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꽃향기

레일라 슬리마니
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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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진트리에서 펴낸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2016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로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에서 홀로 하룻밤을 머물러보라는 제안을 수락한다. 집을 떠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산만함보다 고독을 선호하고, 현대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가 옛 세관 건물을 개조한 미술관에 갇혀 밤을 보내야 하는 시간을 기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묘한 예술작품들과 함께 밤으로 빠져들면서 레일라 슬리마니는 예기치 않게 아버지를 떠올리고, 자신, 감금에 대한 환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실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조용하면서도 이야기꾼인 도시 베네치아처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깊고 투명한 사유가 빛나는 작품이다.

"우리가 사랑한 마법의 공간"

35주년 기념 재개봉, 극장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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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떠올린, 말하지 못한 것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침묵을 가지고 노는 것이며, 실생활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뮤진트리에서 출간하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는 프랑스 스톡 출판사의 기획 작으로, 작가가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떠오르는 사유를 글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두 주인공은 모로코-프랑스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와 베네치아의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이다. 모로코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활동하는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베니스의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보지 않겠느냐는 편집자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인들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아예 전화마저 차단해야 할 처지인데도 그런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이유는, ‘갇힌다’는 것이 주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 때문이었다. “나도 나갈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장소에 혼자만 있는 것. 의심의 여지 없이 이것은 소설가의 환상”이기에. 작가는 베네치아에 도착한 후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를 아무 말 없이 돌아다닌다. 사진을 찍거나 글감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 오래된 도시에서의 산책을 순전히 내적인 체험으로 만들고 싶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온통 환하게 밝히고 사는 세상과는 딴판인, 베네치아의 어두운 골목길들을 걸어 미술관에 당도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이 거대한 건물에서 오로지 전시된 작품들만 대면하며 고독한 밤을 보낼 것이다. 그곳에서는 때마침 서른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장소와 기호’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은 베네치아의 명물이다. 17세기에 건립되어 당대 최고의 도시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모든 선박의 물품들에 관세를 징수하는 세관으로 쓰였던 건물을 20세기에 개축했다. 2007년, 베네치아 시는 약 30년간 방치되어 있던 이 건물을 재건축하기로 결정했고, 기존 건물의 높이나 넓이를 절대로 변경하지 말 것과 대리석 외벽을 그대로 유지할 것, 등의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걸고 재건축 작업을 공개입찰에 부쳤다. 자하 하디드를 내세운 구겐하임 재단과 안도 다다오를 앞세운 피노 재단이 치열한 각축을 벌였고, 세관 건물은 전통을 살리고자 한 안도 다다오의 세심한 감각으로 재탄생해 다양한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멋진 미술관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아랍 문화 속에서 성장한 레일라 슬리마니에게 미술관은 서양문화의 발산물, 그녀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코드를 가진 엘리트주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미술에, 특히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더더욱 아는 바가 없는 작가는 오늘 밤 이 특별한 미술관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조금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이 밤의 특별한 상황은 레일라 슬리마니에게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성찰과 자서전적 성찰을 촉발하고, 평소 잘 생각하지 않는 아버지 오스만 슬리마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모로코에서 정치금융 스캔들에 휘말려 투옥되어 가족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드리웠고, 석방 후에 무죄로 판명되었으나 그로 인해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분이다. 이제 예술작품들과 함께 베네치아의 미묘한 밤으로 빠져드는 작가는 자기 자신, 감금에 대한 환상, 정체성,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의 인식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고독을 선호하는, 내성적인 작가가 모로코에서 보낸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관한 못다한 이야기를, 창작자로서의 삶과 글씨기의 절박함을 털어놓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듯하다. 텅 빈 미술관에서 슬리마니는 예술과 문학 사이의 다리를 만들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명쾌하고 시적인 상념을 꿈 같은 분위기로 전달한다. 특히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오늘 밤, 특별한 도시에 있는 이 미술관에 자발적으로 감금되어, 오래전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한 이유를 고백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해 썼으며, 그들의 영혼 속으로 최대한 깊이 헤엄쳐 내려갔다. 나는 내 내면의 목소리와 음악, 내 머릿속을 통과하는 단어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내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웠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욕당한 사람들을 구해내고 싶어서 글을 썼다.” _ 118p 80년대까지만 해도 라바트에는 미술관이 아예 없었고 연극을 볼 기회도 극히 적어서 그저 책 속으로만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의 단편들, 여성들은 자유롭게 이동조차 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착한 소녀’가 되고 싶지 않아 밤이면 남몰래 집을 빠져나가 외부를 정복하고자 했던 욕구, 파리로 이주한 후 아랍과 서양의 중간에서 양쪽으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긴장감, 그리고 자신을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아버지에 관한 기억들이 그녀의 내면에서 솟아오른다. 동시에, 라바트의 집 마당에 가득 퍼지던 강렬한 꽃향기가 한밤중의 미술관으로 스며든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를 발견하는 일이다.” 짧지만 꽉 찬 이 책에서 슬리마니는 오랫동안 다져온 문학에 대한 깊은 성찰을 펼쳐낸다. 그녀의 예술적 감수성은 매번 문학적으로 확장되고, 그녀의 감각은 그녀를 삶의 본령인 글쓰기로 되돌려 놓는다. 지극히 고독한 직업이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자유의 공간인 글쓰기는 레일라 슬리마니에게 본능적인 것이다. 그녀는 때때로 고통스러운 명료함으로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서 무엇이 자신을 문학에 그토록 집착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슬리마니에게 글쓰기는 거의 금욕적인 탐구이자, 삶과 세상에서 스며 나오는 아로마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느린 디캔팅 같다. 그녀의 독서 목록은 그런 요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그녀는 우리에게 감성과 그 깊이가 놀라운 인상적인 텍스트를 전달한다. 이른 아침 작가는 짧지만 꿈같았던 잠에서 깨어 꿈에서처럼 미술관을 떠나고, 그날 밤은 꽃향기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덕택에 우리는 이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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