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권을 규정하는 새로운 양식
디아스포라 개념의 출발과 적용 및 확장”
21세기적 화두 ‘디아스포라’의 모든 것
학술, 언론, 정치 분야뿐 아니라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도 자주 입에 오르내리게 된 디아스포라. 그러나 이산離散(흩어져 헤어짐) 또는 이주移駐(옮겨 머뭄)로 번역되는 이 말의 유래와 적용 대상 및 범위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펴내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의 <Diaspora>를 번역한 이 책은, 디아스포라가 어디에서 나왔고,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으며, 왜 최근에 극적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졌는지, 특정한 정치적·문화적 표현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 그리고 인간 이주의 본질을 어떤 식으로 모호하게 혹은 명확하게 드러내는지… 21세기 국가주권을 규정하는 새로운 양식으로서 디아스포라 개념의 출발과 적용을 해설하는 충실한 안내서로서 부족함이 없다.
디아스포라를 알아야 하는 이유
최근까지도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의 추방과 이산을 가리키는 특수하고 제한된 용어였다. 20세기 들어 디아스포라의 의미는 아르메니아인이나 아프리카인들이 겪은 강제이주로까지 확장되었다. 1980년대 무렵부터는 모든 종류의 이주를 뜻하게 되면서 그 외연이 급격히 넓어졌다. 그러나 학계는 물론이고 대중들 사이에서도 유행어가 된 이 말은 듣기에도 그럴듯하고 발음도 멋져서 별 실체도 없는 주장을 포장하기에 딱 좋다. 그 의미를 충분히 숙고하면서 쓰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 될 테고, 숙고하고 쓰더라도 동질화나 과도한 단순화에 빠지기 쉽다. 디아스포라를 너무 엄격하게 정의해도 문제지만, 한정짓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한다. 디아스포라는 그것을 측정 가능한 사회적 실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주가 만들어 낸 세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개념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디아스포라는 분명 우리 세계를 깊이 있게 통찰하도록 도와주는 개념이지만,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심각한 왜곡을 낳는 개념이기도 하다.
세계화와 디아스포라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디아스포라는 ‘세계화’로 이야기되는 이주가 만들어 낸 우리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디아스포라 개념은 그 자체로도 강력하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한다.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는 활발하게 국내외 이주가 벌어진 결과,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급속도로 대규모의 도시화가 일어났다. 2012년 기준, 도시 인구가 1천만 명을 넘는 세계의 초거대도시 열일곱 군데 중 열한 개가 아시아에 있다. 이 거대한 코스모폴리탄 도시들은 디아스포라 상태에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이 머물고 방문하는 곳이다. 세계화는 단지 상품의 글로벌한 이동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자발적 ? 비자발적 디아스포라들이 각국을 옮겨 다니면서 이중국적 등 다양한 시민권 제도를 포함하여 국가주권을 규정하는 새로운 양식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짧지만 강력한 해설서 겸 활용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디아스포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쓰임새를 갖는다. 하나는 민족주의를 떠받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이다. 전자는 차이를 없애고 동질화하며, 후자는 인간의 여러 가지 경험을 분석하고 구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대 디아스포라를 구성하는 3가지 측면, 즉 ‘이동movement’ / ‘관계connectivity’ / ‘귀환return’에 기반해 디아스포라 개념을 효과적으로 조명한다.
디아스포라는 또한, 음악과 문학작품 등 위대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 중요한 촉매제이기도 하다. 납치와 유랑, 구출과 구원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디아스포라이다. 위대한 레게 스타 밥 말리와 ‘라스타파리’의 만남이 그 예이다. 단순한 착취의 서사를 넘어, 통합과 해방의 근원을 제공하는 디아스포라 개념의 매력과 저력이 이 한 권의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