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보통 사람들을 위한 북한학 교과서
2013년,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북한에 대해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개성공단은 폐쇄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측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이들의 견해와 정부의 정책을 따랐던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은 돈을 잃었고 대다수 국민들은 불안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개성공단만의 일은 아니었다. 북한 문제에 있어 ‘전문가적 견해와 예측’이 맞았던 적은 많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 붕괴설. 하지만 무너지는 것이 오늘내일이라던 북한은 1990년대 극심한 식량난을 거치면서도 20년을 버텨오고 있다. 도대체 북한 문제에 있어 ‘전문가적 견해’란 무엇일까?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수많은 북한 관련 견해들은 어디서부터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주장일까? 남한에서 살아가는 건강한 시민이라면 이 가운데 어떤 주장을 받아들여, 선거에서 합리적인 정책투표를 위한 판단을 내릴 것인가? 유행처럼 회자되는 한반도 급변사태가 벌어지면 해외로 도망가지 못하고 한반도에서 고스란히 그 상황을 모두 맞이해야 하는, 그래서 평범한 시민들에게 더욱 필요한 북한에 대한 지식은 무엇인가? <현대 북한학 강의>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북한학 교과서는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2012년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에 관한 뉴스는 인터넷에만 8천 건이 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태의 진행 상황에 대한 보도였다. 중계는 있지만, 해설은 없는 것이다. 한편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해설이라고 할 수 있는 단행본들의 경우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단행본이 이데올로기적 접근, 최고 권력층에 대한 가십, 몬도가네 식 소재 선택 등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북한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걸러내고 보아야 할 것 요소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작업을 보통 사람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다. 필자들은 그래서 보통 사람들을 위한 북한학 교과서를 기획했다.
“이 책은 북한에 관심은 있으나 배경지식은 많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기획되었다. 따라서 필자들은 북한 체제에 대한 ‘일반화’보다는 현실적 자료의 의미 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유익한 길잡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기 위한 몇 차례의 회의에서 우리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북한연구를 사실의 기술에 치중하고 있는 저널리즘의 수준을 넘어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위치 지울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필자들은 북한의 현실과 같이 복잡하면서도 때로는 감정적일 수 있는 문제들을 사회과학적 개념들을 사용하여 균형 있게 다루려 노력했다.” -본문 7쪽-
‘전문가적 견해’라 불리는 오해 1. 선군정치?
북한과 관련해서 그동안은 ‘한 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수령제, 신전체주의, 유격대국가, 극장국가와 같은 학술적 용어이건, 1인독재, 군사독재, 왕조세습 등 선정적 문구이건 북한은 한 단어로 정의되어 왔다. 이 방식의 장점은, 한 단어로 한 사회를 정의내릴 수 있는 화자(話者)의 강력한 통찰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북한과 관계된 자료 자체가 부족하고, 북한 사회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가능한 일이지만 어쨌건 ‘한 마디 정의’는 지금까지도 대세이다. 북한은 말 그대로 가장 전문가적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이 트렌드에 따라, 최근의 북한은 ‘선군정치’로 정리되고 있다. 뉴스에 등장하는 평양 시내 선전 간판에는 선군정치라는 구호가 늘 선명하고, 북한 최고지도자의 직함이 국방위원장이었던 점은 이와 묘하게 맞물려 들어간다. 단어가 주는 뉘앙스마저 남달라, ‘경제 위기로 대표되는 국가적 위기를 군을 중심으로 극복한다’는 우리의 자의적(?) 논리 구성과도 잘 어울린다. 여기에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같은 북한이 보여주는 호전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데도 적절해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이 선군정치라는 모토로 모아지면서, 북한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고, 북한은 군대가 모든 걸 지배하는 군사독재 국가가 된다. 그런데 이게 맞는 걸까? 이 책의 1장 통치이데올로기를 보자.
북한은 선군정치를 주로 ‘군중시정치’라 부른다. 군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즉 군을 정치의 중심에 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군을 중요시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다. “선군정치는 군대를 강화하는 정치로서 군대가 당의 위업에 끝없이 충실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운다”라는 북한의 직접 언급도 있다. 이는 북한은 당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즉 언론에 노출된 몇 가지 멘트와 사건, 이미지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선군정치는 사실상 지금의 북한 전체를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선전 간판에 ‘선군정치’ 구호가 걸려 있고 북한의 관영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인 것은 사실 아닌가.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책은 이런 구호가 전면에 걸리게 된 역사적 배경까지를 다룬다.
구호가 아닌 맥락, 단편이 아닌 역사
북한 체제에서 영감을 얻어 자국 정치 체제에 활용했고, 오랜 기간 김일성 주석과 최고지도자로서 긴밀한 교류를 나누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반정부혁명 과정에서 체포되어 1989년 사형을 당한다. 1967년부터 반정부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30여 년 가까이 철권통치를 했지만 총살 장면이 TV로 중계될 만큼 그의 결말은 비참했다. 그의 몰락에는 루마니아 군부가 차우셰스쿠에게 등을 돌린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만약 루마니아의 군이 끝까지 차우셰스쿠 쪽에 있었다면 체제 붕괴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렇게까지 비참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군부의 이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주의권 붕괴 시 공통적으로 발생했던 현상이다. 적어도 자신에게 많은 것을 배워갔던 차우셰스쿠의 비참한 최후를 바라보는, 북한의 사회주의권 붕괴에 대한 인식은 그렇다.
“군대가 1991년 8월 사변 당시 사회주의배신자들에게 징벌을 가할 데 관한 소련방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대로 사회주의배신자 옐친의 반혁명의 도구로 전락되어 사회주의 붕괴를 촉진시켰다……군부가 흔들리지 않고 사회주의배신자들에게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총소리를 울리었다면 사태는 달리되었을 것……” -본문 33쪽. 김철우,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평양: 평양출판사, 2000), 2~3, 50쪽 본문 재인용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맥없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군부에 대한 통제가 약해지는 것은 체제의 붕괴로 직접 연결된다는 현실인식은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군을 중심에 놓는 정치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고, 이런 조건에서 선군정치라는 구호가 등장하게 된 한 배경이 되는 것도 논리적 모순이 없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나 상황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 채 우리에게 제시되는 선군정치이다. ‘군이 중심이 되는 것’과 ‘군을 중심에 놓는 것’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큰 오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큰 오해에서 시작된 수많은 다른 오해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잘못된 판단들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하게 잘못된 정책들로 나타난다.
‘전문가적 견해’라 불리는 오해 2. 북한 경제는 무너져가고 있다?
북한의 경제 상황에 대한 것은 어떨까. 4장 선군경제, 시장 그리고 개혁을 살펴보자. 한국은행의 2011년 발표자료를 보면 2010년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는 엄청난 경제 위기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려, 북한이 경제적으로 거의 망하기 직전의 국가라는 판단을 쉽게 내리게 한다. 그러나 저자는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와 WFP(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의 자료를 분석해 북한의 2010년 농업 생산은 오히려 3.1% 늘어났고, 이를 반영하면 2010년 북한의 경제는 마이너스가 아니라