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의식은 어떻게 혐오와 폭력을 낳는가?
오직 ‘남성’이라는 이유로 거머쥔 특권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억압과 착취의 구조
오직 ‘남성’이라는 이유로 거머쥔 특권이 주조해내는 거대한 억압과 착취를 추적한 책. 여성혐오의 구조적, 철학적 기원을 치밀하게 분석한 첫 책으로 학계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던 젊은 여성 철학자 케이트 만의 두 번째 저작이다. 학술서에 가까웠던 전작과 달리 이 책 《남성 특권》에서 저자는 미투운동이 불붙듯 일어난 직후 북미에서 발생한 중대한 ‘여성혐오’ 사례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추적한다. ‘남성 특권’이 나머지 비남성 인류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가로막는 총체적 위법이라는 것, 그리고 그 위법행위로서의 남성 특권이 매우 다양한 형태의 여성혐오적 행위를 초래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혐오 그 자체’의 논리에 주목하여 혐오를 실행하는 개별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여성혐오를 피해자가 맞닥뜨리는 사회적 구조 및 환경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 모두가 얼마만큼은 여성혐오적 사회구조의 공범”이라는 중요한 진실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각 주제/사안별로 촘촘히 배열된 관련 사례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색이자 장점이다. 가정으로 대표되는 사적 공간에서부터 직장, 사회, 의료 제도, 정치 등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삶 전반에 걸쳐 직면하게 되는 혐오와 불의를 실제 사례를 통해 생생히 드러낸다. 교차성의 관점을 이어받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흑인, 장애인 등 여러 겹의 억압과 주변화를 겪는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무게를 싣는 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요컨대 트랜스젠더혐오, 흑인여성혐오는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어려운 개념어가 아닌 쉽고도 적확한 신조어를 제시하며 디지털 문법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여성 피해자보다 더 많은 지지와 공감을 받는 현상을 일컫는 ‘힘패시himpathy’(him+sympathy)나 ‘여성 피해자 지우기herasure’(her+erasure)라는 조어가 대표적이다. 이런 시도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어떤 일을 초래하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남성 특권》은 여성으로 살며 겪을 수 있는 수천수만 가지의 불의를 나열하고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읽기 고통스러운 책이기도 하다. 독자들을 동시대 여성들이 겪는 가장 폭력적인 트라우마의 순간들로 지치지 않고 이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책을 ‘믿음직한 가이드’ 삼아 그 공포의 상황을 건너는 방법도 있다. 우리에게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불의들을 직시할 때이다.
남성 가해자는 왜 지지와 공감을 받는가: 강간 사건과 힘패시
케이트 만은 다른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저지르는 성폭력 사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2017년 10월에 촉발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 내 미투운동은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연방대법관(브렛 캐버너) 등 정부 핵심 인사와 정치인부터 할리우드에서 명성을 떨치는 감독/배우(하비 와인스틴, 에드 웨스트윅 등)까지, 소위 ‘권력’을 쥔 남성들의 성적 위법행위를 샅샅이 수집한다.
저자는 언론 보도, 피해자의 증언, 판결문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회 전체가 합심해 남성 가해자를 위한 거대한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다수의 여성들조차 그 과정에 적극 가담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권력이나 특권을 가진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여성혐오적 행위를 했을 때 압도적인 수준의 공감과 염려를 받는 현상을 저자는 ‘힘패시himpathy’라 명명한다. 힘패시는 지금껏 제대로 연구된 적 없는 여성혐오의 이면이라 할 수 있다. 여성혐오가 가부장제적 기대치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여성들을 처벌하고 짓밟는다면, 힘패시는 여성을 짓밟는 폭압자를 “좋은 남자”로 포장함으로써 보호한다. 여성혐오의 결과인 힘패시가 다른 한편으로 여성혐오를 더욱더 강화하는 셈이다.
이때 피해자 여성은 가해자 남성의 커리어와 평판에 흠집을 냈다는 이유로 도리어 비난받고 공격당한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거나, ‘스스로 무언가를 착각했다’거나, (성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해당 남성의 중요한 사회적 평판을 망칠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게 여성을 비난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다. 비난을 넘어 해당 사건에서 피해 여성의 존재를 아예 삭제하려는 시도(‘여성 피해자 지우기herasure’)도 존재한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에 따르면, 실제로 강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잖은 뉴스들이 피해자 여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가해자 남성이 잃게 될 커리어와 전도유망한 미래에 안타까움을 표출하곤 한다. 이 의도적인 침묵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직시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시로 보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강간이나 성폭력을 저지르는 개별 행위자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도록 하는 사회구조를 면밀히 탐색할 필요가 있다. 남성 가해자들은 그들을 감싸는 사회구조 덕분에 강간을 실행에 옮길 수 있고, 그 구조 내에서 보호받는다. 여성의 기소 의지를 묵살하고 ‘예외적 허가’를 남발해 사건을 종료시키거나, ‘강간 키트’(성폭력 피해 발생 시 법의학적 증거를 모으기 위한 도구 세트)에서 수집된 증거를 누락하거나 아예 분석조차 실행하지 않는 경찰의 행태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심지어 흑인 여성들의 강간 키트는 분석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달갑지 않은 섹스: ‘동의’라는 함정에 관하여
그러나 ‘명백한 강압’이 입증되는 강간 사건과 달리 윤리적으로 훨씬 더 미묘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성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저자의 지적처럼, 윤리적 섹스란 단순히 범죄(강간)를 저지르지 않는 것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저 ‘강간’이 아니라고 해서, 명백히 상대의 ‘동의’를 얻었다고 해서 윤리적 섹스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동의 여부’가 제기하는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를 세심히 검토한다.
일례로 《뉴요커》에서 450만 건의 조회수를 올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단편소설 <캣 퍼슨>에 등장하는 섹스는 하나의 분명한 의사 표현으로 보이는 ‘동의’에 복잡 미묘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스무 살의 여성 ‘마고’와 서른네 살의 남성 ‘로버트’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제와 성적 접촉에 대해 다룬다. ‘로버트’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든 ‘마고’는 그와의 섹스가 불쾌하지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 섹스를 허락한다. 즉 독자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적극적인 동의로 보인 ‘마고’의 행동이 일종의 ‘연기’였을 수도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고’는 왜 티끌만큼의 쾌락도 느끼지 못하면서 그와의 섹스를 거부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왜 열의 있는 척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걸까? 케이트 만의 지적대로, 실제로 <캣 퍼슨>은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섹스에도 ‘강압’이 작용할 수 있음을 적확하게 보여주는지 모른다. 우리는 ‘로버트’의 몸에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섹스를 그냥 처리해버리기로 하는 ‘마고’의 결정에서 가부장제 사회가 짜놓은 각본에서 일탈하지 않기 위해 그저 몸에 밴 관습에 따라 섹스를 ‘수행’하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여성들이 표하는 ‘동의’ 의사는 생각보다 많은 경우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강압’이란 남성을 무례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혹은 남성의 자존심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가부장제의 오랜 정언명령에 다름 아니다. 여성들이 거절 의사를 밝히는 데 수치심을 느끼는 이유, 더 나아가 여성혐오가 여성들에게 내면화된 수치와 죄책감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부장제는 이런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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