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다닌다.
사람들은 나를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될 생각은 없다.
나는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간략한 소개
책으로 출간되는 장애인 이야기는 대개 희망과 용기,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표방한다. 이 책의 저자 김원영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한 편의 ‘인간 승리의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지내다가 재활학교를 거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고, 나아가 비장애인도 가기 어렵다는 로스쿨에 진학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자신은 걸을 수 없는 다리, 매력적이기 어려운 외모, 가벼운 주머니를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걷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이십대 청년,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고 다른 모든 장애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장애인 김원영 개인의 삶을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객관화하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천사 같은’과 ‘병신 육갑하는’이라는 수식어 사이에서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해왔는지, 편견 가득한 시선 속에서 장애인들이 세상에 등장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신의 온몸과 전 생애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온몸으로 쓴 사회과학 에세이’다.
그러나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 비판이나 고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모든 약자, 특히 ‘88만 원 세대’라 불리는 이십대들이 정당하지 못한 것에 ‘증오’가 아니라 ‘분노’할 수 있기를, 그 뜨거움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모두가 익숙한 선택을 하는 순간에 편견을 깨는 의외의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약자들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게 해준 용기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하고자 한다. 저자가 그려 보이는 우리 사회는 분명 이기심과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얼룩져 있지만 자유로운 창조와 연대의 가능성이 꿈틀대는 희망적인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무기력한 세대라 비판받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건강함과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는 저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한 장애인의 이야기에서 편견과 싸워온 모든 약자들의 이야기, 나아가 가슴속에 뜨거운 욕망을 품고 자유를 일구어가는 우리 시대 모든 젊은이의 이야기로 점차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스물아홉 청년 김원영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이유다.
출간 의의
소년은 어떻게 청년이 되는가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던 한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저항하며 세상에 등장하는 과정을 담은 사회 비판적인 에세이지만, 그에 앞서 한 연약한 소년이 삶의 고비마다 정체성의 변화를 겪으며 한 사람의 단단한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기이다.
방 안에서 작은 창으로 학교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던 소년은 열다섯 살에 ‘장애인 등록’을 하고, 이듬해 장애인들로만 이루어진 재활 학교에 입학한다. “아빠, 여기 이상한 장애인들이 너무 많아”라며 집에 돌아가고 싶다던 소년은 ‘다음 주’에 온다는 아빠를 기다리며 점차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재활 학교에서 그는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이상한 장애인들’ 사이에 “자신을 완전히 풀어놓았다. 가족과 함께 투병 생활을 하던 ‘골형성부전증 환자’임을 잊고 휠체어에 앉은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소년은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사랑을 하고 공부를 하고 연극을” 하며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점차 인정해가지만, 곧 장애인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아가려는 꿈을 꾸게 된다. 그 길에서 장애인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새로운 장애인’을 만나 용기를 얻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비로소 ‘특수’의 세계에서 ‘일반’의 세계로 진입한 소년은 그 아찔한 높이에 좌절하지만 곧 무엇이든 잘하고 어떤 모욕에도 쿨한 ‘슈퍼 장애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슈퍼 장애인’답게 고등학교 3년을 치열하게 보내고, 그의 눈에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이제 장애인의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그냥 ‘서울대학교 학생 김원영’이 되려고 한다. “장애인 중 50퍼센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인 그는 자신의 자부심과 “꿈 앞에서 또다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본격화되던 장애인 인권 운동의 흐름은 그에게 다시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선언하며 장애인의 학교생활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줄 것을 요구한다. 그 운동의 한복판에서 많은 독서와 토론을 거치며 그는 장애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새롭게 배운다. 이전까지 그는 “삶을 극복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과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동안 타야 할 대중교통이 필요하고, 기적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이 필요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동안 먹어야 할 컵라면도 필요하다.” 꿈과 희망보다 당장 앞에 놓인 계단과 턱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했던 그는 결국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고, 이 경험을 통해 “그때야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골형성부전증 또는 장애 그 자체는 이미 내 몸이며 나 자신이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이것 자체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휘어진 다리가 곧 내 삶이다. 골형성부전증이 아닌 몸은, 더 이상 김원영이 아니다.”
이렇게 기나긴 여정 끝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 서울대 로스쿨이라는 ‘정상(正常)’ 세계의 ‘정상(頂上)’에 속한 그의 위치는 여전히 그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있다. 그에게는 “한쪽에 건강하고 열정적이며 좋은 직업과 매력적인 연인을 가진” 친구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어 집을 지키는”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 두 세계로 분열된 그의 자아는 지금 이 순간도 “서로를 부정하면서 공존하고 투쟁한다.”
아마도 이러한 분열과 혼란은 그가 평생에 걸쳐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 고민의 한가운데서 그는 여러 세계에 정체성을 걸치고 있는 존재로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긍정하며, 이질적인 것들의 종합과 초월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분노하고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소년은 이제 불안정한 정체성조차 긍정할 수 있는 단단한 청년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들어갈 집단에 애초부터 적합한 인물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부족했고, 적당하지 않았고, 그 집단과 조응할 수 없는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시작은 언제나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화해하고 상호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나는 기존의 질서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 질서가 내 몸, 내 정체성과 조응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과 외부 환경을 변화시켰다. 장애를 극복해본 적은 없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가 장애에 적응해나가는 변화를 경험했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한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생활과 이곳에서 한 공부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