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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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을 것, 남을 잡아먹어서라도 〈좀비즈 어웨이〉의 주인공 연정의 생각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복잡하고 귀찮은 과정을 거친 결과다. 일단 제때 끼니를 챙겨야 하고 기본적인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꾸준히 수행하자면 만만치 않은 임무라는 것을, 특히 혼자 살아 보면 잘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 가야 하고 성인이라면 경제 활동에 종사해야 한다. 이른바 사람 구실을 하라는 요구다. 사교에 능한 사람도 좋은 직장도 소수인 터라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지만 위로 한마디 듣기가 어렵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이다. 주변과 스스로의 요구를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요구에 응하는 시늉이라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야근할 때는 피로 회복제를 섞어 마신다. 그래도 버티기 어려워지거나 〈참살이404〉의 주인공 소영처럼 애초에 적은 에너지를 타고났다면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소영은 결국 유서를 쓰는데 유서를 잘 써 보려다가 한 회사의 광고를 발견해 입사 지원서를 넣고야 만다. 잘 살기란 그토록 어렵고, 잘 살고 싶다는 소망은 처절하도록 강력하다. 부족한 자신을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애써 온 《좀비즈 어웨이》의 주인공들에게 세상은 좀비 아포칼립스로 응수한다.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 타인을 잡아먹어서라도. 세 주인공은 모두 좀비가 아니지만, 자신이든 타인이든 해쳐도 된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도달하지 못할 기준에 맞추라는 주문은 곧 희생을 감수하라는 강요다. 자기 자신일 것, 남들이 뭐라 하더라도 수록 작품들의 공통 배경이 되는 잔혹한 세계관을 처음 알리는 것은 피구공 대신 날아온 사람 머리다. 이 머리가 등장한 이후로 〈피구왕 재인〉의 무대인 봉암여고는 뿜어져 나오는 피, 잘려 나간 팔다리, 쏟아져 흐르는 내장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이 된다. 사람 머리는 다음 작품인 〈좀비즈 어웨이〉에도 등장하는데, 이 머리가 나오는 장면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띤다. 전신이 온전하지만 말주변이 없는 여자와 달변가이지만 머리만 남은 여자의 첫 대면은 작품집 전체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 중 하나다. 이러한 반전은 모든 수록작에 걸쳐 존재한다. 작품집 초반의 좀비는 무자비한 가해자로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이 다른 입장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 또한 점차 변한다. 도움을 주던 사람은 도움을 받게 되고, 상대를 밟고 올라서려던 사람은 상대로부터 구원의 실마리를 얻는다. 저 아래 짓눌려 있던 이는 어느새 꼭대기에 올라 높으신 분의 목을 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변화는 달라지려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과 품고 있던 마음을 밖으로 드러낸 결과다.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에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타인을 닮아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고, 나약하다 무시했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곁에서 도와주던 사람에게서 벗어나 홀로 선 뒤에야 비로소 변화가 생겼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게 된 이들의 시원한 웃음을 마주하고 나면, 고통스러운 상상 속을 달리는 이야기로 위안을 건네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