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언어의 영구 혁명이 발하는 광휘 속에서 권력-바깥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이 이로운 속임수, 말하자면 슬쩍 따돌리는 동작, 그 멋진 술책을 저는 제 방식대로 문학이라 부릅니다.” 프랑스 기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콜레주드프랑스 취임 연설 「강의」, 그리고 바르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자크 데리다가 발표한 애도의 글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을 묶은 책 『강의∣롤랑 바르트의 죽음들』(김예령 옮김)이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하나는 바르트의 시작을, 다른 하나는 바르트의 끝을 계기로 쓰인 두 텍스트는 바르트의 사유가 이동해온 궤적을 짚어본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바르트는 지적 활동 초기엔 구조주의에 전념했으나, 텍스트 분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도기를 거쳐 후기에 이르러서는 환원적 체계에 대항하며 기호들의 유희에 뛰어드는 사상적 전환을 이룬다. 이 같은 이동 작업은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에서 그의 책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인용하는 데리다에 의해 조명되기도 한다. 간결하고도 깊이 있는 두 텍스트 속에서 이러한 교차점을 읽어내는 일은 바르트와 데리다가 나눈 학문적 우정을 가늠하게 할 뿐만 아니라, 바르트와 데리다를 서로 다른 각도로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강의」: 언어의 유토피아들을 향해 따라서 이동한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지 않는 곳으로 가는 일, 혹은 한층 더 급진적으로 표현하자면, 부화뇌동하는 권력이 자신이 전에 쓴 것을 이용하고 예속시키는 경우 그것을 공식적으로 버리는 일. (p. 34) 「강의」는 1977년 1월 7일 롤랑 바르트가 콜레주드프랑스의 문학기호학 교수직에 부임해 첫 개강을 맞아 발표한 강연문이다. 바르트의 콜레주드프랑스 부임은 학자와 학생, 일반 청중과 기자 들로 첫날 강의실을 가득 채울 만큼 큰 관심을 모았으며, 그 열기는 바르트가 1980년까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진행한 세 강의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중성’ ‘소설의 준비’로도 이어졌다.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요약·정리하고 콜레주드프랑스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된 이 강연문에서 그는 언어가 말하도록 강제하고 의미를 고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파시스트적”(p. 20)이라는 논쟁적 발언을 던진다. 그만큼 20세기 프랑스 지식 사회의 주요 쟁점이었던 언어와 권력 간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진짜 투쟁”은 권력‘들’에 대항하는 데 있다고 역설하며, 언어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만큼 언어를 속이는 술책으로서 문학을 상정한다. 1530년 설립되어 창립 초기부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교육을 지향해온 콜레주드프랑스는 권력 바깥에 놓이는 특권적 장소로 여겨진다. 이곳의 강단에 서기 위해서는 한림원과 콜레주드프랑스 소속 교수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바르트는 1970년부터 콜레주드프랑스에 재직 중이던 미셸 푸코의 추천을 받았다. 그런데 이는 당시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결핵으로 인해 “공식 학위를 갖”지 못했던 데다, 고전문학과 수사학을 비롯해 언어학, 기호학 등 동시대의 여러 이론을 횡단하며 전통적 제도 바깥에서 글쓰기를 실천했던 바르트의 스타일은 제도 비평계와 대학 강단의 의구심을 불러왔다. 이 같은 긴장 속에서 제출된 「강의」는 ‘에세이만 쓰는 이,’ 모호한 자, 어느 장소나 체계에서든 미묘하게 흔들리는 주체로서 바르트가 조성하는 물음표의 작고 부드러운 저항력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 바르트는 언어의 해방 공간, 유토피아를 어떻게 창안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인간이 언어 바깥으로 완전히 나갈 수 없다면, 반대로 욕망의 개별성과 다수성에 따라 무수히 뻗어나가고 움직이는 말들의 공간, 언어의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언어체의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언어체로 회수”(p. 32)된다는 바르트의 지적처럼, 권력에 대항하는 시도는 곧 권력에 의해 포섭되기 마련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에게는 고집스럽게 스스로를 이동시키는 일, 자신의 시도가 권력에 이용당한다면 그것을 버리는 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권력과 제도 바깥에 놓이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며, 따라서 바르트는 말한다. “저는 이 같은 강의를 시작할 때는 늘 기꺼이 환상에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진실되게 믿고 있습니다.”(p. 52) 1977년에서 1980년까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바르트의 ‘강의’를 수강한 청중은 이처럼 유토피아로 부단히 이동하는 현장에 가담한 셈이다.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세상을 떠난 친구와 나누는 무한한 대화의 약속, 애도 이 책의 두번째 텍스트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은 롤랑 바르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1년 자크 데리다가 『포에티크』지에 발표한 애도의 글이다. 바르트를 향한 애도의 글을 시작으로 데리다는 20여 년간 미셸 푸코, 에마뉘엘 레비나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모리스 블랑쇼 등 학문적으로 교류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다양한 형식으로 작별 인사를 쓰게 된다. 이 애도의 글들은 우정과 애도, 타자성이라는 데리다 철학의 테마를 보여주는데, 이 글들을 한데 묶은 책의 프랑스어판 제목 ‘매번 유일한, 세계의 끝’이 나타내듯 데리다에게 친구의 죽음은 한 명 한 명이 전적으로 유일하며 대체 불가능한 타자들이라는 점에서 매번 세계 전체가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도가 점진적 작업을 통해 천천히 고통을 지운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지금도 믿지 못한다”라는 『밝은 방』의 인용문과 공명하듯, 데리다는 이 글에서 주체의 기억을 통해 타자의 타자성을 제거하는 보통의 애도 작업을 문제 삼는다. 애도 작업에서 산 자들은 죽은 자를 배신할 수밖에 없다. 죽은 자는 산 자들 각자의 일방적인 기억으로 정리되면서 한 번 더 죽는다. 이 같은 통상적 애도 작업에 데리다는 저항하면서도, 침묵을 지키기보다는 바르트에 대해 쓰는 편을 택한다. “달리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유일한 것을 복수화하지 않고서, 그가 지닌 가장 대체 불가한 것, 즉 그 자신의 죽음까지도 일반화하지 않고서.”(p. 119)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친구가 육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도록, 데리다는 대신 바르트의 책들을 펼쳐 든다. 이렇듯 바르트의 육체를 바르트의 책으로 전환하고 확산할 수 있게 하는 힘으로서 환유에 주목하는 데리다의 시선은, 우리에게 타자 중심적 애도의 가능성을 탐색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에서 데리다는 죽은 자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산 자의 전횡을 저지하며, 친구의 말에 고유의 발언권을 돌려주려는 충실한 독서를 수행한다. 그로써 미처 알아채지 못한 바르트 사유의 세부 연관 원리를 분간하고, 바르트의 미묘한 음정들을 식별할 수 있다. 바르트의 말이 데리다의 사유에 실려 돌아올 때, 남은 자의 생각과 죽은 자의 인용이 대화처럼 교차할 때, 그 독법은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 우정이 둘의 사유를 하나의 선으로 잇고 나누는 광경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