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모파상”이라 불리는 단편소설의 귀재 오 헨리
다정한 유머와 예기치 못한 반전의 페이소스로 펼쳐 낸 휴먼 드라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0권으로 출간!
익숙한 소시민적 일상에서 찾아낸 낯선 아름다움
모파상, 체호프와 더불어 세계 3대 단편 소설 작가라 불리며, 미국 문학사에서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단편 소설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 오 헨리. 그의 주요 단편 28편을 망라한 『오 헨리 단편선』이 출간되었다. 쉰이 되기 전 요절하기 전까지 엄청난 창작열을 발휘해 수백 편의 단편을 남기고 간 오 헨리는, 흔히 ‘트위스트 엔딩’이라 불리는 반전 있는 결말과 휴머니즘 가득한 에피소드를 통해 현대 미국 단편 소설 스타일이 정립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편, 독자에게 한 번 읽으면 잊히지 않는 매력적인 문학 경험을 선사한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하고 상상하여 비정한 세상 속에서 가끔씩 생겨나는 공명의 순간을 주로 그린 그는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이 사용하는 속어나 은어, 전문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더욱 생동감 있고 현실적이게 그려진 것은 작가 특유의 어휘 구사 능력 덕분이다. 오 헨리의 작품에서는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 비롯된 애정 그리고 그의 유머와 페이소스가 지닌 스펙트럼 넓은 보편성은 시공을 초월해 현재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미국 단편 소설의 한 계보를 차지한 오 헨리의 독특한 작품 세계
“뉴욕에서 혼자 지낸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그건 틀림없어요.” 도너번 씨가 말했다. “하지만 이 오래된 작은 도시는 일단 마음을 열고 친해지면 그 친절에 한도가 없답니다.”(본문 155쪽, 「백작과 결혼식 손님」)
미국 단편 소설의 역사를 논하면서 오 헨리의 존재를 간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나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후대 작가들의 단편 소설 곳곳에서 오 헨리의 영향이 눈에 띈다. 18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 헨리는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실제 작품 활동 기간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미국인의 삶, 그것도 도시에서의 삶을 주로 다뤘다. 그가 작가로서 집중적으로 활동한 무대였던 뉴욕은 근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소수가 누리는 풍요와 다수가 겪는 빈곤이라는 양면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속에 그가 담아낸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근대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한 소시민 사회의 구성원인 가난하거나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오 헨리식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갑작스러운 반전을 거쳐 예기치 못했던 대단원에 이르는 플롯 구성 방식에 있다.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 상태나 감정보다는 극적인 사건에 좀 더 집중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모파상 단편 소설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연히 일어난 운 좋은 사건인 듯 보였던 일이 사실은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꾸며낸 일이었음이 밝혀진다거나(「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 교도소에 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다가 마침내 열심히 살아 보려고 마음을 고쳐먹는 순간 체포되어 수감된다거나(「경찰과 찬송가」), 납치범이 오히려 납치된 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돈을 지불하게 된다는(「붉은 추장의 몸값」) 식의 반전을 통해 뜻밖의 결말에 이르게 되는 오 헨리의 플롯 구성 방식은 그 당시 독자들에게 상당히 기발하고 재치 있게 여겨져 인기를 끌었다.
시대를 생생히 반영한 언어로 이루어 낸 독특한 문체
“이리 나와 봐, 이 풋내기야.” 그가 톰을 향해 소리쳤다. “네 녀석 등판에 풀씨를 잔뜩 묻혀 주마. 방금 네놈이 나를 ‘도시 촌놈’이라고 불렀겠다. 어디 이리 나와서 한번 까불어 봐.”(본문 233쪽, 「도시의 패배」)
단편소설 작가로서 오 헨리의 명성에 크게 기여한 또 다른 요소는 그의 언어 구사력이다. 지금도 전시되어 있는 오 헨리의 스케치들에서 드러나듯 그는 인물들의 특징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생동감 있게 표현해 내는 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비단 그림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그의 언어 속에는 그가 오랜 기간 거주했던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나 텍사스, 뉴욕 지역의 말투뿐 아니라 심지어 고작 몇 주밖에 머무르지 않았던 뉴올리언스 크리올의 독특한 말투와 쇼걸, 과거의 흑인 노예, 타이피스트, 여점원, 변호사와 같은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이 사용하는 속어나 은어, 전문 용어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더욱 생동감 있고 현실적이게 그려진 것은 이처럼 엄청난 어휘 구사 능력이 작가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결합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휴머니즘 드라마
“맙소사!” 그가 외국 억양이 섞인 말투로 소리쳤다. “그 빌어먹을 담쟁이덩굴에서 이파리 좀 떨어진다고 죽겠다는 멍청한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문 35쪽, 「마지막 잎새)」
오 헨리의 단편들이 시공을 초월해 인기를 끌고 있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배어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의 유머와 페이소스가 지닌 보편성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독자와 21세기 초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오 헨리의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이 전적으로 동일할 수는 없을지는 모른다. 어차피 오 헨리가 그려 낸 소시민적인 익숙한 일상 속에 숨겨진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것은 결국 독자 개개인의 몫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전반에 깔린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변치 않고 남아 있는 한 그의 작품은 시공을 초월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그들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