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 아마존이 ‘세상’이 되었을 때 거대 플랫폼 기업의 그늘 아래 시들어가는 우리들의 일과 산업과 공동체에 대한 슬픈 애도사 “아마존 없이 살 수 있겠어?” 미국 소비자의 이 질문은 얼마든지 바꿔 쓸 수 있다. 쿠팡 없이 살 수 있겠어? 알리 없이 살 수 있겠어? 물론 살 수 있다. 혹시 그럴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이 기업들이 우리의 일과 경제와 정치와 심지어 우리 삶의 조건을 온통 좌우한다 해도 감수해야 하리라. 이 책은 ‘에브리씽 스토어’ ‘에브리웨어 스토어’로 불리는 거대기업 아마존이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지역적 격차를 더욱 벌리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세금을 회피하고, 정치와 민주주의마저 타락시키는 그 현장을 속속들이 파헤친 탐사 르포의 결정판이다. 심층적 취재와 함께 약자들에 대한 공감어린 필치로 미국 전 언론의 상찬을 받은 책이기도 하다. 하나의 거대 소매플랫폼 아래서 고통 받는 노동자, 소기업, 지역공동체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을 아마존판 『노마드랜드』 『힐빌리의 노래』로 읽게 한다. 아마존은 한 나라의 모든 지역, 모든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신자유주의적 재편 과정에서 압도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이 책은 점점 더 짙어가는 그 그늘에 덮인 미국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아마존의 방식을 뒤따르고자 애쓰는 국내 기업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다. ■ 우리 삶이 ‘일괄처리’되고 있다 / ‘국가’가 된 기업 아마존 아마존은 거의 하나의 국가가 된 기업이다. 온라인 북스토어에서 시작해 거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한 아마존은 이제는 수십 개의 데이터센터들을 갖추고 클라우드와 스트리밍 시장까지 장악한 독점 기업이 되었다. ‘아마존 합중국’이라는 표현은 빈말이 아니다. 아마존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그 규모와 독점적 힘을 통해 경제는 물론 정치권력까지 좌우하는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아마존에 의한, 아마존을 위한, 아마존의 나라가 완성된 것이다. 이 책의 원제 『풀필먼트』(Fulfillment)는 아마존의 배송물류 시스템을 가리키는 용어로 ‘완수’ 또는 ‘일괄처리’를 뜻한다. 저자 알렉 맥길리스는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완수한다는 뜻의 ‘풀필먼트’를 통해 우리의 삶 자체가 ‘일괄처리’되고 있는 디스토피아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곳에 가면 폭삭 무너져버린 지역경제, 일자리를 잃고 물류배송 노동자로 근근이 사는 노동자들, 수십 년 가업을 포기한 중소기업, 초번영 IT 기업 도시와 쇠락해가는 지방 도시들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아마존을 탐사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마존은 한 나라 안의 심각한 격차와 분열을 살펴보는 렌즈로 삼기에 어느 기업보다 제격이다. 말 그대로 모든 곳에 존재하고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아마존은 미국을 서로 다른 종류의 지역으로 나누고 각기 다른 서열과 소득과 목적을 부여했다. 그들은 미국의 지리적 풍경뿐 아니라 기회의 풍경도 변모시켰다. 사람들의 앞에 놓인 선택지, 즉 그들이 삶에서 무엇을 꿈꿀 수 있는지가 달라진 것이다.” (23쪽) ■ 일, 주거, 정치, 공동체… / 아마존이 끼치는 갖가지 해악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마존’이라는 틀을 통해 단지 경제적 불평등에 국한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문제들이 소비자 친화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세탁되어 보통의 소비자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고, 따라서 더욱 악화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 문제들을 이렇게 짚는다. (1) 아마존 창업자와 임원들의 어마어마한 부와 훨씬 수가 많은 노동자들의 미미한 임금 사이의 대조는 신자유주의 경제와 브레이크 없는 독점 기업이 야기한 극단적 부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2) 아마존이 국가 권역을 산업적 필요에 따라 나눔으로써 초번영 도시와 낙후 지역 사이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초번영 도시는 그 도시들대로 젠트리피케이션과 주거비 앙등으로 계급적, 인종적 분리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고, 낙후된 지역은 아마존 물류센터와 데이터센터가 몰락한 산업을 대체하여 지역을 더욱 황폐화하고 있다. (3) 아마존의 다수 종업원이 수행하는 작업은 과거의 숙련되고 보람된 노동의 가치를 더 이상 제공하지 못하는 단순하고 고립된 저임금 노동으로 추락했으며, 일회성 소모품이 된 노동자들은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4) 또한 아마존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에서 선거 자금, 회전문 인사, 로비 등을 통해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금이나 공공구매를 담당하는 이해상충 공무원들을 스카웃하는 등 이제는 기업 자체가 정치권력의 주요 세력이 되어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 (5) 아마존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해체되고 시민적 유대가 와해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아마존이 지역 사회의 조세 기반을 잠식하면서, 사회 인프라와 공공 서비스를 지원하는 지방정부 여력이 고갈되고 있고, 지역 자치와 시민 연대가 약화되고 있다. (6) 마지막으로 아마존은 우리가 소비하는 방식, 즉 우리 스스로를 부양하고 충족시키는 방식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우리의 일상적 삶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변모시키고 있다. ■ 독점은 반드시 부도덕으로 이어진다 / 아마존 독점의 구체적 결과들 이 책은 아마존이 끼치는 해악을 몇 가지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더 찬탄할 만한 점은, 아마존으로 인해 개인적 삶의 몰락을 겪는 노동자와 지역주민과 자영업자의 생생한 스토리를 통해 이 문제들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노마드랜드』 『힐빌리의 노래』의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이 단지 딱딱한 사회과학 책에 머물지 않고 폭넓은 공감을 얻는 이유다. 추락한 노동자의 삶 :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은 아마존 등으로 인한 산업구조 재편 이후 수많은 미국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마존 공급용 골판지 상자를 끝없이 만드는 노동자(2장), 브레이크도 없는 지게차를 몰다 사망사고를 당한 물류센터 노동자(139쪽 이하), 파산한 철강 공장 자리에 들어선 물류센터에 고용된 전직 철강 노동자(197쪽 이하)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통 산업의 몰락과 함께 아마존에 흘러들어온 이들 노동자는 형편없는 저임금과 위험을 감수하고 일한다. 저자는 아마존이 노동의 존엄한 가치를 생존에 급급한 저질의 노동으로 바꾸었고, 거기서 발생하는 위험 비용을 공공에 전가하고 있는 현실을 가차없이 고발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에서 쿠팡 물류센터의 밤샘 작업과 새벽배송 끝에 과로사한 노동자, 화재사고에서 숨진 소방관을 대비시켜 보게 된다. 지리적 불평등과 공동체의 해체 : 저자는 아마존이 심지어 ‘미국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존은 인구가 많은 주에서 일어나는 판매세를 회피하고 정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애틀, 워싱턴 DC에 본사 위치를 정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반면, 나머지 낙후 지역에서는 물류센터 유치 및 고용증대를 내세워 지방정부들에서 거액의 조세 혜택을 얻어냄으로써 지역을 더욱 피폐화한다. 나아가 아마존으로 인한 지리적 재편은 본사가 위치한 초번영 도시에서도 주거비 앙등, 교통체증, 계급적/인종적 분리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한다. 로컬 기업의 몰락 : 아마존의 저가 공세와 공공부문의 구매 독점은 탄탄한 로컬 기업들마저 파산과 폐업으로 내몰고 있다. 텍사스주 엘파소의 로컬 기업들이 벌이는 분투(220쪽 이하)와 훌륭한 고객/직원 정책으로 신뢰를 받던 백화점 봉통의 사례(358쪽, 381쪽 이하)가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또한 자사 사이트에 입점한 제3자 판매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