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예술의 자율성과 아름다움에의 귀환을 위하여
주지하다시피 1968년 5월 이후 사상계와 문화계를 지배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이름이 의도하는 것과는 달리 ‘모더니티’를 극복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엉망진창의 혼란’을 초래한 무력한 사조라는 사실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다. 이런 사태의 심층적 근거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인간 주체와 비인간 객체 사이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적 구상을 통해 세계를 단지 ‘인간에-대한-세계’로서만 파악함으로써 비인간 객체들의 실재를 무시하는 ‘상관주의’적이고 인간중심적인 근대적 세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여겨진다. 대륙철학은 여전히 구성주의, 해체, 문화적 비판 이론의 맥락주의적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그레이엄 하먼은 이런 자각을 바탕으로 비인간 객체들의 자율적 실재성을 강조하는 ‘객체지향 존재론’(OOO)으로 알려진 신흥 철학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사상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먼에 따르면, 철학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예술(작품)의 자율성과 미적 경험을 경시하고 예술(작품)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포스트형식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장기 1960년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 미술관에서는 “묘사된 억압과 잔혹성에 직면하여 도덕적 분개를 느끼도록 요청받는 그런 경우들을 제외하면” 노골적인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미적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이 지배적이다. 하먼은 “반형식주의적인 정치적/민족지학적 북을 계속해서 더 두드리거나 혹은 미학이나 심지어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중요한 새로운 예술이 생겨날 가망이 없다”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1960년대 이후 예술계를 지배하는 반미학적 조류를 밀어내고 예술의 자율성과 아름다움에의 귀환을 고무하고자 “예술에 대한 칸트의 접근법에서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에 주의를 다시 집중”함으로써 이른바 ‘기이한 형식주의’라는 객체지향 미학을 제시한다. 객체지향 형식주의 미학은 아름다움이 예술의 본령이라고 단언함으로써 일종의 예술 자율주의를 강조한다. 이런 견지에서 OOO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맥락으로부터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예술가들과 예술 이론가들(특히, 건축가들과 건축 이론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상황이 이해될 수 있다.
기이한 형식주의 : 예술(작품) = ‘작품’ + ‘감상자’
OOO에 따르면 세계는 자율적인 실재성을 갖춘 객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실재적 객체는 다른 객체들의 회집체다. 또한 OOO는 자신의 구성요소들로 ‘아래로 환원’되지 않고 그 성질들로 ‘위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자라면 무엇이든 객체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여기기에 물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 같은 비물체적인 것도 객체로 간주될 수 있다.
하먼은 우리가 예술(작품)을 경험할 때 “감상자와 작품이 함께 융합하여” 하나의 ‘자율적인 혼성 객체’를 구성한다는 ‘기이한 형식주의’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작품)은 “아름다움을 생산할 채비를 갖춘 존재자”인 작품과 그것을 대면하여 미적 경험을 겪는 감상자로 구성된 관계로서의 독립된 객체가 된다. 여기서 작품으로서의 존재자는 자신의 가시적인 감각적 성질들로부터 물러선 실재적 객체가 됨으로써 어떤 심층의 간극 혹은 긴장 상태를 유발하고 감상자는 감춰진 실재적 객체 대신 감각적 성질들을 떠맡으면서 그 간극에 진입함으로써 미적 경험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일종의 연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수동적’ 감상자는 어떤 작품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필요 성분이 된다. 여기서 OOO의 탈인간중심주의적 테제에 따라 감상자는 미적 경험 능력을 갖춘 존재자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우연히 인간이기에 인간을 감상자로서 포함하는 인간의 예술을 향유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하먼의 객체지향 미학에 따르면, 세계에서 미적 경험 능력을 갖춘 모든 존재자가 사라진다면 작품들은 존속할지라도 예술은 존재할 수 없음이 당연하다. 이렇게 해서 기이한 형식주의는 인간 감상자와 비인간 작품 사이의 분리에 기반을 둔 근대적 형식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포스트모던’한 관계주의로부터 예술(작품)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비근대적이고 비관계적인 미학을 구축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예술의 적은 직서주의(literalism)다
한편으로 예술(작품)이라는 혼성 객체를 구성하는 다른 한 요소인 ‘작품’을 살펴보자. 객체지향 미학에 따르면 어떤 작품이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미적 경험을 유발할 아름다움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감춰진 실재적 객체와 그것의 또렷한 감각적 성질 사이에 명시적인 긴장 상태”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물리적 존재자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와 사건, 상황 같은 객체 역시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서의 ‘작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능과 효과를 비롯하여 가시적 성질들로 바꿔 말(환언)할 수 있는 객체, 즉 지식 대상으로서의 ‘직서적’ 객체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 요컨대 예술의 적은 직서주의(리터럴리즘)다. 이 책에서 하먼은 ‘은유’를 동원하여 직서적 상황과 비직서적 상황의 차이를 예증한다. 요컨대 기이한 형식주의는 비근대주의라는 날실과 반직서주의라는 씨실로 직조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OOO 미학에 따르면 예술은 직서적 객체를 생산하는 과학과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철학이란 “그저 세계에 관한 일련의 정확한 명제적 진술을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사물의 핵심에 숨어 있고 단지 간접적 수단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형상에 관한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하먼의 철학관을 고려하면 OOO와 예술 사이의 각별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OOO는 “예술을 철학의 주변부적인 하위분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의 바로 그 핵심으로 여긴”다.
기이한 형식주의의 다섯 가지 함의
하먼은 1960년대 이래로 우리가 “관계적인 것, 정치적인 것, 규정된 것, 미적이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의 조류에 휩싸여 있었다고 진단한다. 그리하여 짐작건대 하먼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이른바 ‘68 체제를 벗어나는 철학 및 예술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견지에서 하먼은 이 책의 말미에 기이한 형식주의가 품고 있는 다섯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1) 혼성 예술 형식은 여전히 폐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예술(작품)의 자율성을 감상자와 작품의 연합체 위치시킴으로써 다양한 장르를 자족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된다.
(2) 비판 이론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판 이론은 근대적 이분법 형식주의의 또 다른 변양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3) 반형식주의 예술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어떤 메시지를 예술(작품)에서 정치권으로 수출하기보다는 예술이 정치를 집어삼켜서 그것에 미학적 삶을 부여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4) 예술의 외부를 배제함으로써 우리는 그 내부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예술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는 미적 세계 바깥의 세계가 흔히 지루하고 우울하며 익숙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주변 맥락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모든 예술(작품)의 다양성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5) 내부의 다양성은 전체론적인 것이 아니기에 ‘차갑다.’ 하먼은 근대가 대체로 고급 미술이 뜨거운 매체의 지배를 받은 시기, 즉 작품의 구성요소들 사이의 관계들이 과잉결정되도록 과다한 정보가 부여된 시기였다는 역사적 테제를 제시하면서 그다음 시대에는 모더니티를 지배한 뜨거운 형식이 냉각됨으로써 지배적인 미적 매체가 변하리라고 추측하는데, 특히 건축이 언급된다.
요컨대 하먼은 OOO 미학에 힘입어 예술이 자신의 고유한 존재론적 지위로 복귀하면서 이른바 ‘포스트모던’적이지 않은 근대주의 이후의 지적 세계를 추구할 때 철학과 협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