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잠으로 빠져들어가는 내 희미한 의식의 한쪽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수많은 가족이 어디엔가 살아있지만 다시 못 보는 상황에 닥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승과 저승의 삶의 갈림길에 나뉘어야 했던 비극의 서막,
1950년 6월 25일의 아침이었다.
"사단장님! 북한군이 밀고 내려옵니다! 개성은…… 이미 뺏겼습니다."
머릿속 어딘가서부터 내가 신당동 집의 대문을 나서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참혹한 6?25는 그렇게 내 앞에 다가왔다.
"전쟁이 터졌다. 전선으로 함께 가자!"
- 파란 심장을 가졌던 그들,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의 전투를 기억하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따스한 인정이 넘치던 한반도는 차갑게 식어버린 파란 심장만이 존재할 뿐이다. 누구도 다른 생각할 것 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내가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는 전투에서 과거의 형제와 민족을 고려할 시간도 없었다. 6·25 발발부터 다부동전투, 인천상륙작전, 서울 수복, 운산전투, 1·4 후퇴, 그리고 반격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임했던 크고 작은 전투들이 당시 국군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의 회고를 통해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전쟁, 그것을 좌우하는 별들과 전쟁 기술을 기억하다
한국전쟁은 단순히 한반도의 한민족 간의 내전이 아닌 국제전쟁이었다. 당시 열악했던 국군의 전투 기술과 무기에 비해 한국전쟁 초반 강력한 화력을 앞세운 인민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며 우회와 매복, 기습에 능한 중공군의 공격은 거셌다. 국군을 위해 나선 미군과 연합군의 막강 화력, 우수한 전쟁 무기, 치밀한 전술 계획 등은 단순 도움이나 보조 이상의 큰 역할을 해줬다. 포탄 속에서도 꼿꼿이 몸을 숙이지 않았던 용맹함과 지략의 더글러스 맥아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던 순양함급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 이성적이며 정치적인 매튜 리지웨이 등 장군들과 함께 하는 승패에서 우리 군은 '전쟁의 기술'을 몸으로 익혔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하나님, 이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흉터, 인간의 전쟁을 기억하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수많은 가족의 이별을, 수많은 청년의 꿈을 대가로 요구한다. 60년이 지난지금도 한국전쟁이 국가에, 국토에, 가정에, 개인에 남긴 흉터가 아픈 기억과 함께 남아있다. 어린 자식을 등에 업고, 손에 끌며 고향을 등졌던 어머니,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남편을 포탄이 넘나드는 곳으로 보냈던 부인, 아무것도 모르고 펜 잡을 손으로 총을 들었던 학도병, 매캐한 담배연기를 마시며 내려오는 적군을 맞이했던 군인. 이 모든 이의 마음속은 모두 같았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깐. '왜 전쟁을 해야 할까. 나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전쟁은 끝날 수 있을까.' 인민군, 중공군도 아닌 끝이 없는 암흑 속을 걸어가는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이들을 정복했을 것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두려움에 맞섰던 선대의 숭고한 희생, 그 상처 많은 사람들의 전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의 회고록은 이 한 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와 남겨야 할 이야기가 더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