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혹시 우리는 너무 쉽게 ‘멘붕’과 좌절을 말한 것은 아닌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희망을 불신하게 된 그대에게 “우리는 이 비열한 도살장에서 유일한 무기로 여겼던 민주주의가 승리하게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절망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믿음을 품었다.” _본문에서 『분노하라』라는 작은 책 한 권으로 세계인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깨뜨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이 2012년 발표한 마지막 자서전이 출간된다. 지난 2월 27일, 향년 95세로 타계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붐이 일고 있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는 스테판 에셀이 세상을 떠나기 1년여 전인 2012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자서전으로, 원제는 “Tous comptes faits... ou presque”, ‘이제 모든 것을 말하지요… 거의 모든 것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현재 파리에 살고 있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목수정이 번역했다. 마치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진보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불꽃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지난 삶을 낱낱이 회고한 그의 마지막 자서전은 우리의 잠자고 있던 양심을 뒤흔드는 잠언들로 가득하다. 그는 몸에서 서서히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여전히 자본주의의 폭력과 난맥상을 지켜보면서도, 세상은 진보해왔으며 여전히 더 큰 진보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그것은 그가 낙관적이거나 절대적인 좌파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주의가 역사의 진화를 명백히 관찰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스테판 에셀의 사후 그를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안장하자는 청원서를 올린 정치가들에는 좌파와 우파가 따로 없었다. 에셀이 지지해온 사회당과 녹색당은 물론 우파인 대중민주연합의 정치가들까지그의 죽음 앞에 고개 숙였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스테판 에셀은 ‘프랑스의 사상’ 그 자체”라고 추모했다. 그가 진영을 넘어 이렇게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굳건한 믿음,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교조적인 관점을 벗어나 미래 세대와 소통하고 교감한 열정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그가 이러한 사상을 구축하기까지 그의 생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만남과 모험이 펼쳐진다. 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자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자유와 행복을 향해 질주해 영화 <쥘 앤 짐>의 여주인공 모델이 된 어머니 헬렌 그룬트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메를로퐁티, 다니엘 컨벤디, 에드가 모랭 등의 사상가들과의 전율 어린 만남, 그리고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때 서른네 살이었던 ‘친구의 어머니’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비롯해, 그의 생애 단 한 번 찾아온 동성애 경험 등 그 자신의 아주 특별한 사랑의 연대기가 담겨 있다. ‘분노하라’라는 강력한 슬로건과 레지스탕스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스테판 에셀의 인간적인 매력, 그리고 『분노하라』가 불러일으킨 세계적인 돌풍 이후, 스테판 에셀이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 마지막 자서전에 응축되어 있다. “그는 체 게바라도, 마르크스도, 부르디외도 아니었다. 그저 행복에 대한 취향과 정의에 대한 각별한 신념을 가진 콧구멍에서 늘 흥이 넘쳐나는 한 은퇴한 외교관이었을 뿐. 전 세계가 그를 에워싸고 그의 말을 들으며 열광했던 것은 그 말 속에 새로움이 담겨 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삶이 뿜어내는 생명력과 환희에 넘치는 기운이 모두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매혹의 화신이었다. 에셀은 손끝까지 저려오는 충만한 개인의 행복이 끊임없는 패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활동가의 삶과 얼마나 조화롭게 병행될 수 있는 것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포근한 위로를 전하는 것은 바로 삶과 투쟁이 화해할 수 있게 해준 그의 한 세기의 삶이 모두에게 한없이 큰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이다.”_목수정, ‘역자 서문’ 중에서 “사랑을 사랑하라, 감탄에 감탄하라!” 스테판 에셀, 콧구멍에서 흥이 넘쳐나는 한 매혹적인 투사의 일대기 에셀은 한 인간이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진정 100% 청년으로 살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의 1세기에 가까운, 충만하고도 활력으로 가득하던 삶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00살까지 산 레비스트로스나 얼마 전에 죽은 대처가 오히려 그들의 죽음이 그들이 한때 살아 있었음을 알렸다면, 에셀은 94세에 발표한 이 책이 하나의 증거물이듯, 죽음을 앞둔 그 마지막 호흡까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눈 삶이었다. 지식의 감옥에 갇히거나 안온한 노년의 평화 속에 주저앉지 말고 참여하는 것, 맹렬히 세상을 움직이는 노를 젓는 하나의 손이 되는 것, 우리가 믿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그가 한 세기를 줄곧 청년으로 살아낸 첫번째 비법이라면, 또하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책에는 그간 그의 사상과 행보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어머니 헬렌 그룬트는 남편 프란츠 에셀을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훗날 영화 <쥘 앤 짐>의 원작자가 된 소설가 앙리피에르 로셰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앙리피에르 로셰를 질투했던가? 내 어머니는 그의 아이를 갖길 필사적으로 원했고, 만일 아이가 생겼다면 나와 내 형을 두고 또다른 사랑을 완전하게 체험하기 위해 떠나갔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두 아이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품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보다 더 절대적인 열정을 위해 두 아이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다, 나는 질투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누는 사랑을 곧바로 지지했다. 어머니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보호할 것이며 그들의 계획이 실패한다 해도 어머니의 연인 또한 내게 소중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다.” _「사랑을 사랑하라, 감탄에 감탄하라」 중에서 그는 세인의 시선으로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자유분방한 사랑을 지켜보며 독점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는 사랑을 배웠다. 스테판 에셀에게 ‘사랑’은 쉽사리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가 열일곱 살 때, 서른네 살 난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연인관계로 지내며 “아직 성을 경험하지 않은 17세 소년이 여성의 몸에 대해 꿈꾸는 모든 비밀”을 깨우치게 된 일, 또한 제2차세계대전 중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모른 체해주었고, 아내가 그 관계를 정리한 이후에는 오히려 그 남자와 진한 우정을 나눈 이야기, 삼십대 초반에 만난 한 여인과 평생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었고 일흔이 넘어 아내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 여인과 재혼한 이야기 등, 에셀의 기이하고도 비범한 사랑의 여정은 어쩌면 그 어머니로부터 기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극단적인 제약이 가해진 전쟁중에도, 스테판 에셀은 아주 특별한 사랑을 체험한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제2차세계대전 중에 프랑스에 아직 남아 있던 유대인들을 미국으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던 한 미국인 남성과 동성애를 경험한 것이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아낸 이 자유롭고 인간적인 혁명가는 더이상 숨길 것도, 거칠 것도 없다는 듯 자신의 인생에 깃든, 경계를 가로지르는 각양각색 사랑의 역사를 회고한다. 그리고 “질투하지 않는 사랑의 방법을 체득하고 모든 사랑의 모험에 주저 없이 나섰던” 이 경쾌한 젊은이는 훗날 사람들의 사랑과 행복을 가로막고 경계 짓는 모든 것들에 맞서 싸우는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누리는 그 행복을 네 주변의 모든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