로 1940년 마지막으로 쓴 역작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운명과 성격」, 「폭력비판을 위하여」, 「꿈 키치」, 「초현실주의」 등 11편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집필할 당시 노트자료들을 모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을 함께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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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해제 :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구제비평 5 옮긴이의 말 47 운명과 성격 63 폭력비판을 위하여 77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119 신학적ㆍ정치적 단편 127 꿈 키치 133 초현실주의 141 경험과 빈곤 169 19세기의 수도 파리(독일어판) 181 19세기의 수도 파리(프랑스어판) 219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 253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27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 351

Description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발터 벤야민! ― 조르조 아감벤, 자크 데리다에 큰 영향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불안한 눈빛으로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40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부(Port Bou)에서 음독자살한 불우한 지식인! 하지만 그의 지적ㆍ사상적 세계,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은 1930~40년대에 걸쳐 이루어진 성과물들이었지만, 21세기가 들어선 지금에서도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그 폭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시대 사상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나 슬라보이 지젝(Slavoj Zizek),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등이 모두 벤야민 사상에 빚을 지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최근 들어 그의 매체미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봇물 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최성만 교수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발터 벤야민 사상과 글의 '현재성'에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 유럽 지식인들의 글을 지금 접해보면 시대적 한계를 분명히 느낄 수 있지만, 벤야민의 글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양상이나 문제점들에 대한 풍부한 해석과 의문부호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그의 사상이 주로 유물론적 모더니즘 미학과 사회철학적 시각에서 해석되고 수용되어 왔다면, 1990년대 들어서는 언어철학, 번역이론, 미메시스론, 특유의 산문양식 등이 조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난해한 사상가로 통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사상의 기저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메시아주의 또는 카발라 등 유대신비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학문이 그동안 전통적인 분과학문적 영역에 치우쳐 통합적 사유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벤야민의 사상을 그저 유물론적 미학주의자 내지 유대신비주의 요소를 갖은 마르크시스트 정도로 평가한다면, 아주 협소한 그의 지적ㆍ사상적 세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분명 20세기 최고의 유대신비주의 학자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이 있었다. 하지만 벤야민은 그 유대신비주의에 매몰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렇다고 그 대척점에 있었던 마르크시즘에도 그 어떠한 해결책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의 연인이자 마르크시스였던 라트비아 출신 여성 아샤 라치스(Asja Lacis)의 영향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지만, 그에게 '사상'의 문제는 언제나 '지식인'의 관점에서 무엇이 위기에 처한 인류의 문제를 고뇌할 수 있게 하는가 였다. 그것은 바로 지식인이 가져야 하고 가질 수밖에 없는 정치적ㆍ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신랄한 자기비판적 성찰에 있음을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1940년 마지막으로 쓴 역작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가 스탈린과 히틀러의 비밀협약에 대한 절망에서 나온 글임을 보면, 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그의 절친한 지적 동료이자 사후 전집 출간에 큰 기여를 한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발터 벤야민과의 사적인 자리(호프집이나 커피숍 등)에서 그가 가볍게 내뱉는 말들조차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제지하고 경청했다는 일화는 그의 지적 세계를 가늠케 한다. 단순한 역사적ㆍ문헌학적 해석을 넘어 역사의 현재성에 각인된 역사철학적 인식을 구하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말하면 첫 번째로 그 유명한 「역사철학테제」(원제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떠올릴 것이다. 사실상 벤야민의 전체 글을 관통하는 이 역사철학적 사유는 그가 사적 유물론에 경도되기 시작한 중기부터가 아니라 초기의 비평적 글에서부터 일관되게 견지되어 왔다. 예를 들어 초기의 에세이 「괴테의 친화력」은 괴테의 소설 『친화력』이 담고 있는 신화로서의 사실내용을 역사철학적 진리내용으로 읽어낸 비평이다. 중기의 주저이자 대표적 단행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 역시 단순한 문헌학적 연구나 예술철학적 논술을 넘어서 비극과 비애극, 그리고 알레고리 형식에 대한 철저한 역사철학적 비평이다. 벤야민 스스로 “예술작품은 어떤 측면에서도 영역적으로 국한할 수 없는, 한 시대의 종교ㆍ형이상학ㆍ정치ㆍ경제적 경향들의 총체적 표현”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이것은 『파사주』 프로젝트의 ‘미니어처’로서 쓴 보들레르 에세이의 대상이 시인의 작품에 표현된 모더니티의 ‘역사적 경험’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상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ㆍ문헌학적 해석을 넘어 ‘현재성’이 각인된 역사철학적 인식을 구하는 벤야민의 관심과 비평 태도는 그 밖에도 프루스트, 카프카, 레스코프, 크라우스 등에 관한 그의 모든 비평문에 드러나 있다. 벤야민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의 바탕 ― 역사철학 역사적 대상에 대한 이러한 관찰 태도는, 그가 역사철학테제 17번에 기술했듯이, “한 시대에서 한 특정한 삶을, 필생의 업적에서 한 특정한 작품을 캐내는” 역사가의 태도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방법론에서 얻어지는 수확은,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사유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즉 예술작품은 그 속에 ― ‘인식 가능성의 현재’에 읽어낸 ― 그 시대의 경험을 담고 있는 ‘단자’(單子)와 같다. 이때 이 경험의 핵심을 서술하기 위해 신학적 사유가 중요한 역학을 하는데, 이 신학적 시각 역시 그 유명한 역사철학테제 1번의 자동인형기계의 알레고리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벤야민의 사상은 주어진 언어적 자료에서 서로 긴밀히 연관된 신학적이며 정치적이고 동시에 역사철학적인 인식을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벤야민은 1921년에 쓴 아주 짧은 에세이인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의 종교적 구조를 분석하면서, “자본주의는 순전히 제의(祭儀)로만 이루어진, 교리도 없는 종교”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걱정’을 보편화하는 자본주의는 아무 교리도 초월성도 신학도 은총도 없는 무자비한 종교로서 종국에는 신까지도 죄(부채)에 끌어들인다. 이 글 역시 벤야민의 사상적 경향으로 보았을 때 신학적ㆍ형이상학적 색채가 짙던 초기에 썼다는 것은 벤야민 사상에 정치와 신학의 양 날개를 가진 역사철학적 사유 내지 사회철학적 시각이 초기에서 후기까지 관통한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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