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백 년 전, 백화점의 ‘하드웨어’, 근육이 아닌, ‘소프트웨어’, 살과 피에 관한 이야기! 1층부터 5층까지 끝없이 들고나는 온갖 물품들을 통해 만나는 백화점, 그리고 이 땅에 당도한 낯선 문명의 구체적 일상사 1920~30년대 경성의 백화점에 관한 책『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는 백화점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백화점에 관한 책이 아니다. 얼핏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설명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백화점의 역사와 그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전면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면 백화점이 주인공이 아니지만, 각 층을 채우는 매우 구체적인 상품을 전면으로 내세워 백화점을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백화점 그 자체의 이야기다. 말하자면 바깥에서 바라보는 백화점,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백화점의 역할과 의미에 주목한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이 책은 철저히 백화점 안에서 당시 일반 대중들과 맞닿아 있던 매우 구체적인 상품들을 통해 백화점을 바라본다. 이런 시도를 통해 독자들이 만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백 년 전 그 시절 사람들이 만난 구체적인 물건들에 관한 박물지이며, 그다음은 낯설고 신기한 문물의 도래기이며, 그다음은 생생하게 드러나는 소비와 유행의 생성과 그 전파 과정이며 마침내는 매우 이전에 볼 수 없던 서양 문명을 일상 속으로 받아들인 시대의 구체적 풍경화다. 백 년 전 백화점 창업을 꿈꾼 실제 한 청년 사업가의 경성 백화점 순례기로 시작하는 프롤로그, 당시 백화점들의 팸플릿을 통해 구축한 판매 상품 목록, 그 시대의 온갖 흔적을 뒤져 찾아낸 그 시대 백화점을 채운 물건들 새로운 문명의 바로미터, 시대의 유행을 선도한 최고의 유행 상품들! 책의 시작은 백 년 전 한 청년 사업가의 눈으로 시작한다. 1930년대 잡지 『삼천리』에 실린 대구 청년 사업가 이근무의 백화점 순례기에 몸을 실은 저자는 그의 눈을 빌어 경성의 5대 백화점인 미쓰코시, 히라타, 조지야, 미나카이, 화신 등을 돌아봄으로써 책의 포문을 연다. 이런 시도를 통해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오늘날 서울 명동의 옛 거리 한복판으로 소환하고, 그 거리 한복판에 선 독자들은 눈앞에 성큼 등장한 백 년 전 백화점의 정문을 밀고 들어가 ‘1층 식품부와 생활잡화부’를 거쳐 ‘2층 화장품부와 양품잡화부’, ‘3층 양복부’, ‘4층 귀금속부와 완구부, 주방용품부, 문방구부’, 그리고 ‘5층 가구부, 전기 기구부, 사진부, 악기부’를 채운 온갖 물산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펼쳐지는 백화점의 층별 품목 구성은 오늘날과 매우 흡사하여 익숙하기도 하고 바로 그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백화점의 연원이 바로 이 시대로부터라는 당연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확인케 한다. 나아가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유행의 첨단이자 바로미터라는 점에서는 오늘날과 비슷하여 우선 흥미로우며, 유행이 곧 시대를 말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러한 품목들의 열거를 통해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당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어 그 흥미는 배가된다. 책의 안내에 따라 올라가는 층별마다 당시 각광을 받거나 시대를 풍미한 품목들이 빼곡하다. 이 책이 단지 품목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는 장점은 빛을 발한다. 다양한 품목들은 때로 장안의 화제를 이끌기도 했으며, 지나친 소비 풍조로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빈부와 세대의 차를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품목마다 펼쳐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서술된다. 이 이야기들은 때로는 그 물건을 발명하고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산업으로 발전, 확장한 이면이기도 하며, 이 물건들이 일으킨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백화점을 채운 온갖 것들의 이야기, 무려 130여 개의 물건들, 무려 700여 장의 이미지 서양과 동양, 경성과 도쿄, 신문과 잡지, 광고와 그림, 포스터를 넘나든 자료의 집성이자 향연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백화점의 상품 목록은 어림잡아 무려 130여 개다. 책의 차례에 드러나지 않는 또다른 세부 품목을 헤아리면 끝도 없다. 상품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상품은 물론 그 상품의 연원과 이름의 유래, 서양과 동양, 도쿄와 경성의 유입 과정, 서로 같고도 다른 소비의 패턴 등까지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를 위해 동원한 이미지는 약 700여 장이다. 당대의 신문과 잡지의 기사와 상품 광고의 이미지가 총출동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물건들의 연원이 대체로 서양에서 온 것, 일본을 경유하여 온 것이라는 점에 착안, 이 땅에 도착하기 전 그 땅에서 어떻게 그려졌는지까지를 샅샅이 뒤져 찾아 보탰다. 이로써 이 책은 우리의 백 년 전 시대 풍경을 담은 책인 동시에 그 시대 그 물건들의 연원까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고, 하나의 물건이 어떻게 대륙을 오고가며 유입되고 전파되며 확장하고 나아가 변형에 이르는지까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이 책이 가닿는 곳은 다름아닌 시대의 생생한 재현이다. 그 누구라서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백 년 전 시대 재현에 관한 국내 거의 유일무이한 전문가, 최지혜 그 시대에 관한 전문성과 안목을 바탕 삼아 2년여에 걸쳐 풀어낸 집요함과 끈기의 성취! 이 땅의 백 년 전 풍경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저자 최지혜의 전문 분야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나라 근대 재현의 현장에는 줄곧 그의 이름이 있다. 백년 전 경성에 살던 서양인의 옛집 딜쿠샤,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 건물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현존하는 조선왕조 및 대한제국 해외 공관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미국 워싱턴 D. C.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등의 실내 재현 및 복원 역시 그의 손길을 거쳤다. 실내 재현은 비슷한 물건으로 채워넣는 일이 아니다.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제대로 알아보는 안목과 전문성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야 한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집요함과 끈기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마침내 눈앞에 가져다놓는 것이야말로 그 일의 핵심이다. 저자 최지혜에게 이런 일은 일상이며 연구와 업무의 근간이다. 책에 실린 품목은 130여 개라고 했으나 후보군에 오른 품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책에 실린 이미지는 700여 장이나 이를 고르기까지 후보에 올랐던 이미지는 수천 장이다. 이러한 방대한 자료의 섭렵을 바탕으로 정제하여 엄선한 것들만 책에 수록했으나, 이 책의 페이지 수는 무려 656쪽이다. 이 책의 기획으로부터 집필의 완성까지 약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미술사학자이자 장식미술전문가, 동시에 앤티크와 근대 건축 실내 재현의 전문가인 저자는 그동안 쌓은 전문성과 집요함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나라밖의 온갖 자료를 찾아 건져낸 결과물을 직조하여 놀라운 완성물로 독자들 앞에 상재했다. 이로써 독자들이 마주하는 것은 깊이도, 넓이도, 종류도 가늠할 수 없는 찬란한 구슬들이 정갈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꿰어진 실로 보배 같은 한 권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