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 대하여
매거진 [B]는 제이오에이치의 관점으로 찾아낸전 세계의 균형 잡힌 브랜드를 매월 하나씩 소개하는 광고 없는 월간지입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브랜드 관계자부터 브랜드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싶어 하는 이들까지, 브랜드에 관심을 가진 모두를 위해 만드는진지하지만 읽기 쉬운 잡지입니다.
■ 이슈 소개
쉰 세번째 매거진 《B》입니다.
무인양품(영문명: 무지 Muji)은 생활에 필요한 잡화를 판매하는 브랜드입니다. 칫솔부터 침대, 테이블 그리고 가전까지 삶에 쓰이는 거의 모든 제품을 선보이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주로 집 안에서 가볍게 쓸 도구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브랜드입니다. 부담 없는 가격과 취향을 꼭 따르지는 않더라도 해치지도 않을 '적당함' 때문입니다. 무인양품과 비슷한 콘셉트와 스타일을 차용한 브랜드가 시중에 여럿 나와 있어 혼동하는 이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무인양품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70년대 후반에 일본은 소비성이 극대화되며 이른바 '브랜드 값'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습니다. 이를 공략해 대형 유통 회사들은 저가의 생활용품을 자체 제작해 빠르게 유통시켰죠. 세종그룹의 할인 전문 유통업체 세이유 역시 1980년 해당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콘셉트가 달랐습니다. 가격만 싼 것이 아닌, 높은 품질과 올바른 사상을 담은 것입니다.
당시 세이유를 포함한 세종그룹을 이끌던 츠츠미 세이지 회장은 무인양품을 기획하고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았습니다. 일본 그래픽디자인계의 대부 다나카 잇코도 그중 하나였는데, 그는 무인양품의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명쾌히 정리하게 됩니다. '무인(無印: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과 '양품(良品: 좋은 품질)'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 그대로였습니다. 이후 '이유가 있어 저렴하다'로 시작한 브랜드 메시지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로 시대를 이어가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울러 최초 40여 종의 제품을 선보인 무인양품은 현재 7000여 품목을 취급하고 있으며, 무지 하우스 프로젝트를 통해 주택 비즈니스로 관심을 넓히는 중입니다.
무인양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주로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에서 기인합니다. 무인양품은 사상을 정립하고 홍보하는 방식이 워낙 독보적이다 보니 이를 추종하는 팬도 많죠.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무인양품에는 '멋진 이야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단단한 팀워크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인양품은 2000년대 들어 매출 하락으로 경영난을 겪는데, 이를 극복한 당시 사장 마쓰이 다다미쓰는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기업 정상화를 위해 '현장 운영'과 '근무 태도'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해 직원들을 재무장시킨 것으로 알려졌죠. 일본 최고의 크리에이터 5인으로 이뤄진 어드바이저리 보드가 주도하는 브랜드 전략과 크리에이티브 컨트롤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외부인인 이들의 의견을 오랫동안 기업의 핵심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직원들을 독려해 실제 제품화하는 데는 카나이 마사아키 현 회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고요.
뛰어난 브랜드 콘셉트와 잘 정돈된 프레젠테이션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사람을 모으고,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콘셉트를 이해하고 실행할 사람이 없다면, 조직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브랜드'는 만드는 게 아니라, 애정과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멋진 화술'이 많은 이들을 잠시 현혹할 수는 있어도,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소비자는 결국 이를 알아차릴 것입니다. 무인양품의 진정한 가치가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킬 '사람'에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카나이 마사아키 회장의 "조금 더 정성스럽게 생활합시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좋은 브랜드란,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조금 더 신경 씀으로써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편집장 최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