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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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산문시 산문시 『밤의 가스파르』는 전통시의 형식과 규칙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로서 산문을 시에 끌어들인 선구자적 작품이었다. 프랑스 상징시의 선구자 샤를 보들레르는 이 작품을 자신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작품 중 세 편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썼다. 『밤의 가스파르』의 배경은 프랑스 중부의 도시 디종이다.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이 어린 시절을 보낸 디종을 예찬하는 정형시로 문을 여는 이 책은 디종의 아르크뷔즈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한 사내 ‘밤의 가스파르’에게서 화자인 ‘나’가 건네받은 원고다. 밤새 예술을 논하면서 신과 사랑이 예술의 감정이라면 사탄은 예술의 사상이 될 수 있겠다고 말하는 밤의 가스파르 씨는 알고 보니 지옥의 악마임이 밝혀지고,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는 설정이다. 본격적인 본문으로 이어지는 여섯 개의 ‘서(書)’는 각각 ‘플랑드르파’ ‘옛 파리’ ‘밤과 그 매혹’ ‘연대기’ ‘에스파냐와 이탈리아’ ‘잡영집’이라는 제목 아래 정형시도 운문시도 아닌 당대의 새로운 산문시를 밤과 몽상의 환상 문학적인 그림자 아래 회화적으로 펼쳐 보인다. 상반되는 양면의 예술 너머 이 책의 부제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에는 두 명의 화가가 등장한다. 이들은 예술에 대한 베르트랑의 관점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베르트랑은 예술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이 있다고 본다. 즉 예술에 ‘은둔하는 철학자’ 렘브란트의 이미지 같은 면이 있는 한편, ‘거리를 누비는 독일 용병’ 자크 칼로의 이미지 또한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 책을 옮긴 번역가 조재룡은 「옮긴이의 글」을 통해 이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 속 산문시들이 어떻게 렘브란트의 빛을 다루는 기술을 차용했고 자크 칼로의 동판화 속 환상과 아이러니와 그로테스크함을 반영했는지 면밀히 분석하면서 새로운 산문시의 탄생과 구현 방식을 세세히 안내한다. 또한 베르트랑은 네덜란드 플랑드르파의 회화 역시 적극적으로 빌려와 변주한다. 일상의 삶을 그리는 이들에게서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낯선 앵글로 포착하는 기법”을 취하되, 화가들의 “작품들을 시로 ‘번역’하는”것을 넘어 “수많은 ‘비(非)계층적’ 파편들”을 흩뿌려 둔다(옮긴이의 글, 329~331쪽). 그러면서 베르트랑의 시들은 “소진되지 않는, 기이하고 회화적인 이미지들을 만화경의 반짝임처럼 발산”(332쪽)하며 “활발한 움직임을 제공”(333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독자는 “장면의 한복판”(334쪽)에 서서 환상의 세계 안팎을 두루 조망하게 된다. 제목과 부제가 드러내듯 ‘밤’과 ‘환상곡’이라는 주제어 아래 꿈과 환상의 마법 같은 이야기들을 몽환적으로 펼쳐 보이는 시들은 그럼에도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견지하며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베르트랑이 과거의 대중적인 설화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즉 “대중문화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던 일상적인 ‘환상 이야기’”(338쪽)로서 “무엇보다도 인간들 삶의 세계”(342쪽)에 관심을 두고 써내려간 시편들을 통해 작가는 세상에 단단히 발붙이고 있어 더욱 기이하고 경이롭게 느껴지는 환상곡들을 “대중 시”(355쪽)로 펼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