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조용한 도시 산책자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깊은 징후를 읽어낸 인문학적 관찰기
잉여, 금수저, 동성애, 청년 실업, 시위, 탄핵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2014년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동아일보에 실렸던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칼럼이란 매수(枚數)가 한정되어 있어서 흔히 개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 수도 있는데,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자는 예컨대 키치, 상호텍스트성, 그레마스 기호 사각형 등의 인문학적 개념들을 보충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였다.
게다가 글 전체를 플라뇌르(fla?neur)의 시각으로 통합함으로써 책은 칼럼들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미학과 사회비판을 넘나드는 고급 인문학 입문서가 되었다. 원래 ‘산책자’라는 뜻의 플라뇌르는, 보들레르가 이 단어를 미학적으로 사용한 이래 도시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익명의 군중 속에서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는 예술가 혹은 지식인을 뜻하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관찰의 촉수를 늦추지 않았던 도시의 산책자였다고 스스로를 평한다. 도시 산책자로서 그는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서울.한국.세계의 보편적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또 한편 소셜 미디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실시간 정보를 흡수하는 디지털 플라뇌르이기도 했다. 이 책은 플라뇌르로서의 저자가 그렇게 관찰하고 사유한 단편적인 조각들을 한데 묶어 그려낸 이 시대의 징후이다.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제목 이야기
‘정치’의 그리스어 어원인 Politika가 ‘도시들의 직무(affairs of the cities)’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정치란 한 공동체 안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 또는 그 공동체 안에서 자원과 권력을 배분하는 실천적 행위이다. 겉보기에 정치와 상관이 없는 듯한 모든 사회 ? 문화적 일이 실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도 정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당파성의 경향을 띤 이야기는 아니므로 역시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다루어진 주제들
저자는 사르트르나 플로베르도 ‘잉여’였다고 말하며 젊은이 특유의 소외감은 현대 사회 고유의 현상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때문만도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의 청춘은 언제나 잉여였다. 아니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잉여였다”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과감히 나와 자연의 물성(物性)과 접촉하는 일이 더 건강한 힐링이라며 접속이 아니라 접촉을 제안한다.
한편 비상식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우파라는 것에 저자는 놀라움을 표한다. 좌파 사상을 가져야만 고상하고 지적으로 보이며, 특히 예술가는 당연히 좌파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한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서 베이컨의 철두철미한 예술가 정신과 인생의 통찰이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 준다고 말한다. 호통 치며 군림하는 좌파 이상주의에 대한 피로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헬 조선’을 말하는 현상에 대해, ‘헬(hell)’이란 국가가 자기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할 때나 쓰는 말이지,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을 비하하며 ‘헬 조선’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는 것은 결국 바깥 세상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개탄한다.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을 통해 부자와 권력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한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박한 노예근성이라고 질타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이 법 앞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하듯이 부자도 똑같이 법 앞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김영란법은 인간의 원초적 성질을 거스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연을 거스르면 활기가 없어지고, 활기가 사라지면 사회의 발전도 정체될 것이라 우려한다.
이외에도 청년 실업, 복면 시위, 지방대 시간 강사 문제, 금수저론, 편향적 역사 교육, 대통령 탄핵 등 2014~2017년 한국에서 일어났던 상황들을 저자는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비판하고 그 오류를 경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