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멜랑콜리

이기성 · Poem
100p
Where to buy
content
Rate
2.5
Average Rating
(3)
Comment
More

슬픔으로 얼룩진 삶의 장면들을 감각적 이미지와 깊이 있는 감성의 언어로 묘사해온 현대문학상 수상 시인 이기성의 『감자의 멜랑콜리』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폭력과 광기가 뒤섞인 시대의 그늘진 이면을 꿰뚫어 보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고 시대의 불행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깊은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분노와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다정한 결기와 기품”(김경후, 추천사)이 깃든 견결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현실의 고통에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이를 기억하고 새기려는 단단한 결의가 드러나는 시편들에서 시인이 우리의 삶과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예기치 못한 비극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한복판에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타인의 슬픔을 헤아릴 때 비로소 피어나는 희망을 아는 그의 시적 화자들은 이번 시집에서도 그 힘을 발휘한다.

Author/Translator

Comment

1

Table of Contents

제1부 너 종이 빵 기도 벽 종이 불행 상자 종이 창고 저수지 눈송이 불행 제2부 재단사의 노래 흑백사진 사탕 공장 고기 수치 싱크홀 눈의 아이 재단사의 노래 눈의 아이 흑백사진 식인의 세계 구두 불행 식탁 애도라는 외투 제3부 거미 여인 시인 한 시에 남아 있는 것 시인의 죽음 종이 낭독 천사에게 단식 한 사람 공회전 사탕 개를 모르는 여름의 불행 제4부 감자의 멜랑콜리 창고 전향 망각 아들들 우리 모두의 애도 편지 빵 전향 들판의 상자 속에는 청춘 불행 작별 해설|서영인 시인의 말

Description

“세상은 살짝 구겨진 은박지처럼 선명하고 눈이 부시다” 흐려진 존재들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다정한 숨결 부서지고 춤추고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한 희망의 노래 슬픔으로 얼룩진 삶의 장면들을 감각적 이미지와 깊이 있는 감성의 언어로 묘사해온 현대문학상 수상 시인 이기성의 『감자의 멜랑콜리』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폭력과 광기가 뒤섞인 시대의 그늘진 이면을 꿰뚫어 보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고 시대의 불행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깊은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분노와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다정한 결기와 기품”(김경후, 추천사)이 깃든 견결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현실의 고통에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이를 기억하고 새기려는 단단한 결의가 드러나는 시편들에서 시인이 우리의 삶과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예기치 못한 비극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한복판에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타인의 슬픔을 헤아릴 때 비로소 피어나는 희망을 아는 그의 시적 화자들은 이번 시집에서도 그 힘을 발휘한다. “어떤 노래는 하얀 실처럼 끝없이 흐르고“ 이기성의 시는 불행한 시대와 “새의 발가락처럼 검게 오그라든 영혼”(「창고」)을 위한 “희고 검은 애도의 노래”(추천사)이자 “희미한 근대의 냄새를 환기”하는 “검게 탄 입술의 노래”(「흑백사진」)이다. 이는 망가진 삶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성찰하여 이윽고 투명한 감각으로 발화하는 목소리로 나타난다. 안온한 풍경의 이면에 주목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도시의 아픈 과거를 발굴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것은 단지 기억의 환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이런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는 걸/너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시인은 간절한 심정으로 쓴다, “마지막 남은 손이 사라지기 전에”(「편지」). 망각의 기억 속에서 지난날의 슬픔과 상처를 끄집어내어 삶의 비애와 불의한 시대의 실상을 온전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시인은 꿈인 듯 현실인 듯 “검은 외투를 입은” 한 청년이 “검은 법전을 끼고 평화시장 쪽으로 걸어가는”(「눈의 아이」) 모습을 본다. “검은 밤에 잠긴 흐릿한 얼굴”들을 기억하고 “입안 가득한/재의 맛”(「재단사의 노래」)을 감각하는 한, 전태일은 단지 역사적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비참한 현실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시인이 불러내는 전태일은 비단 ‘1970년의 전태일’일 뿐 아니라 “커다란 접시를 들고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빵」), “빌딩 옥상 망루의 농성자”(「싱크홀」), “맨발로 사라진 아이를 찾아서” 울며 헤매는 “도청 앞 누더기를 입은 늙은 여인”(「구두」) 같은 또다른 ‘전태일들’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고통과 상처를 망각한 채 “어떤 슬픔도 없이” 그저 ”조용히 먹는 일에 열중”(「식인의 세계」)하는 인간의 모습에 수치를 느끼며 시인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인간이?”(「고기」) 울부짖는다. 그리하여 시인은 앞장서 고통의 한복판을 지나는 영혼들을 품기 위해 시를 쓴다. “시간의 앞면과 뒷면을 마주 보게 하고 어제의 얼굴과 햇빛과 오늘의 이야기를 이어서” “애도라는 외투”(「애도라는 외투」)를 짓는다. 흩어진 삶의 조각을 한땀한땀 연결하는 바늘이 되어 상실과 망각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인은 오늘의 현실에 드리워진 잿빛 “불행의 얼굴”(「불행」)을 냉철히 직시한다. 먼지처럼 쓸쓸히 스러져간 존재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오래 생각”(「창고」)하고, 고통의 세월이 흘러도 남아 있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애도는 늘 불완전하고 “애도의 매끈한 표면 아래 남아 있는 울퉁불퉁한 것들을 더 의식할 수밖에”(서영인, 해설) 없지만 그 거친 얼굴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 영혼의 순수한 본질을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아직은 “우리에게 무언가 남아 있다”(「애도라는 외투」)는 가냘픈 희망을 다시 새기는 것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인은 불현듯 “시인의 죽음”과 “시인이 없는 세상”(「시인의 죽음」)”을 말하지만 불행한 시대일수록 “회색 먼지와 재로 뒤덮인/오래된 종이”(「거미 여인」)에 시를 적는 시인의 존재는 선명하게 반짝인다. “손때 묻고 더러운 빈 종이, 그런 시를 들고 나는 영원히 한 시를 떠나지 못한다”(「한 시에 남아 있는 것」)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가 있다.”(시인의 말) 그 노래가 세상의 “어두운 골목 저편”에서 울려 퍼질 때, 선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영혼처럼 환한 빛”(「천사에게」)이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를 것이다.

Collections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