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나쁜 반복을 끊어내는 칼날의 시
역사적 감각을 깨우는 언어의 굴착기
제4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기대 없는 토요일』이 민음의 시 327번으로 출간되었다.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지양은 2021년 첫 시집 『스키드』를 발표하며 시단에 등장했다. 『기대 없는 토요일』은 윤지양의 두 번째 시집이자, 재등장을 알리는 결정적 시집이다. 윤지양 시인은 일찍이 등단작 「전원 미풍 약풍 강풍」에서부터 일상의 실마리를 포착하여 시적인 상황으로 확장하는 능력에서 탁월함을 보였다. 이러한 윤지양의 시작(詩作) 경향은 시 아닌 것(非詩) 사이에서 시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비시각각’(非詩刻刻) 프로젝트와 그 후속인 ‘시시각각’(詩詩刻刻)을 통해 더욱 예리하게 발전했다. 웹진 《비유》에 연재되며 독자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던 이 프로젝트는 제보자들로 하여금 비시(非詩)에서 자발적으로 시를 읽어내도록 했고, 이를 통해 비시(非詩)와 시의 위계를 허물었다. 시인의 이러한 실험 정신은 첫 시집 『스키드』를 통해 성공적으로 구현되었고, 『기대 없는 토요일』에서는 한층 날카롭게 현실과 조응하고 있다.
윤지양 시의 화자들이 공유하는 “출처 없음”은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모든 것에 균열을 내고 독자를 혼돈과 의문에 빠트린다. 이와 같은 불화의 시학 너머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깨진 유리처럼 반짝이고 있다. “치솟다 무너질 문명”을 증오하면서 “두드림 뒤에 따라올 가여운 존재”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은 『기대 없는 토요일』이 품은 이면의 매력을 엿보게 한다. 윤지양에게 사랑이란 다정한 속삭임이 아닌 “나쁜/생의/반복”을 끊어내도록 하는 날카로운 칼날이며, 이 시집은 찔리고 베인 사랑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기대 없는 토요일’은 그러므로 변하리라는 기대를 잃지 않는 토요일이자, 이 시집을 읽은 뒤에 도래할 토요일이다.
『기대 없는 토요일』은 ‘시대에의 거부’라는 측면에서 김수영 문학상의 의의를 동시대적으로 구현한다. 김수영에게 시란 모험하는 것, 다시 말해 자유를 이행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김수영 문학상을 비롯한 시 창작의 전반적인 경향이 ‘내면 서사의 강화’, ‘거침없는 자기 토로’라는 유행을 형성해 왔음을 고려할 때, 윤지양의 시 세계는 그러한 경향성에서 빠져나와 독창적인 서사를 공공의 차원으로 확장시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험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심사위원들은 단번에 매료시켰다. 어둠 속에서 미래를 노래하는 동굴 속의 카나리아처럼, 『기대 없는 토요일』은 이 시대에 필요한 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전환점을 가장 앞서 제시하고 있다.
■ 부정한 세상을 부정하기
그러므로 이것은 시가
또한 아니다. 막 젖힌 커튼 앞에서
눈이 부시지 않다.
― 「소설」에서
“그러므로 이것은 시가 또한 아니다.”(「소설」)는 윤지양의 시적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독자가 마침내 시인의 명제를 거스르고 「소설」을 시로 읽는 순간 “독재 국가 하에서는 국방력이라도 강했다”는 P의 말, 독재와 폭격을 모른다는 ‘나’의 말은 전부 소급되어 부정된다. 독재의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독재와 폭격의 역사를 알고 있다. 「신화」나 「망각」의 제목이 시사하듯, 역사적 사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화’화 되거나 ‘망각’되곤 한다. 그러나 한 시대에 붙박인 것으로 여겨졌던 역사는 불시에 되살아나 일상을 뒤흔든다. 『기대 없는 토요일』은 부조리를 곧장 겨냥하는 방식이 아닌, 읽는 이 스스로 텍스트를 역행하고 세상을 거꾸로 보도록 한다. 윤지양의 시는 마치 ‘굴착기’처럼, 과거의 “나쁜 반복”을 용인했던 무감해진 인식의 벽을 깨트리고 파묻혀 있던 역사적 감각을 깨운다.
■ 독해로써 완성되는 (비)시
[[Nguyễn Thế Hoàng]] 오후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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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 오후 6:20
So beautiful!
― 「Let’s work hard!」에서
「Nguyễn Thế Hoàng」과 「Let’s work hard!」는 개발자로 일했던 시인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연작이다. 영문 번역이라는 필터를 거쳐 메신저의 대화 속에 들어가면, 독자는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과정에서 이들이 나누었던 유대감이나 친밀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체험하게 된다. 독자들은 윤지양의 시를 통해, 이미 종료된 메시지를 읽는 순간 시적인 감각이 깨어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간판이나 광고지 들에서도 시를 포착하도록 했던 프로젝트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첫 시집을 내기 전 “비시(非詩)를 쓴다고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계속 시 생각을 했다.”는 시인의 고백은 두 번째 시집에서도 여전히 효력을 갖는다. 시와 시 아님을 나누는 괄호는 시를 ‘읽어 내는’ 눈앞에서 너무도 쉽게 벗겨진다. 따라서 비시(非詩)는 시 아닌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가 아닌 것이다. 윤지양의 시를 읽음으로써, 독자 역시 시의 잠재성을 감지하는 눈을 갖게 될 것이다.
■ ‘경계 수칙’과 목소리들
끊기 직전에야말로 더 강하게 조여 들고 그 순간 나는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칼은 자르는 게 아니라 안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4)」에서
윤지양의 시 세계에는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경계 수칙’이 있다. “몸 한구석이 겹쳐진 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너’와 ‘나’(「8월 7일」), 멀리서는 연인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선 낯선 사람과의 동행(「경계 수칙」) 같은 것. 윤지양의 시는 대상들이 한 겹으로 맞물렸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틈새 공간을 산출한다. ‘4)’라는 제목에는 칼날과 경계면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이 시 또한 ‘나’와 ‘칼’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지만 결코 한 줄기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가장 가까운 타인, 나아가 자기 자신과도 불화하는 목소리들은 침묵하지 않고 우글거리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다중의 소리이다.
■ 불화하며 사랑하는 시
『기대 없는 토요일』에서 비시(非詩)는 포스기 화면, 영어로 나눈 메신저 대화 등의 형식을 넘어서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자기부정의 서술까지 포함한다. 욕설 등의 일상어를 사용하여 시어의 지평을 넓혔던 김수영의 유산은 윤지양의 시에서 현대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여러 각도에서 제시되는 ‘시 아님’의 지표들은 인간이 세계와 갖는 접점들- 공공의 역사와 사적인 관계-을 단일한 의미로 고정시키려는 모든 종류의 문법을 의심하며, 독자들 또한 그러한 시적 경험에 참여하도록 한다. 윤지양의 시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깨어날 때임을 자각하게 한다. 부정한 세상을 뒤집어 봄으로써, 불화의 목소리를 내고 역사적 감각을 깨움으로써 윤지양은 시대와의 친밀함을 베어내는 칼날의 시학을 이루어 낸다.
■ 해설에서
이 시집에서 보여 주는 개입하는 무심함의 다양성이란 이런 것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어떻게 쓰일 것인가로의 전환, 어떻게 밀착한 것인가에서 어떻게 멀어질 것인가로의 전환, 시적 발화의 당위성에서 시적 발화의 가능성으로의 전환. 이 뒤틀리는 전환 속에서 우리는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의 사회적 풍경을 목격하며, 그럼으로써 처음부터 객관적일 수 없었던 우리 자신의 위치를 상기시킨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착각에서 그만 깨어나라고, 윤지양의 시는 지금 말한다.
―선우은실(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