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드물고 황홀하고 고통스러운, 어떤 꿈의 기억
시인 박서원의 문학적 부활을 위하여
나는 길가에 버려진 헌 구두처럼 굳게
침묵했네
침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겨울 비 오는 밤의 외투였던
내 고요한 타락을 위해서
바로 나였던 네 토막의 새로운 비명을
위해서
「날마다의 꿈, 나의 절단식」 부분.
“그의 재능은 잘못 소비되었다. 그러나 두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와 『이 완벽한 세계』는 한국어가 답사했던 가장 어둡고 가장 황홀했던 길의 기록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_황현산(문학평론가)
박서원 시인을 찾아서
1989년 문예지 <<문학정신>>에 <학대증> 연작을 포함한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박서원 시인은 남성이 주류였던 당대 문단에 고백 투의 자전적 시적 양식과 새로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작풍을 통해 당대는 물론 이후의 (여성) 시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작지만 큰 시인의 명성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우리 최측의농간 또한 흩어져 있던 그의 시집들을 수년에 걸쳐 하나씩 찾아 읽어왔다. 그 시집들을 ‘찾아 읽어야’ 했던 이유는 그의 시집들이 많은 서점들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책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더 이상 다음 쇄의 기약이 없던 시인의 시집이 하나 둘 절판 되어 가던 무렵이었고 사람들도 시인의 이름을 잊어가던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2016년 여름, 박서원 시인이 타계한 것 같다는, 그것도 그 시점이 꽤 오래전인 것 같다는 출처 미상의 소문이 SNS상으로부터 문단 안팎을 떠돌기 시작했을 때, 무력한 마음으로 시인을 찾아 헤매왔던 우리의 모골은 송연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서원 시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수 있음을 상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상상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애써 안 한 것이었으므로, 비로소 그런 가능성까지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된 우리의 심정은 조급했고 불안했다. 부고의 소문은 그러나 끝내 소식이 되지 않았으며 그로부터도 오랫동안, 그를 기억한다거나 기억하겠다는 사람들 틈에서조차 그의 생사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해주는 이는 없었다.
생전의 시인과 연이 있었던 분들을 집요하게 수소문한 끝에 우리는 극적으로 시인이 마지막까지 거쳐했을 것으로 짐작 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주택을 찾을 수 있었으나 인기척이 없는 집을 앞에 두고 한동안은 속절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하늘 아래, 그 집 앞으로 온 듯 보이는, 집 대문 앞에 떨어져 있던 우편 봉투 하나를 주워들어 겉봉을 통해 보였던 발송지로 전화를 걸어보지 않았더라면, 박서원 시인의 소식을 영영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2017년 초의 어느 날이었다. 시인의 유족(어머니)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그 날은, 봄꽃들이 개화를 준비하던, 아직은 조금 추웠던 어떤 날이었다.
시인의 절판된 작품집들을 복간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 시인과 유족을 수소문해왔던 우리에게 시인을 찾는 일이 고인을 향한 예의 행로일 수밖에 없었음은, 시인 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분명해졌다. 박서원 시인의 죽음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셨던 시인의 어머니는 실낱같은 단서와 희망들을 붙잡아 찾고 또 찾아 마침내 자신의 눈앞에 당도하게 된 우리의 모습을 놀라워하셨다. 그분이 느꼈던 그 놀라움은 이미 2012년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말로를 전해들은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먹먹함과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러므로, 2016년 여름을 달궜던 출처 미상의 소문으로부터 비롯한 결실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아무도 궁금해 하거나 알지 못하게 된 박서원 시인의 뒷모습을 오래 궁금해 했던 우리들 열망의 한 소산과 다르지 않다.
『아무도 없어요』에서 『박서원 시전집』으로
이 책의 출간 준비를 시작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었다. 2017년 5월 31일 복간한 시인의 첫 시집 『아무도 없어요』는 사실상 다른 시집들의 약력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집으로 그 책의 복간을 통해 최측의농간은 시인의 정확한 생사여부조차 제대로 아는 이들이 없는 현실 속, 고인의 정확한 타계일자(2012년 5월 10일)를 공표하고, 뜬 말로만 떠돌던 첫 시집의 형상을 복원한 바 있다. 『난간 위의 고양이』와 같은 대표적인 시집에 대한 복간 요청이 없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을 최측의농간 시집선 제1권의 형식으로 우선 선보인 이유는 이 시집의 운명이 시인의 운명과 닮아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고, 다른 시집들의 이력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 시집이 진정으로 출간된 적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작품이 담겨 있는 채로 나왔었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열망을 은밀하고 고립된 욕망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하여, 시인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말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우리는 시인의 첫 시집 『아무도 없어요』를 복간했다.
유족을 통해 확인한 바, 시인은 생전에 자신의 모든 원고를 스스로 정리 및 폐기하였다. 죽음의 예감 속에서 이루어졌던 시인의 그 고독한 결단으로 인해 일체의 초고와 부속 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시전집에서 다섯 권 시집들의 초판을 원본 원고로 삼은 이유는 그것 외에 없다. 일부 이북으로만 판매 되던 시집들의 경우 디지털화 과정에서 일부 작품 훼손이 없지 않았다. 저본 삼은 기준 판본은 따라서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던 -현재 모두 절판되어 있는- 모든 시집의 초판본이다.
제1시집 『아무도 없어요』(1990)를 통해 우리는 시인의 등단작 「학대증」 연작을 포함, 박서원 시인이 “사람들이 시라고 하는 것에 대한 독서를 통해 불리한 삶의 여건들이 모두 새로운 재산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황현산)을 배우기 시작한 순간을 살필 수 있다.
제2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1995)는 시인의 이름과 더불어 비교적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시집이며 이 시집을 통해 많은 이들이 ‘박서원’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기억하게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의 대표 시집을 한 권만 뽑는다면 큰 무리 없이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제3시집 『이 완벽한 세계』(1997)를 통해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적잖은 논쟁-작품집의 밀도와 개별 작품들의 균일한 완성도-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우리는 비로소 능수능란하고 프로페셔널한 시인으로 태어나게 된 박서원 시인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제4시집 『내 기억 속의 빈 마음으로 사랑하는 당신』(1998)은 IMF 사태로 한국 전역이 떠들썩할 즈음, 힘겨운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기획 시집 성격을 띤 작품집으로써 상대적으로 다른 시집들에 비해 개별 작품들의 밀도가 떨어지는 편이며 시인 또한 다른 시집들에 비해 애정을 덜 갖고 있던 시집이었다고 전한다.
제5시집 『모두 깨어 있는 밤』(2002)을 통해 박서원 시인은 초, 중기의 작품들 속 성길거나 거친 면모들을 대부분 말끔하게 정리할 능력을 가진 시인이 되었음을 증명하였으나 그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강력한 시적 감응들까지 정리 되어 버린 감이 없지 않아 여러 모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렇듯 시인이 생전에 펴낸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 순으로 한데 묶어 정리하고 비평가 황현산이 시인을 추모하며 그의 작품세계와 삶을 톺은 한 편의 글을 수록하였으며 작품 제목 색인을 보충하여 개별 작품을 보다 효율적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오랜 고민 끝에 수록한 황현산 비평가의 글 「박서원을 위하여」는 시인의 시집 두 권을 편집했던 사람이기도 한 황현산 비평가가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2016년 여름에 한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글로써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은 시인이 남겨 놓은 시편들과 그가 떠나간 뒷모습, 우리가 놓쳐 버렸던 바로 그 뒷모습에 대하여 가만히, 오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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