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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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사라지고 경악만 남은 지구 위, 아무리 삶의 궤도를 계획해 보아도 그들은 폭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추앙받는 소설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이라는 찬사를 받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두 번째 단편집 『살인 창녀들』은 1999년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상으로 중남미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로베르토 볼라뇨가 2001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살인 창녀들』에 담긴 13개의 단편들은 <폭력>이라는 주제를, 불분명하고 허무한 세계와 화자를 통해 이야기하며, 그 화자들을 다른 작품들 속에 옮겨 놓아 끊임없이 살아 숨 쉬게 만듦으로써 볼라뇨 문학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폭력의 온상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 『살인 창녀들』은 로베르토 볼라뇨가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폭력>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작품이다. 폭력에 맞서지 못했던 사람들, 도망치려고 해봐도 점차로 폭력에 물들고, 끝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13개의 사연들은 기괴하다. 폭력에 물든 나라를 떠나온 「오호 실바」 속 인물은 도망쳐 온 도피처가 오히려 폭력의 온상임을 깨닫고 끝내 구원받지 못한다. 부자(父子)의 평온한 휴가 풍경으로 시작하여 술집에서의 싸움으로 끝나는 「지상 최후의 일몰」 속 배경 또한 폭력으로밖에 점철될 수 없는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살인 창녀들」에서는 한 남자를 납치하고 살해하는 여자의 알 수 없는 행동을 통해, 정치와 집단이 얼마나 광기에 물들어 있고 또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불분명함과 허무함, 그야말로 완벽함 이 작품의 몇몇 단편들의 특성 중 하나는 끊임없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양상이다. 특히 실존인지 허구인지 불분명한 인물들과 실재와 환상을 넘나드는 사건들은 독자들을 텍스트 이면의 끝없는 방황의 사막으로 데려다 놓는다. <바다처럼 움직이지만 흙처럼 쉽게 부서지며 경이롭고 고독한> 녹색 광선이 허공에 걸린 「고메스팔라시오」 속 세계, 이름을 떠올려 봤자 <성냥처럼 잠깐 반짝이고> 마는 앙리 르페브르라는 작가, 마법과도 같은 피의 의식을 통해 1970년대 좌절의 시기를 겪었던 바르셀로나를 환희의 기억으로 뒤바꾼 「부바」 속 세계 등, 볼라뇨는 분명한 것들을 끊임없이 헐어 무너뜨려 불분명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무너져 내리는 세계 속에서 헤매는 모든 존재는 맹목적인 방황을 통해 고유의 성질을 띠게 되고 나아가 그 자체로 완벽해진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뻗어나가는 상호 텍스트성 그의 대표작 『2666』에 등장한 랄로 쿠라라는 인물이 이름 그대로(La locura는 광기를 의미한다) 타고난 광기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담은 단편 「랄로 쿠라의 원형」은 『2666』과 연결되며 섬뜩한 예감을 자아낸다. 또 다른 단편인 「사진들」에는 그의 다른 작품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등장하는 벨라노가 등장한다. 한 문장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중첩은 죽음 또는 불멸의 메시지를 남기고, 더 나아가 볼라뇨의 삶까지 상기시키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등장인물들이 여러 작품을 넘나들며 작품과 작품은 교차적으로 통합되고, 다양한 인물들의 서술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지류를 뻗어 가는 것이야 말로 볼라뇨 작품의 큰 특성이다. 삶의 폐부를 찌르는 문학, 그와 맞서 싸우는 용기에 관하여 성 소수자, 유령, 잊힌 작가, 망명인,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 등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볼라뇨의 메시지는 결국 문학이 비참한 인간 조건을 변모시킬 수 없다는 진실일 것이다. 13개의 단편들이 결국 폭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구원받지 못할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독자들이 『살인 창녀들』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관한 명확한 답은 없을지라도, 볼라뇨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모습은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문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볼라뇨의 용감한 최후를 떠올리게 만든다. 볼라뇨는 삶과 문학의 관계에 관해 「1978년의 나날」에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